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어:오토마타』의 스토리 네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자 로봇과 관련된 네타를 피하고 싶으신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 디셈버 & 아라슈
그 날도 변함없이 맑은 날이었다. 이곳의 날씨는 생각보다 변하지 않는다. 그야 비라도 내렸다간 기계로 이루어진 이곳의 생명체─과연 기계에게 생명체라는 표현을 해도 되는가는 차치하고─들도 곤란해질 테니까. 그러고 보니 맑은 날 외의 날씨를 본 적이 없군. 문득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린 2E는 이런 발상조차 옆의 아이를 닮아버리고 만 것일까 생각하며 곤혹스런 미소를 지었다.
“보급 마쳤으면 슬슬 출발할까?”
“응!”
그에게는 말을 아낀 채 레지스탕스 캠프를 나와서 방향을 잡는다. 목적지는 파스칼의 마을. 그곳에 가서 파스칼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최단 루트는…… 하고 검색하던 9A는 문득 지도상에서 이상한 신호를 감지해냈다. 어라? 이건? 멀지 않은 거리이기에 육안으로 확인하자 분명히 동떨어진 건물 위에 홀로 이상한 신호를 발산하는 기계생명체가 있었다.
“9A?”
“아, 그게요. 뭔가 이상한 반응이 감지돼서.”
“으음, 9A가 이상한 반응이라고 하면 신경 쓰이는걸.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확인하고 가자.”
2E의 말에 9A는 표정을 확 밝게 하고 앞장섰다. 그녀가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조금 떼를 써볼 심산이었다.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던 그 기계생명체는 확실히 다른 로봇들과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을 보고도 먼저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니 그보다──
“저기요~? 혹시 우리가 안 보여~?”
「회로에 이상 없음, 의도적인 무반응. 즉, 무시.」
“로봇에게 무시당했어!?”
아예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9A는 그렇다면 나도 무시해버릴래요! 라는 말과 달리 그 로봇의 주위를 기웃거리거나 말을 거는 등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어째서 이 아이는 작은 일 하나하나에 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소모적인 행위라 생각하며 2E는 한 발 물러났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까지도 저 호기심에 휘말려버릴 것 같았다.
한참 그 로봇 주위를 맴돌던 그가 그렇다면, 하고 다음으로 취한 행동은 해킹이었다.
Access.
한 마디와 함께 그의 의식이 상대 로봇의 코어로 접근한다. 해킹 모델인 그만이 가능한 것으로 그가 해킹을 하는 동안 2E가 할 일은 무방비 상태가 된 그를 지키는 일이었다.
【나……존재…… 세계……】
【존재 의미…… 자신……】
【태어난…… 의미……. 】
“으음…….”
“뭔가 알아냈어?”
해킹을 마치고 의식을 되돌린 그가 턱에 손을 올린 채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그린다. 여느 기계생명체의 사고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하고 9A가 운을 뗀다.
“자신이 태어난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부정: 기계생명체는 그런 사고를 지니지 않음.」
“포드는 너무 냉정해요.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고요?”
「부정: 냉정하지 않음.」
“그게 냉정하다는 뜻인데요!”
익숙한 대화의 주고받음에 2E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드의 말에 일일이 이견을 제시하는 것부터 불필요한 행위라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9A는 그마저도 즐거운 모양이다.
“포드와 입씨름을 벌여봤자 이득이 없어. 궁금증이 풀렸다면 가자.”
“네! ……있지, 2E. 2E는 자신이 태어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우리는 기계생명체에게서 지구를 탈환하기 위해 태어났어. 그 외에 의미가 있나?”
“역시 그렇죠…….”
왜 거기서 침울해지는 건지 모르겠네. 종종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할 때면 반응이 곤란해지고 만다. 힐끔, 자신의 옆을 쫓아오는 그를 보던 2E는 이 이상 쓸데없는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잠깐만요, 2E~! 하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폐허 도시에 메아리쳤다.
이상한 로봇과의 만남은 한 번이 아니었다. 지난번과는 분명히 다른 개체, 하지만 동종 모델, 마찬가지로 이질적인 신호. 철근이 끊어져 툭 튀어나온 아슬아슬한 위치에 서 있는 로봇을 발견한 9A는 한 번 2E 쪽을 힐끔거리고는 로봇에게 다가갔다.
“저기, 안녕하세요?”
“…….”
“이번에도 무시인가요? 좋아요, 그럼 저도 해킹해버릴 거예요.”
9A의 의식이 그의 몸에서 슉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무방비해진 그의 주위를 경계하며 2E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은 짚어두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그가 더 귀찮게 할 테니까, 라는 생각으로 눌러둔다.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강고한……】
【누군가를 파괴하기, 만 해서는…… 승인, 되지 않아……】
【하지만 그래선……, 이 세계에서 우리는……】
【괴로워…… 괴로워……】
“!”
“9A?”
“괴로워하고 있어요. 어째서? 무엇을?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왜 존재하지? 나는? 나는 무엇을 위해……?”
「경고: 해킹으로 인한 전파 동조.」
포드의 경고 메시지가 나오는 순간 2E는 그의 두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정신 차려. 검은 천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는 눈동자가 멍하니 깜빡인다. 아, 아아.…….
“미안해요.”
“더 이상 저런 녀석들을 봐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당신에게 방해야.”
“……그럴까요.”
──언제였더라. 수면은 필요하지 않은 몸이지만 쿨 다운을 위해 때때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두 사람을 위해 레지스탕스 캠프에서 숙소를 마련해준 날, 간이침대에 앉은 그가 안대를 푼 적이 있다. 잠깐이지만 드러났던 그의 눈은 검은 천 아래에 숨겨져 있던 것 마냥 반짝반짝하게 빛나고 있어서, 제 눈도 그럴까? 하고 처음으로 거울을 찾았다.
그야 같지 않았지만.
그 때 보았던 눈동자를 회상한 2E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시점에서 왜 그런 기억을 떠올린 거지. 의미를 알 수 없어. 불필요한 기록을 해버린 것 같아 신경 쓰이잖아. 그러면서도 기억을 딜리트(delete)하진 않은 채 아직 얼떨떨해 보이는 9A에게 그만 가자, 그 말을 남기고 2E는 자리를 옮겼다.
다시 며칠이 지난 뒤, 의뢰를 위해 폐허 도시를 가로지르던 2E는 9A가 어딘지 안절부절 하지 못한 기색을 비치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탐지는 9A만 못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필드를 살피자 2E는 이제 익숙해진 이상한 신호를 감지해냈다.
“2E……, 저기.”
“가보자. 가지 않으면 9A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거잖아.”
“……응!”
그 로봇은 다 허물어진 철탑의 꼭대기에 있었다. 이상하지. 이제껏 만났던 로봇들 모두 아슬아슬한 곳에 걸쳐져선 먼 곳을 응시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잠깐만 실례할게요.”
이번에도 로봇은 다가온 두 사람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관심하다는 듯, 바로 주위의 다른 기계생명체들이 안드로이든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적대심을 드러내며 공격해오던 것과 확연하게 이질적인 모습이다. 적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서며 2E는 해킹에 들어선 9A를 조금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를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제 방침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왜…… 우리들은…… 태어났지】
【어째서 이렇게…… 괴롭지】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이런, 세계…… 필요 없어】
“읏……”
“9A!!”
“괘, 괜찮아요.”
해킹에서 벗어난 그가 휘청거린다. 놀라는 그녀를 향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 9A는 고개를 저어 털어내고는 로봇에게 무언가 말을 걸려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말을 걸기 전에 이제껏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로봇 쪽이 먼저 움직였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외침이었다. 아주 커다란.
『타자를 배제하고 모든 존재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하지만 투쟁은 영원히 이어진다!』
누가 듣기를 바라는 말일까.
『파괴와 재생의 윤회를 반복할 뿐인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만약 기계생명체에게도 표정이 있다면, 아마도 대단히 비통하고 처절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을 떠올리며 2E는 슬그머니 제 뺨을 더듬었다.
『이 세계에게 우리는 사랑받고 있지 않아!』
『이 세계에게 우리는 불필요하다!』
『그러니까! ───』
“어?!”
말릴 새도 없는 행동이었다. 마지막 외침을 끝으로 전구 같은 눈동자를 지잉하고 붉게 빛낸 로봇이 철탑 밖으로 몸을 날렸다. 자살? 과연 이것을 자살이라 해야 할까. 자살 같은 것으로 치부해도 될까.
이전에 기계생명체에게 죽음이란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불필요한 생각을 하고 있어. 9A에게 감화되었나.’
한동안 9A는 철탑 아래로 부서진 로봇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2E는 그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다만 곁을 지켰다.
“2E…….”
“어, 응?”
“우리에게는 싸운다는 것 외에 길이 없는 걸까요?”
“……또 그 이야기야, 9A?”
그는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서있던 로봇이 그러했듯 어딘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때때로 2E는 그의 이런 생각이 걱정스럽다. 싸우는 이유를 찾으려는 안드로이드라니. ……있을 수 없다.
「2E는 9A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파트너의 교체를 요구해도 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런 건 아냐……. 그냥,」
「그냥?」
「……12D는 그 아이를 무척 아끼네.」
「저는 그의 자유의지를 보는 것이 즐겁거든요. 다른 안드로이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니, 그것을 두고 2E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자유의지’……. 그는 이상해. 하지만, 그의 그런 점을 싫어하지 않아. 그래서 걱정되기도 하고.」
「걱정된다는 점엔 동의합니다.」
언젠가 12D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2E는 이마를 짚었다. 그의 유별난 점을 아낀다. 때문에 우려도 크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9A? 우리가 태어난 건 기계생명체로부터 지구를 되찾기 위해. 인류에게 영광을 가져다주기 위해.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건 저쪽이고, 우리를 보면 공격해오는 것도 저쪽이야. 그야… 파스칼의 마을처럼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기계생명체도 있지만. 일부일 뿐이고. …… ……그런 것보다 자꾸 이런 얘기를 하면 코어가 오염되었단 의혹을 살 거야.”
「부정: 9A의 코어엔 이상 없음」
“그럼 돌연변이라도 되거나.”
「긍정: 가능성이 없지 않음」
“포드?? 저, 저 돌연변이인 건가요?!”
「가능성의 이야기. 걱정된다면 정밀 검사를 추천.」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어느새 포드와 익숙한 씨름을 벌이기 시작한 9A에게서 방금 전의 묘한 기류는 사라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2E는 남 몰래 안심하였다. 그녀에게 9A가 조금 독특하고 독특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다. 다만 이로 인해 벙커 쪽에서 그를 이단이라 판단해버린다면 그녀는, ───그녀가 만들어진 본래 의도에 따라서.
‘그 문제라면 12D가 사전에 처리해줄 거라 생각하지만.’
「……들립니까, 2E, 9A? 정기연락시간입니다.」
“아, 12D! 네-에, 들려요.”
「다행이군요. 별 다른 이상은 없었습니까?」
“네. 아, 있죠. 12D. 오늘 파스칼의 마을까지 가는 길에 못 보던 식물을 발견해서……”
타이밍 좋게 12D로부터 정기연락이 왔다. 9A는 언제나 그랬듯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보고하려는 모양이었다. 저 중 상부까지 올라가는 이야기는 몇 개나 될까. 12D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듣는다는 것도 그녀에겐 신기한 일이다.
“──다음에 또 신기한 걸 발견하면 사진을 전송할게요, 12D.”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앗, 또 저만 떠들어버렸네요. 2E는 보고할 것 없나요?”
“나? 딱히……. 있었던 일이라면 9A가 다 얘기했을 거고.”
“제 이야기와 2E의 이야기는 다른걸요.”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으음……”
할 말이 없어 말꼬리를 늘려보지만 12D는 되었단 말도, 재촉하는 기색도 없이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정말 나도 말해야 해? 난감해하는 그녀 옆에서 9A가 고개를 붕붕 끄덕인다. 2E의 언어로 표현해주는 것도 기록에 필요할 거예요. 필요할까. 하지만 양쪽에서 전해오는 압박에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2E는 검은 안대 아래로 눈가에 열을 더하며 더듬더듬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