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11주차 리포트
피부가 에일 것만 같은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망토에 달린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여자는 커다랗게 자란 음번과 함께 협곡을 활공 중이었다. 삐죽삐죽하게 오른 산맥은 완만한 능선을 그리는 다님길과 몹시 다른 분위기를 뽐내었는데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좌로 꺾이면 눈발을 흩뿌리고 우로 꺾이면 오직 차갑기만 한 건조함을 자랑한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다.
“위위, 네 순풍은 어느 방향을 타고 갈래?”
음번이 가고 싶은 그대로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하며 여자는 낯선 하늘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희박한 공기를 폐가 터질 때까지 깊이 들이마시고 아주 천천히 뱉어낸다. 그동안 허공에 흩뿌려지는 뿌연 입김을 헤치고 내려다보는 지상은 꼭 손바닥 위의 이야기책 같았다.
이럴 때 보면 한없이 작은 것 같은 세상을 담으며 여자의 머릿속 페이지가 바쁘게 넘어갔다.
늘봄에서 온 캠프의 인솔자 서유는 정작 그 본인은 읽지 않았다고 하는 고전소설 ‘서유기’와 이야기를 같이한다. 기계와 친하지 않은 대신 집에 있을 때면 오래된 낡은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가져와 읽었던 능란은 서유의 이야기 또한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모험, 희극, 시, 그리고 영적 성찰, 진리를 얻기 위한 고된 여정. 그야말로 가슴이 벅차올라 저도 심장이 터질 때까지 해가 지는 길을 따라 달리고 싶어지는 이야기였다.
화랑의 지도를 펼쳐놓고 볼 때면 또 다른 고전소설에서 등장하는 ‘천하삼분지계’가 떠올랐다. 천하를 하나로 통일해 지배하는 대신 삼등분 하여 세 개의 세력이 서로를 견제해 균형을 이루게 한다는 꾀다. 어쩌면 럼블배틀도 거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각 길의 대표가 늘 1등을 겨룬다는 점. 그를 통해 서로 발전해간다는 점이다. 사람이란 신기하게도 경쟁할 때 더 큰 발전과 성과를 이루는 법이었다.
꼬리를 문 생각은 “그렇다면 경쟁할 대상을 잃은 자는 어떠한가.”까지 치닫는다. 산사와 산수 쌍둥이는 말했다. 「여로님께서 걸으실 패왕의 길, 저희가 마련하겠나이다!」 한 명의 지배자로 이루어진 땅은 그리하여 안정적인가? 우리가 영원한 챔피언을 바라나? 고인 물은 썩는다. 영원은 정지함의 다른 이름이다. 25년이나 화랑의 챔피언으로 군림하며 세운 그의 업적을 존경하나 그 짧은 영원의 결과가 이것이라면 재고가 필요한 순간이 틀림없겠다.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던 황제는 결국 찾던 영원함을 지하세계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어둡고 컴컴한 지하에서 여로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 중일까. 이야기의 결말이 머지않았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던 사고를 간신히 처음 시작점으로 바로잡았다. 어디냐면 바로 음번의 등이다. 목가의 털에 얼굴을 푹 묻은 채 부비작거리자 몸만 자랐지, 아직 어린애 같은 음번의 그르렁거리는 웃음소리가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알에서부터 함께한 포켓몬이 트레이너와 교감한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어.
“이 세상엔 정말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 위위. 나는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야기를 떠드는 것도,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래서 생각한 거야. 이 좋은 걸,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즐기자고. 어디든 발 닿는 곳 방방곡곡으로.”
어쩌다 보니 푸드트럭으로 이야기가 조금 새버렸는데 그건 부차적인 이야기였다─제가 먹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탓인가─. 요는 그저 전국을 누빌만한 이 다리와 포켓몬들, 지치지 않을 입담으로 충분하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에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던가. 기록은 누군가 해주겠지, 기억도 또 누군가 해주겠지. 나는 그저 떠돌면 돼. 이야기가 날 지나면 그걸로 충분해.
여행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했다. 목표는 무엇이고 꿈은 무엇일까. 사람들과 퍽 많은 토론도 했다.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은 좋아하는 것이다. 겨우 한 궤도, 오르고 싶은 것을 찾았다.
“어떤 의미에선 아이 군 말에서 다르지 않게 됐구만.”
좋아하는 걸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설마 그게 이런 걸 줄은 몰랐지만. 음번의 털을 부드럽게 헤치고 여자가 몸을 기울였다. 의사를 알아들은 음번도 미끄러지듯 날개의 방향을 기울여 쏜살같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날개를 움직일 것도 없었다.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는 것으로 바람이 둘을 이끌었다.
스릴감 넘치는 추락을 즐기며 여자가 손바닥만 같았던 이야기 속 세계로 직접 뛰어든다. 아직은 제가 주인공인 세계다.
“화랑도 다 돌려면 멀었는데 벌써부터 화랑을 벗어날 감상은 너무 빠르지. 그래도 너와 함께라면 어디까지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기대가 커. 이 눈앞의 탑도 거뜬히 넘어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자.”
더 큰 세계를 보기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으니까.
”마이카가 생긴다면 말이지. 잘 공간은 아예 지붕 위로 해 버릴까. 그러면 차 내부는 주방공간만 넣어도 충분할 테고 으음……. 너희가 있으니까 바깥도 얼마든지 좋다니까. 그러려면 일단 저축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리그에 가면 상금이 크다고 하지? 어디 상금헌터라도 되러 가보실까.“
능란의 장래 진로에 관해선 메타적으로는 예전부터 생각해두었는데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볼지를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포켓몬스터 : 피치럼블'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5) 11.28. 만나자마자, 만난 뒤로 (0) | 2023.12.30 |
---|---|
054) 11.28. 고산孤山 (0) | 2023.12.30 |
052) 11.25. 행복의 돌전골 (0) | 2023.12.27 |
051) 11.24. 이루리라 (0) | 2023.12.27 |
050) 11.22. 삼고초려三顧草廬 (0) | 202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