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27) 10.16. 언어의 곡선

천가유 2023. 12. 27. 00:21

ㅡ나비란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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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지방은 꼭 세 개의 날개가 풍차처럼 휘어진 지형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남쪽과 북쪽은 외곽으로 갈수록 산세가 험하고 서쪽으로는 사막이 펼쳐져, 바다와 맞닿아 다른 지방과 교류가 활발하면서 지대가 평탄한 다님길── 그 중에서도 가온시티가 가장 번화한 도시로 성장한 것은 필연과도 같았다.

그래도 과거에는 이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모래톱길의 아토시티도 풍부한 수원을 낀 채 독특한 축제문화를 가지고 큰 도시를 꾸려 화랑지방의 이대도시라고 하면 아토와 가온이 비등비등하였더라는 게 능란이 가진 어릴 적의 기억이다. 그랬던 가온시티가 돌출되기 시작한 건 아마 쿠로테츠의 힘이 강해지면서부터였을까.

다양한 타 지방의 기업들이 들어오고 는개마을로 갈 물건들까지 전부 가온에 집중시켜가며, 이곳은 그야말로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시 오늘과 다른 꿈의 성장을 이뤄가고 있었다. 한 달 전에 마지막으로 배달 왔을 때와 지금의 풍경이 또 달라 능란은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쪽에서는 전통을 지킨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쪽에서는 여보란 듯 신식 건물들이 열을 맞추고 늘어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감탄 너머로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어, 긴장의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기도 했다. 가온에 오자마자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나타난 나비가 그러했고 가려는 그를 붙잡아 배지를 핑계로 앉혀두려 해 더욱이 그랬다. 자신이 내뱉은 말은 지킨다는 신조를 따라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어쨌든 건너편에는 앉아준 모습에 능란은 애써 웃었다.

왜 그렇게 낭자는 타인의 개인사에 매달리는 건데? 내 사정을 아는 것이 너에게는 그리 중요할 일이니?”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고 한 거였는데.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돼. 그건 내가 나비 씨를 알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겠지만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물어보려던 건 아니었어. 그보다는 내가 바란 건 들려달라는 게 아니라 들어달라는 쪽인걸.”

가온에 오면 나비란이 소개하는 찻집에 방문하기로 하였던 것 같은데 정작 여기가 그곳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어디라도 좋으니 대화할만한 곳을 찾아 들어왔고 도시 물가에 조금 기가 죽어 주문한 차는 뭐, 나쁘지는 않은 정도였다. 눈앞의 맛에 까다로운 이에게는 어떨지 모를 노릇이다.

그나저나 대체 어디서부터 대화의 실이 꼬여버린 걸까? 떠올리자면 갑자기 나비란이 등을 돌렸을 때부터 당황스럽기만 한 기분이었다. 사과하는 쪽에서 보일 태도는 아니니 한숨은 참는다.

어느 지점에서 나비 씨가 사람들 뒷이야길 캐고 듣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버린 건지 모르겠어. 그야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아하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음습한 취미가 아니라니까. 내가 말하는 내 태도의 나쁜 점은──

누구의 약점을 파헤치거나 들쑤시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나비 씨도 봐서 알잖아, 기대받는 게 두려워서 차라리 실망시키려고 하는 그 버릇 말이야. 찻잔의 김이 쌀쌀해지는 가을 공기에 스몄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법만큼이나 실망을 사는 법도 너무 잘 알아버리고 말았다. 기대를 하고 위로를 건네고 따스한 말로 북돋아 주려던 사람들에게 고지처럼 가시를 세운 채 위협이나 해온 세월이 적잖아진 것이다. 불량한 태도에 화를 내주는 사람들은 양반이었다. 나비의 말처럼 상대가 도발에 넘어왔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가끔은 급소를 찌른 것처럼 의도한 것보다도 더한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 화조차 내지 못한 채 아연히 돌아서는 상대를 보며 사과와 후회를 곱씹었다. 겁쟁이인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호의를 잃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에 대고 사과한들 쏟아진 물잔은 전과 같은 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전과 같은 얼굴을 하지 않게 된 건 혈육으로 족했다. 덕분에 번번이 실패만 하던 도발은 접었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었다.

나비 씨에게 한 말이야 가벼운 도발이었지. 프레셔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그렇다고 거기 짓눌려 지고 싶을 리 없잖아. 부정이나 들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내가 정말 나비 씨가 지기라도 바라는 사람처럼 저주라고 하니까 놀란 거야.”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뭔가 잘못한 걸까. 말실수라도 한 걸까 해서.”

상처 준 걸까 싶어서. 저주고 뭐고, 나비 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걸.

이런 게 궁금할까 싶은 실패한 이야기나 떠들고 있으니 목이 탔다. 밑바닥을 보이는 찻잔에 물을 대신 채우곤 휴, 참아왔던 숨을 뱉는다. 처음부터 그간 실패했던 도발 이야기 같은 거나 고해성사 마냥 꺼내지 않았으면 오해를 살 일도 없었을까 후회만 들던 참이다.

정작 나는 당신에게 고마운 게 많은데.

아무튼 그래, 딱히 나비 씨에게 오지랖을 부리려거나 비밀스런 이야기를 캐내서 찌르고 다니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 나는 그저 겨우 오랜 꿈을 이루기 시작한 나비 씨가 프레셔 같은 것에 지지 말고 이기는 기쁨을 좀 더 누렸으면 했을 뿐이야.”

이쪽은 배지 하나에 3일 밤낮을 기뻐하고 있는데 말이지. 저보다 더 큰 꿈을 가진 너라면 배지가 6개 전부 모일 때까지 기쁨이 끊기는 일이 없어야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걸로 들어달라는 내 이야기는 다 끝났는데.”

이제 가온시티의 맛있는 찻집이 어디인지 소개해달라고 해도 돼?


능란은 자낮+자기비하를 기반해서 상대가 묘하게 화날만한 발언을 종종 했는데(오너 힘듦)

그게 상대의 신뢰를 깎아먹는 일을 만들면서 이제 본인이 많이 반성하고 하지 말아야지 함.(그러게 일찍 깨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