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오래 머무르는 날이면, 빌딩으로 이루어진 숲에 커다란 새가 뜬다.
부정, 새가 아니다. 안드로이드다.
모델명 ST-C-FM. ST에서 개발하고 출시한 C모델 중 개체 수가 특히 적은 비행 모델이다. 그 중에서도 식별코드 1502로 지칭되는 안드로이드였다.
그것이 날씨가 맑은 날이면 장시간 비행을 한다는 건 이 근방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었다. 한 차례의 멸망을 겪은 후 비행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새나 나비 따위의 자연물이 전부였고 특히나 이곳, 1섹터의 산업단지에서는 그것들조차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비행을 하는 안드로이드는 자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식별코드 ST-C-2908LZ, 같은 회사의 전투형 모델 중 하나인 붉은 안드로이드는 광합성을 위해 회사의 옥상에 올라 종종 ST-C-1502FM의 비행을 지켜보았다.
어떤 새와도 움직임이 다르다. 아마도 새가 따라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겠지. 저것은 새도, 생물체도 아니니까. 비행기를 거의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현재에 몇 안 되는 하늘을 나는 쇳덩이다. 인간은 여전히 날 수 없는 시대에 인간이 만들어낸 쇳덩이는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 조금 희극적일까.
변칙적인 비행이 가능하였지만 저것의 비행은 대체로 단조로웠다. 바람을 따라서, 햇빛을 가장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는 장시간 비행. 언젠가 붉은 안드로이드가 푸른 안드로이드에게 “비행하며 충전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푸른 개체는 “데이터의 수집을 위해서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붉은 안드로이드는 그 말에 굳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납득한다는 조금 기묘한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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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오래 머무르는 날이면 옥상에는 몇 남지 않은 프로토 타입 안드로이드가 모였다. 안드로이드가 모이면 대화는 생기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를 나눈다는 행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옥상에 모였다.
같은 시간의 공유. 단지 그 뿐. 푸른 안드로이드는 내내 하늘을 맴돌며 때때로 그들에게 그늘을 만들기도 했고, 그러다 붉은 안드로이드와 시선이 맞기도 했다. 그늘을 만들지 마세요. 붉은 안드로이드의 입모양을 읽고 푸른 안드로이드가 조금 멀리까지 활공하면, 때때로 붉은 안드로이드의 눈에 그 장면이 추락처럼 보였다.
인권 협정 이후 6체의 안드로이드가 깨어났다. 3년이 지났을 때는 그 수가 반으로 줄어 있었다. 붉은 안드로이드는 더 이상 푸른 안드로이드가 그늘을 만드는 것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의 그림자에 가려질 것이 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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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그늘을 만들지 마세요. 충전에 방해입니다.”
“이곳에 먼저 온 것은 저입니다. 따라서 방해라면 카르테가 자리를 옮기는 것이 타당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섰을 때 네 그늘은 없었습니다. 즉, 나의 등장 후 네 비행경로가 달라졌음을 지적, 카타르시스의 이동 쪽이 타당하다고 판단합니다.”
“제 비행경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부조리한 지적입니다.”
10섹터의 일조량은 1섹터에 비해 풍부하다. 이곳의 기후는 대체로 맑았고 낮이면 수면을 반짝이는 햇살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다.
최근 카르테는 굳이 충전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매일 같이 충전을 하며 이것이 ‘취미’에 속하는 행위일지 모른다고 인식했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음에도 행한다. 어쩌면 시간의 낭비라고 해도 좋을 행동이라고 처음 인식했을 때는 더 이상 그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누구였지.
오늘은 나가지 않아?말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 그 말 한 마디가 허락처럼 느껴져서.
그 뒤 카르테는 매일 햇볕을 쬐고 있다. 햇볕을 쬐는 일을 ‘좋아한다’고 어설프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팔을 쭉 뻗는다. 관절이 드러나는 팔다리 위로 따사롭게 와 닿는 햇빛이 얕은 빛의 조각을 만들었다. 이미 100% 충전을 마친 상태였지만 조금만 더, 카르테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지금쯤 고향의 옥상에는 무엇이 올라가 있을까. 회사에 남은 마지막 한 체를 떠올린다. 제비뽑기라고 하였지만 필요에 의해 계산된 선별이었음을 어떤 것도 모르지 않았다.
이름을 받지 못한 형제 안드로이드는 혼자서 옥상을 오를까.
선관이란 이유로 말도 없이 자주 빌려가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카타르시스. 아 카타르시스 사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