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우금마을 아르바이트 + 우금체육관 챌린저 클래스
마루길 우금마을 고산탑, 입구에 무어라 한자가 적혀 있던 것 같지만 높이를 가늠하는 일에 집중해서 뜻은 보지 못했다. 높을 고에 뫼 산을 써서 그저 높은 산의 탑이라고 한다면 조금 실망일 것도 같았다. 좀 더 폼 나는 이름으로 붙여줘야지! 그렇다고 해서 고독한 산이란 이름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우금마을의 상징처럼 존재하는 탑은 그 존재 의의부터가 수많은 무예가들의 수련을 위한 곳으로, 포켓몬 트레이너마저 포함해 자기 연마를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하고 한계에 도전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화랑 정신이 응집된 곳이다.
이제껏 드물게 배달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입구에서 도시락을 넘겨주고 돌아왔던 능란은 이곳을 직접 오를 때가 되자 감회가 새로워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 손에는 맨손등반을 위한 몇 가지 도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능란도 보면 사람의 기준을 뛰어넘은 초인 같아요.”
“란~쨩…. 저번에 저를 업고 암벽등반도 하시던걸요~….”
“음식배달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자, 자. 구경들 그만하고 정상에서 보자구.”
어어, 마침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앞에 뮬리 씨가 보이는구만. 억새 씨랑 같이 올라가는 거 보니 데이트라도 되나?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어.
캠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능란은 샤샤를 아기처럼 어부바하고 다른 포켓몬들과 함께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굳이 샤샤를 업은 건 트레이너가 염려가 많을 뿐이다. 꼬시레의 발판은 90도 경사의 벽이라고 해도 타고 오를 정도로 흡착력이 굉장함에도 이 겁 많은 포켓몬이 혹시 미끄러질까봐 뒤로 굴러떨어질까 애지중지할 뿐이다.
트레이너의 이런 마음씀씀이를 이해하는지 꼬시레 또한 더듬이로 능란을 꼭 잡은 채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덧 습지에서부터 한 달, 슬슬 수줍음 많은 꼬시레도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탑은 내부로 진입하기 전부터 돌계단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고 보니 마을의 절도 이렇게 산 꼭대기에 있으면서 오르는 계단이 끝을 셀 수 없었지.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위해서는 108배를 하라는데 아무리 봐도 100개가 아니라 1000개 아니냐고 어머니 옆에서 투덜거린 기억이 있다. 과연 이곳의 돌계단은 몇 개일까. 포켓몬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며 능란은 옆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수다에 시동이 걸린다.
“우금마을은 폐쇄적인 곳이지. 그래서 나도 화랑의 모든 마을 통틀어서 가장 적게 와본 곳이 여기야. 다음은 어디냐고? 흐음, 나린이려나. 의외로 보드기마을은 인부들이 오가기 시작한 뒤로 주문이 많았거든. 하지만 나린은 굳이굳이 다님길의 죽통밥을 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 맛있는 게 많다 이거지.”
애초에 다님길 바깥의 배달 주문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러니까 내가 다님길을 넘은 뒤부터 열심히 명함을 돌리고 다닌 거잖아. 단련된 다리는 돌계단을 아무리 올라도 속도가 줄기는커녕 도리어 가속을 하듯 성큼성큼, 속도를 높였다. 응? 왜 빨라지냐고? 그야 숨이 차니까 빨라지겠지?
그렇게 1차적으로 탑 입구까지의 계단을 모두 오르고 나면 이제 외벽 오르기다.
“아아, 내부로 가지 않는 건 그냥 취향이야. 그야 안쪽에서 탑을 오르다가 트레이너라도 만나면 그것도 재미난 일이지만 조금 더 스릴을 느끼고 싶다고 해야 하나.”
한때 정진과 대화를 나누면서 혹시 나, 고소공포증이 있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일부는 맞았다. 아무래도 능란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조금 무서웠다. 그런데 이게, 또 편협하기 짝이 없는 기준이라 내려다보는 건 무섭고 오금이 저리지만 아래만 보지 않으면 괜찮았다. 지금처럼 벽을 타고 기어오를 때도 제가 어디까지 높이 올라왔는지 아래를 확인하지만 않으면 두려움을 잊을 수 있단 것이다.
그래서 종종 능란의 시선이 무심코 아래를 향하려 할 때마다 나나의 날개가 시야를 차단해주었다. 나나에게 감사하며 능란은 대신 탑의 창 안쪽을 구경했는데 매 층, 매층마다 내부 사람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져 신기하기도 했다. 르나르가 잘 오르고 있는지 잠깐 멈춰서 지켜본 건 덤이다.
돌을 쌓아 올린 탑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쥐고 오른다. 손을 뻗어 우선은 올라갈 곳을 잡고 다음으로 발을 옮겨 체중을 실어도 될지 안정적인 곳을 찾아 힘껏 디뎠다. 의지할 곳이라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음번의 발목과 연결해 묶어둔 밧줄뿐.
종종 돌풍이 불어올 때면 창이 흔들리고 몸도 흔들렸다. 그러면 짜릿한 스릴감이 뒷목을 쭈뼛 세웠다. 마치 뇌리로 얼음송곳이 찔리듯 정신을 차갑게 만들면 바로 이 감각을 느끼고 싶어 벽을 오르는 게 틀림없단 실감이 들었다.
정상을 조금 앞둔 순간, 갑자기 탑 안에서 튀어나오는 무예가와 난데없는 공중전을 벌이면서 능란은 프핫 웃었다.
“이몸이 이기거든 그쪽 형님 앞으로 죽통밥 50인분 배달할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단골손님 확보를 위한 배틀이다! 등에 매달린 꼬시레가 벌벌 떨면서도 실눈을 뜨고 구경하는 동안 나나가 상대의 포켓몬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배틀 팰리스 공중전의 미리보기 시합이었다.
벽 타고 오른다고 하니까 리액션 해주던 친구들 귀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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