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고개를 들자 반사 작용처럼 눈물이 툭, 데구르르 떨어진다. 다시 한 방울, 또 한 방울. 어딘가 몸 안쪽이 고장나버리고 만 것만 같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 위로 새파란 하늘이 비친다. 덩달아 눈물도 파랗게 물들었다. 하늘은 빌어먹게도 맑았다. 그렇겠지.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좋네, 운이 좋아. 그런 말을 나누었던 게 바로 전이었으니까.
그 말이 전부 거짓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하……, 치켜들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떨어트린다. 머리가 무거웠다. 이대로 어깨 위에 두는 게 버거울 만큼. 확 떨어트리면 편할 텐데. 하지만 하지 못하겠지. 굳이 검을 들지 않아도 한 번 나갔다 들어온 탓일까. 혹은 시스템의 노후 탓일까. 검이 목을 향하는 순간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대신이라는 듯 제 목덜미를 느릿하게 더듬는다. 습관처럼 손톱을 세울 뻔하다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갉작일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럴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이제 걱정해줄 사람도 없어. 하지 말라고 붙잡아줄 사람도 없어.
눈물로 젖은 손등이 미끄러웠다. 손등끼리 문지르다 한 번 더 헛웃음을 흘린다. 숨을 쉬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호흡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폐에 물이 차오른 듯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한 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안쪽에서 출렁이는 이것은 언제 이렇게 모였는지 모를 슬픔의 무게였다. 혹은 상실의 무게였다.
우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나약한 것이라 생각했다. 맹수를 앞에 두었을 때 등을 돌리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굳이 누군가의 앞이 아니더라도 운다거나 눈물을 흘린다거나, 영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면 눈물 따위 저 사막에서 전부 말라버렸는지도 모르지. 한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우습지. 지금은 그 반대다. 닦아도 닦아도 멎지 않아, 포기하고 그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그러나 맑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건기가 시작된다. 영원히 이어질 건기가.
고요한 예감이었다.
목이 말랐다. 갈증이 지독했다.
¿
하루의 해가 지고 하루의 해가 떴다. 밤이면 무수히 많은 별이 빛났고 낮이면 따스한 볕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저에게는 닿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감각을 안다. 사일란의 타고난 통각. 바늘로 찔러도 내 피부가 아닌 양 느껴지지 않던 무감각함. 그 감각이 피부에서 마음으로, 밖에서 안으로 옮겨간 같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놀랍다고 받아들이지도 못할 정도로.
선악과를 씹은 인류가 이러했을까. 한 번 거짓임을 깨달은 것만으로 낙원의 시스템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배고픔도 졸림도 모두 허상으로 제 것이 아니었다. 손에 만지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전부 허상. 거짓. 가짜. 오롯이 내 것이라 칭할 수 있는 건 그리움뿐이었다. 언제든 얕은 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축축하고 마르지 않는 그리움.
강 위를 맨발로 걸었다. 찰박찰박한 물소리에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강이 멀어졌다. 나를 피하듯 어느새 발바닥 아래로 모래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허리를 들면 돌아왔다. 찰박찰박.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얕은 강은 마를 듯 마르지 않는, 그러면서 닿을 듯 닿지 않는 고통스러운 그리움이었다.
보고 싶었다. 얼굴을 눈에 담고 팔을 뻗어 그를 껴안고 품에 기대고 싶었다. 심장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면 이곳이 현실 같을 텐데. 이곳을 현실이라 믿을 수 있을 텐데.
당신이 있는 곳이야말로 내가 있을 현실인데.
이렇게나 큰 존재였던가. 그래, 이렇게나 큰 존재였다. 한 사람의 빈 자리가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줄 몰랐다. 아니, 알고 있기에 두려워했던 것이다. 소중한 존재를 만들길. 욕심내기를.
여전히 반은 물이, 반은 공기가 차올라 불편한 폐가 숨 대신 웃음을 준다. 그만 이 고장을 받아들였다. 다시는 고칠 수 없는 종류다. 사랑해. 기다릴게.그의 말을 되뇌었고 사랑해. 힘낼 수 있어.제 말도 되뇌었다. 거짓말. 힘낼 수 없어. 견딜 수 없어. 그리고 부정했다.
나는 아무래도 나를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혹은 나를 알지 못했다. 견딜 수 없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뜰 수가 없어. 괴로워. 무서워. 쓸쓸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아아, 또 다시 상실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영영 일어날 수 없었다.
¿
이 낙원은 언제쯤 무너질까. 고작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거짓된 땅은.
나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인데.
마음이 죽었다. 살아있지 않았다. 이 얄팍한 시스템은 그러나 내 죽음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온전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세계에서 마음 하나가 죽은 것 따윌 누가 알아봐줄까.
수많은 두려움이 쌓였다 무너져 내렸다. 다시 수많은 불안이 쌓였다 무너졌다. 다시 수많은 고독이, 수많은 슬픔이, 수많은 원망이, 또 수많은……,
수많은 시간들이 무력한 몸뚱이 위로 쌓였다 무너졌다. 꽃이 피고 초목이 푸르렀다가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눈으로 땅이 꽁꽁 어는 동안 시간이 짓누르듯 쌓였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녹을까.
아니, 되감겼다.
수없이 많은 감기다 만 시간들이 쏟아지는 모래알처럼 나를 파묻었다. 그 때마다 불안이 나를 찔렀다. 아무것도 나를 해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내 망각이었다.
그의 말을 새길 수 있다면. 그를 좀 더 진득하게, 깊게 새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를 잃은 나는 더 이상 강하지 않았다. 스스로조차 지킬 수 없었다.
지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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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곳을 『낙원』이라 부를까?
멀리서 빗소리가 들렸다. 이곳까진 닿지 않을 비였다.
낙원은 좋습니다 여러분. 이치노세 유우키 님 갓시날 감사합니다.
좀 더 잘 쓰고 싶었는데 애프터 로그를. 역량 부족입니다.
쓰면서 들은 곡은 중간중간의 가사들(당신이 끌어안은 내일이 아프진 않을까.)(가지 말아줘.)이나 멜로디가 좋아서. 원곡에 내포된 의미도 물론 무척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