ㅡ가온시티 아르바이트 with. 라한
다양한 형태의 배틀을 즐기는 풍조로 유명한 화랑지방이었으나 그런 이곳에서도 배틀 팰리스라는 것의 존재는 낯설고 새로웠다. 하나지방의 배틀 서브웨이나 칼로스의 배틀하우스와 비슷하겠거니 하면서도 화랑 제일의 도시인 가온시티에 뚝딱뚝딱 지어지는 새하얀 성은 한편에서는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굉장한 이질감을 풍겨 지켜보는 뭇사람들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질감의 이유 중 하나로는 새로운 가온의 상징이 될지도 모를 건물을 지어 올린 자가 화랑 출신이 아닌 타 지방 사람이라는 영향도 없진 않을 것이다. 배틀 팰리스의 상품으로 화랑에서 인망 높은 전 사천왕이자 포켓몬 박사, 수리를 내놓은 것은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감을 잠재우기 적절하고 좋은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게 틀림없었다. 배틀 팰리스가 사람들에게 좀 더 녹아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이에 수완 좋은 젊은 오너가 선택한 건 은근히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트레이너 캠프 사람들이었다.
「배틀 팰리스의 홍보대사도 모집 중인 모양인데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지 의뢰자의 생각도 살짝 들어볼 수 있을까?」
「어머, 거기에 맞춰주시려는 거예요? 후후, 그렇다면 역시 화랑지방의 전통의상을 입거나 화랑지방 특유의 격식 같은 게 있다면 보고 싶네요!」
“그래서, ──라는 게 의뢰주의 관전 포인트라는 거야.”
이야기를 물어온 능란은 자신의 옷을 한 번, 상대의 옷을 또 한 번 보았다. 놀랍도록 화랑 전통복이다. 화랑지방 사람들은 현대복을 입지 않나요? 라는 질문이 들어온다면 아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고 답하겠지만 당장 캠프 내의 표본만 따져도 약 50% 확률, 그중에서도 라한은 특히나 흠잡을 곳 없이 과거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증 100%의 복장을 자랑했다. 능란 또한 만만치 않게 전통이 남은 복장이지만 아무래도 라한과 비교하자면 『밀린다』.
“이몸, 프릴이라도 떼고 올까?”
“네?”
시작하기 전부터 부딪친 난관(농담)이었다. 아무튼 능란은 그 새하얀 코트를 눈처럼 덮은 미인이 어디까지 계산하고 의뢰를 넣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사장님들은 다들 세비퍼 한마리씩 배 속에 넣어둔다니까─이런 홍보 수단이 잘 먹힐 거라는 걸 훌륭하게 직감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쪽을 써먹어 주기로 해야지. 판을 크게 벌이는 거야 이 만파식적의 딸이 제격 아니겠는가.
“자, 자. 오세요, 오세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이 오직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포켓몬 무극(舞劇)입니다. 다른 데서는 절대 없다고요.”
덩기덕, 쿵더러더러, 쿵기덕, 쿵덕. 흥겨운 장구 소리에 박자를 맞춰 낭랑한 목소리가 거리에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모이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여자는 꽹과리를 꺼내 꽹꽹,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인파가 어느 정도 모이자 묵직한 큰북소리가 심장소리처럼 둥, 둥, 울린다. 겨우 악기 세 개가 모였을 뿐인데 벌써부터 축제의 전조만 같았다.
입소문이 날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 싶으니 능란은 오늘의 배우에게 나오라는 눈짓을 했다. 정말 합니까? 마지막으로 그런 눈빛이 날아온 것도 같았으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은 아닌 오늘 말이지, 하지만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아주아주 오~랜 역사의 기사님이 계셨는데 글쎄, 오늘은 그 기사님이 가온시티의 소문을 듣고 친히 찾아와주었다는 거야.”
자, 지금이야. 라한 씨!
“……이곳에 바다를 가르는 전설의 검이 있다고 하여 왔습니다.”
─와아. 기사님이다, 기사님.
─뭐야, 드라마 촬영? 아니면 연극? 멋지다.
─옆에는 쌍검자비잖아, 귀여워~
─뭔가 보여주려나?
“……그 검이, 악한 자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쌍검자비랑 같이 모험을 떠나는 건가?
─어디로?
─앗, 저기 봐. 색이 다른 빠모트야.
참고로 주연 라한, 북치고 장구치고 진행도 하고 상대역도 하는 건 능란이다. 천연덕스럽게 앞에서 이야기를 풀던 모습 그대로 능란도 무대에 올랐다.
“허어. 그러나 검이란 것은 결국 쥐는 자의 맘이 아닌가. 검의 주인이 옳은지 그릇되었는지 어찌 판단할 것인가.”
─벌써 시작한 거야, 그 포켓몬 무극이란 거?
─둘이 싸우려나 봐.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하자 장구소리와 북소리도 조금 줄어들었다. 둥, 둥, 둥, 둥. 은은하게 들리는 소리 위로 목소리들이 얹어졌다. 그들의 어깨 너머에는 굳건하게 선 배틀 팰리스의 닫힌 문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전설의 검이라는 것이 이 문 너머에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라한이 허리 위에 손을 얹었다. 기묘한 뿔이 솟아난 검집에서 스릉, 맑은소리와 함께 검이 뽑혔다. 능란 또한 평소의 대나무봉 대신 옻칠을 한 묵직한 나무봉을 꺼내 자세를 취했다.
“제 검과 부딪쳐본다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몸 또한 반대로 당신을 시험해주지.”
부란다의 북소리가 점점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지이이잉, 하고 징 소리가 울리자 그것이 신호가 되어 두 포켓몬과 두 사람이 충돌했다.
선공은 빠모트였다. 매서운 전기쇼크가 번쩍번쩍하게 터졌다. 그 빛무리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피하며 쌍검자비가 물대포를 쏘자 물과 전기가 부딪치면서 파직파직한 효과를 만들었다. 관객들의 감탄이 높아진다.
“크윽, 만만치 않은 자로군. 하지만 아직 진짜 실력을 꺼내보이진 않았지?”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전광석화로 움직이는 빠모트를 쌍검자비의 검이 챙! 하고 막아세웠다. 이어지는 연속자르기, 피할 틈도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빠모트가 재빨리 물러선다.
포켓몬에 맞춰 트레이너들도 합을 주고받았다. 검과 봉이 맞부딪칠 때마다 일부러 발목에 걸어둔 방울소리가 짤랑거리며 울렸다.
─와아, 엄마. 나도 무도가가 될래요.
─얘, 배운다고 모두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저 실력… 저 검술…,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저쪽은 만파식적이지? 종종 대나무 수련장에서 봤어.
미리 대본을 짜둔 시합이었다. 서로가 무슨 수를 쓸지도, 어떻게 피할지도 알고 있었다. 두 포켓몬과 두 사람의 충돌은 태극도를 그리듯 밀면 들어가고 당기면 나오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다. 그 완벽한 호흡에 사람들의 감탄이 멎지 않았다. 동시에 모두 떠올렸다.
─그래서,
─저 문은 언제 열리는 거야?
마침내 절정이었다.
“모모, 스파크!”
“키리, 셸 블레이드입니다.”
온 사방으로 튀는 섬광과 빛을 가르고 들어오는 물의 검, 각자가 가진 고위력기의 부딪침에 순간적으로 그 자리의 모두가 눈부심을 이겨내지 못했다. 문은 그 순간에 열렸다.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문이 활짝 열리는 모습이 사람들의 기대를 부추겼다. 너머로는 오직 트레이너를 위한, 트레이너에 의한 시설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틀 팰리스, 언제나 트레이너님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광판에 문구가 떠오르는 순간 장구와 꽹과리 소리가 다시 신나게 울린다. 극을 마친 두 사람과 두 포켓몬은 천천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 두 트레이너는, 함께 배틀 팰리스에 도전하여 666점을 모아야만 영접할 수 있다는 전설의 초호화 상품을 노리는 끝없는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는 거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틀 팰리스 오픈 기념으로 오늘부터 일주일간 배틀 팰리스 이용객 대상으로 만파식적의 도시락을 할인해서 판매하니까 많.관.부. 라는 거야. 으핫.”
화려함이 도를 지나쳤을까? 사람들의 환호와 열광이 엄청났다. 이 정도면 홍보직원으로 정식 고용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적당히 하는 법을 모르는 이 사람은 자신의 각본에 만족한 나머지 옆사람의 표정을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어쨌든 임무 완수였다.
이때 알바 2개 차력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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