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고 있던 상대가 갑자기 뒤바뀌는 경험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도 뭔가 이상? 저번처럼 상자가 열리기라도 했나? 그렇게 의심하며 에슬리 챠콜은 눈앞의 변화에 눈을 깜빡였다.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가 달라진 상대를 물끄러미 탐색한다. 낯선 것을 앞에 두고 경계하는 야생동물의 표정이었다.
“루?”
아마도.
하지만 그녀가 아는 루는 아니다. 냄새가 달랐다. 그야 생긴 것도 달랐지만. 키는 더 자란 것 같았고 머리는 짧아졌다. 눈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색이 빠진 듯─마치 제 머리처럼─한 그의 오른쪽 눈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미래에서 왔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증거가 있으니 에슬리는 믿기로 했다. 대신 그 눈은 어쩌다 그런 거야? 물었지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 말 듣는다고 걱정이 안 될 리 없잖아.
어딘지 재미나게 보는 시선은 조금 떨떠름하기도 했을까. 그녀가 아는 루는 좀 더 나사가 빠진 것처럼 천연에 속이 들여다보일 것 같은 빤한 미소를 짓던 사람인데 눈앞의 남자는 자기 속내는 한 꺼풀 가린 듯 비추지 않고 이쪽만 마냥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도 날 사랑했어?”
“????”
그래서 예고도 없이 들려온 말에 더 놀랐다. 저도 모르게 펄쩍 뛰어올라 내가? 루를?? 응?? 하고 외쳐버렸다.
“그, 그야 좋아하지만…… 사랑해??”
“으음, 이 때는 아니었구나?”
뭐가 아냐??? 어리둥절함과 함께 목 뒤부터 서서히 열이 오른다. 사랑이라거나, 그런 말 입에 담을 리가 없다. 할 리가 없다. 미래의 그녀는 설마 말하는 걸까? 말도 안 돼. 상상이 가지 않는 미래의 모습에 에슬리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렀다. 미래, 미래……. 오늘만 사는 그녀에겐 연이 없는 단어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눈앞의 그가 정말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면.
“있잖아, 루…, …? 그럼 그 때의 루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 우린 계속 친구야?”
자기가 물어봐놓고 깜짝 놀라 표정을 굳혔다. 대답을 기다리며 조마조마하게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야 긴장되는 일이었다. 미래의 비밀을 지금 들어버리는 건 조금, 치사한 일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궁금했다. 그는 정말 곁에 있어줄까. 약속을 지켜줄까.
눈앞의 그의 존재만으로 답은 알 것도 같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속을 모를 것 같던 의뭉스런 눈빛이 느슨하게 허물어졌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미소는 16살의 에슬리도 아는, 제법 낯익은 것이었다.
“물론이야. 지금보다 더 널 좋아해. 그러니 혹여 내가 널 거부한다면 의심해줄래?”
루가 거부해? 그 루야말로 가짜인 게 아닐까. 그치만 봐, 지금도 저렇게 상냥한 빛으로 보고 있는걸. 어쩐지 제가 낯간지러워서 부끄러울 만큼.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 곧장 닿기보단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서 남을 투영하는 시선이란 익숙해서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나 싫은 건 아니었다. 그가 보는 너머에 똑같이 미래에서 기다릴 자신이 있을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런가. ……그렇구나.
“응! 약속했는걸. 같이 있기로. 약속은 지킬 거니까.”
──이상하지.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기분이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두근두근하게 뛰는 심장이 언제나와 조금 다른 리듬이어서 어째서일까. 의아해지고 말았다. 조금 더 자라면 답을 알게 될까? 그렇다면, 오늘보다 내일을 기대해버릴 것 같은데.
그의 곁에 있을 자신은 얼마나 더 자라 있을까. 문득 그 모습을 상상하는 얼굴에 설렘이 서렸다.
이 때 썰 풀고 난 다음에 우연히 해시태그로 사귀기 전 자컾에게 사귄다고 하면 무슨 반응 보일까 하는 거 보고 또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