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린다. 제법 일찍 도착하였는지 카르테의 번호표는 상당히 앞순이었다. 이왕이면 앞선 사람들의 표정이나 들려오는 소리 등을 통해 표본을 모집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미리 안내 받은 시험의 순서를 떠올렸다.
이번 시험은 전투 능력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그야 아카데미에 입학해 학생 신분이 된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対) 제노, 혹은 돌연변이를 상대하기 위한 군인을 양성하는 게 목적인 곳이다. 특히 군사학부라면 전투 능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카르테에겐 대단히 다행인 일이었다. 전투만이라면 다른 걱정 없이 임할 수 있다.
번호가 불려 안쪽으로 들어간다. 들어간 안쪽은 동그란 원형 경기장 같은 곳으로 반대편 입구에서 대련용으로 제조된 것으로 보이는 로봇이 한 체 나타났다. 그녀가 서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에서는 전면 유리 너머로 예의 면접관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제한은 10분, 그 안에 당신의 전투 능력을 보이시오.」
들려오는 요구에 끄덕이고 낫을 길게 펼친다. 10분이라, 로봇의 성능을 탐색하는 데 약 1분 30초, 유효한 공격을 판단하는 데 20초, 그리고 나머지라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다. 카르테는 낫을 두 손으로 쥔 채 뚜벅뚜벅 로봇에게 접근하였다.
[목표를 확인합니다. 록 온.]
로봇의 양손이 수평을 이루며 똑바로 그녀를 겨냥한다. 그대로 손목 부분이 열리자 기관총이 날아왔다. 일부는 낫을 회전시켜 쳐내고 몸을 옆으로 던졌다. 한 바퀴는 어깨로 낙법을, 두 바퀴 째는 낫의 촉 부분으로 바닥을 찍은 뒤 그 반동으로 허공에 붕 떠 단숨에 로봇까지 거리를 좁힌다.
그녀를 겨냥한 로봇의 팔이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총탄을 한 번 더 낫으로 쳐내지만 일부 파편이 그녀를 얕게 스쳤다. 그러나 통증으로 주춤거린다는 건 안드로이드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시하고 허공에서 다시 제비를 돌아 그대로 위에서부터 세로로 낫을 긋는다.
미리 활성화 해둔 열선으로 붉게 달궈진 초승달 모양의 날이 로봇의 단면을 깔끔하게 내보인다. 그녀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이미 가동을 멈추고 쇳덩이로 변한 로봇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약한 먼지가 피어오른다. 정지한 기계를 앞에 두고 카르테는 면접관들을 보았다. 이것으로 심사는 끝났을까?
그 때, 처음 로봇이 나왔던 입구가 다시 열리면서 이번에는 같은 모델이 두 체, 그보다 더 큰 모델이 한 체 들어왔다. 하긴, 겨우 한 체를 갖고 판단하라는 건 무르다고 그녀 역시 생각하던 바다.
이번에는 두 체가 들어오자마자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낫으로 총알을 쳐내며 카르테는 시계방향으로 달려 총알을 피했다. 그러다 낫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다리에 힘을 주고 위쪽으로 제비를 돌아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두 체의 팔을 잘라냈다.
달아오른 낫의 날이 덩굴처럼 구불거리는 궤적을 남긴다. 공기 중에 화끈거리는 붉은 선이 낫의 꼬리가 되어 카르테의 움직임을 쫓았다. 팔이 떨어진 로봇들은 이번에 뚜껑을 열고 포(砲)에 가까운 거대한 총구를 꺼내들었다. 쏘기 전에 베어내야지. 하고 낫을 머리 위로 크게 들어 올린 카르테는 뒤쪽에서 묵직한 것이 날아오는 소리에 그대로 낫을 바닥에 찍어 점프했다.
부웅─, 하는 위협적인 소리는 예의 커다란 로봇이었다. 가시가 돋아난 거대한 철구를 붕붕 휘두르다가 다시 카르테가 있는 방향으로 내던진다. 철구를 낫으로 막는 건 효율적이지 못했다. 잠깐의 눈 깜빡임으로 행동을 정한 카르테는 아슬아슬하게 철구를 피해 그 쇠사슬을 낫에 감았다.
로봇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쇠사슬을 맨손으로 잡아 손가락의 열선을 이용해 사슬을 녹여버리기 위함이었다. 로봇은 철구가 돌아오지 않자 그 끝을 힘껏 잡아당겼다. 반대로 힘을 주어 최대한 사슬을 팽팽하게 만든 뒤 철구를 사슬에서 끊어낸다. 철구가 매달린 낫은 그대로 두 팔이 잘린 로봇들에게 던져버리고 끊어진 반대편을 잡은 채 거대 로봇이 당기는 대로 근접 접근하였다.
반동으로 인해 쏘아지듯 로봇에게 날아가 양손가락을 로봇의 몸체에 박아 넣는다. 쇠가 일그러지는 소리, 그리고 철이 녹는 냄새가 고약하게 풍긴다. 로봇은 두 손을 들어 그녀를 잡아 떨쳐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팔 한쪽에 오히려 매달려 반대 방향으로 꺾어버리며 로봇에게서 떨어져 내렸다.
생물이었다면 고통에 몸부림 칠 시간 정도는 벌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로봇은 팔 한쪽을 못 쓰게 만들 뿐이다. 다른 팔을 휘적거리는 로봇에게서 뒤로 물러나 낫을 회수하면서 여전히 포를 날리고 있던 두 체의 로봇은 횡으로 베어 행동 정지를 시켰다. 드디어 마지막 한 체. 열선의 사용이 길었는지 에너지의 출력이 낮아짐을 느낀다. 슬슬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카르테는 몸을 낮춘 채 빠르게 로봇에게 접근하였고, 휘둘러진 팔을 다리로 걷어차며 아래에서부터 초승달의 궤적을 그리며 로봇을 베어버렸다.
마지막 로봇까지 행동을 정지하자 째깍거리며 수가 줄어들던 홀로그램의 시계가 멈춘다. 이어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뀌며 그녀가 들어왔던 입구의 옆문이 열렸다.
처음, 한 체만으로 시험이 끝날 거라 판단해 속도에 급급한 나머지 날아오는 탄환을 전부 피하지 않은 건 실책이다. 두 번째 전투에서 낫을 던져버린 것 또한, 새로운 적이 추가되었다면 위험했을 행동이었다.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전투를 재생하며 개선점을 체크하고 낫을 접어 넣는다. 그 사이 탄환을 스치면서 났던 얇은 상처는 자체적으로 아물고 있었다. 이리저리 뛰느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정리한 카르테는 꾸벅, 유리 너머로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