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055) 11.28. 만나자마자, 만난 뒤로

천가유 2023. 12. 30. 01:47

ㅡ샤샤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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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습지의 꼬시레가 습지를 벗어나 한 트레이너를 따르게 된지도 어느덧 한달이 넘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습지에서 겪은 자극의 총량을 뛰어넘을 사건사고에 휘말렸다.

무시무시한 포켓몬, 험한 배틀에 치이며 트레이너를 원망하며 울분을 삼키고 이럴 거면 왜 나를 데려온 거냐고 속앓이도 했다. 오아시스의 푸르고 맑은 물을 헤엄치거나 음악과 춤이 가득한 마을에서 알록달록한 천의 빛깔을 등에 업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눈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남겨보거나 마음을 울리는 음률에 귀 기울이며 화톳불을 쬐면서 이대로 안온하게 지내는 삶을 꿈꿨다. 악마쥐에게 걸려 더듬이 한쪽이 꺾이는 불상사도 있었지만 욕심 없는 꼬시레, 샤샤는 더듬이 하나를 내주고 얻은 평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너가 알았더라면 너 정말 겁 많고 투쟁심이라곤 없구나, 웃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캠프에 익숙해진 꼬시레는 진화가 무엇인지도 이해했다. 당장에 저보다 늦게 능란의 포켓몬이 된 태태가 성급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 광경을 보며 발을 동동 굴리던 위위도 날개를 활짝 폈다. 저와 똑같이 아무런 전투력이라곤 없던 소라타마저도 물고기가 용이 되듯이 길고 거대하고 흉흉하게 자라지 않았던가. 포켓몬이란 다 저렇게 커질 수 있는 거구나. 요쿠보가 읽어냈더라면 너 나한테 시비 거냐고 샤샤의 다른쪽 더듬이도 노릴만한 일반화의 오류였다.

정작 샤샤는 이날 이때까지도 강해지는 일이나 진화에 큰 뜻이 없었다. 두건의 남자를 따라가 폭포 아래의 괴수 배틀을 구경하면서도 저런 무시무시한 힘이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앞으로도 트레이너와 함께 방방곡곡 아름다운 세상을 누볐으면 하는 소박한 욕심뿐. 그리고 능란은 샤샤의 이 꿈을 기꺼이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다. 나는 네가 진화하거나 강한 포켓몬이 되길 바라서 데려온 게 아니야. 네가 너라서, 너인 게 좋아서 만나고 싶었고 데려오고 싶었어. 그러니까 샤샤, 너는 지금으로 충분해.

트레이너의 등이 좋았다. 매달려 업히면 이곳이 제 세상의 전부만 같았다. 이대로 쭉 함께하고 싶었다. 꼬시레가 품은 순수한 애정은,

──빈틈 발견. 승부다!”

우와아앗.”

얄궂게도 지금 그대로 남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에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 폭발했다. 둥그렇고 작은 등껍질이 빛에 휘감겨 부푼다. 트레이너에게 업혀 있던 포켓몬이 반대로 트레이너를 보호하듯 품에 안으며 두껍고 단단한 갑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얼결에 안긴 능란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 가슴에 기댔다.

만나자마자 번지수를 틀렸다니까, 형씨. 어디, 계속해볼래?”

 


좋아하는 제목.

샤샤를 진화시킬까 말까 고민했는데(마스코트 꼬시레로 남아줘~) 하느라기를 계속 못 만나기도 했고, 사이가 좋아졌으면 결과를 보여줘야지 싶어서 진화시킨 거였는데(타이밍도 좋았음. 마음에 들음. 저 상황.)

정작 배틀에서 제대로 활약을 한번도 못 시켜줘서... 미안하고 아쉬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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