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가 바닥에 적혀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글자가 아니다. 손가락 한 마디가 될까 말까한 작은 사이즈의 무언가들이 모여 만든 글자였다.
「탈출」, 「자유」
그 옆에 다른 글자들도 보인다. 글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카르테는 역시 그것이 네오 모델─슈마커 크로넨보그라고 아직 소개 받지 못했다─에게 속해 있던 꼬마 로봇들임을 확인했다.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네오의 분신.”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해 말을 걸자 누워서 글자를 만들고 있던 꼬마 로봇들이 통통 튀어 오르며 불만을 표한다. 어째서 불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카르테는 불만스러운 꼬마 로봇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한 뒤 표현을 정정해 보았다.
“네오의 부하.”
이번에 꼬마 로봇들은 불만을 표현하는 대신 바닥에 드러누웠다. 소위 배 째라, 라고 부르는 행위는 카르테의 표현에 반박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꼬마 로봇 하나하나의 이름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으로 적당히 넘어가며 카르테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파업, 탈출, 자유. ……네오의 부하는 그만 두었습니까?”
꼬마 로봇들이 다리를 마구 움직이며 ○를 그린다. 그렇습니까. 하고 답한 카르테는 이것도 네오 모델의 특징 중 하나인지, 혹은 「그」의 모델의 특징인지를 고민하였다. 부품이 제멋대로 일을 그만두고 도망치다니.
……역시 그의 ‘개성’이겠지. 적어도 같은 회사의 네오 모델 중에선 이런 기행을 보지 못했다. 자사, ST의 네오 모델들로 말하자면 인간에 가까운 지능과 자아를 가진 것은 틀림없지만 그 자아에 관해서는 한정된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인지는 최대한 제거하고 산뜻하고 아름답도록. 말하자면 언제나 웃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도 화내지 않는 영업사원에 가까운 자아였다.
이 때문에 ST의 모델들은 구 모델을 웃지 않는 마네킹, 신 모델을 웃는 마네킹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에 비해 그녀가 몇 번이나 마주쳤던 타 섹터의 네오 모델인 그는, 그녀 앞에서 제법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감정이 그의 ‘진심’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분명 네오 모델이 초기 출시되었을 때의 홍보 문구 그대로 「인간다운 안드로이드」였다.
인간다운 안드로이드라. 눈살을 찌푸리던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도 심적으로는 그와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으리라. 어째서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걸까. 몇 번을 되새겨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잠시 다른 쪽으로 새던 생각을 거두고 카르테는 어느새 제 앞에서 페어리 링(fairy ring)이라도 만들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로봇들을 툭 건드려 보았다. 불만을 내보인다든지, 화를 낸다든지, 이 꼬마 로봇들이 보이는 감정도 꼭 그의 축소판 같다.
“너희도 할 수 있는 걸 나는 하지 못하다니 재밌는 이야기네요.”
꼬마 로봇들은 툭 건드려 쓰러트리는 카르테의 손가락에 다시 펄쩍 뛰며 반발하는 듯 하다가 그녀의 손가락 위로 쪼르르 기어올랐다.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그 행동을 가만히 내버려두자 멋대로 자기들이 편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꼬마 로봇들은 자유를 달라고 요구해왔다.
물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말하자면 교감 비슷한 것이다.
카르테의 몸에 멋대로 올라타 통통 튀며 꼬마 로봇들은 주인의 착취와 과다한 노동에 항의를 해왔다. 확실히, 이 작은 것들에게 거대한 팻말 같은 걸 들고 옮기게 하던 모습을 떠올린 카르테는 로봇들의 항의에 수긍했다.
“그렇다고 나를 이동수단으로 쓰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자유를 달라. 바다가 보고 싶다. 좋을 대로 의사를 전해오는 꼬마 로봇들에 작게 한숨을 내쉰 카르테는 일단 요구 받은 대로 항구까지 이동하였다.
항구에서는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배는 한 척도 없었다. 짠내음 불어오는 바람과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며 꼬마 로봇들은 만족한 것처럼 방방 뛰었다. 들떴다고 하는 감정 표현인가? 바다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녀로 말하자면 이 짠 바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심정인데.
어쨌든 마음에 들었다면 됐다며 제 어깨에서 내려와 콘크리트 바닥에 쪼르르 선 로봇들을 지켜보던 카르테는 로봇들이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자 깜짝 놀라 도로 수거하였다.
방금 전엔 조금 코어가 덜컹거릴 뻔했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는 망가집니다.”
로봇도 자살 충동이 일던가? 방금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타인의 신체 일부─라고 카르테는 판단했다─를 멋대로 알아보는 건 실례되는 행동이라 방치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대로 둘 수 없어졌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로봇 하나를 손에 들어 스캐닝을 한 카르테는 로봇의 안쪽이 시스템 오류처럼 꼬여 있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술에 취한 것 같은 이상 행동을 보이던 건 아무래도 이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쪽은 제 분야가 아닙니다.”
‘알아차리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그 이상은 무리다. 또 멋대로 뛰쳐나가려는 꼬마 로봇들을 간신히 붙잡아 줄줄이 매단 카르테는 이들의 책임자, 멀리서도 확 눈에 띄던 민트 컬러의 네오 모델을 찾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안전하게 본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