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정리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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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ST-C-2908LZ의 통상 업무는 서류 작업이다.
「거기 얘.」
휴전 전까지만 해도 통상 업무라 함은 최전선에 나가 제노나 돌연변이 등과 전투를 벌이는 일이었지만 대침묵, 이어 휴전, 가동 중지,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ST-C-2908LZ는 『평화로운 세계』란 곳에 떨어지게 되었다.
「거기 빨간 애.」
「?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너 말야. 잠깐 이리 와 봐.」
고작 5년, 하지만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ST-C-2908LZ는 회사의 재산이 아닌 직원으로 등록되었고 손목에는 섹터의 거주민이란 증명증을 차게 되었다. 전투에 나가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고 때때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거 먹어볼래?」
눈앞에 내밀어진 것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둥그런 도넛이었다. ST-C-2908LZ는 쳐다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이빨로 베어 문다. 씹는다. 삼킨다. 반죽을 튀겨서 위에 초콜릿을 바른 것. 겉으로 추측한 그대로의 맛.
조금 느리게 받아든 것을 전부 씹어 삼키자 이번에는 ‘맛은 어땠어?’ 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맛의 평가, ST-C-2908LZ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음식을 품평하는 표현들을 찾아 조합하여 문장으로 답하였다. 그리고 또? 그것 뿐.
역시 얘는 프로토라서. 무엇을 기대한 걸까. 눈앞의 사람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듯 웃다가 「그거, 선물이었어. 거기 맛있으니까 또 먹어봐.」 그런 말을 남겼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ST-C-2908LZ도 급료는 꼬박꼬박 받았다. 회사 앞 왼쪽에서 세 번째 블록, 첫 번째 사거리를 왼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도넛 가게. 음식의 섭취는 그에게 무의미한 행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도넛을 구입하였고 먹어보았다.
삼킨 음식물은 나중에 따로 배출하거나 내부에서 ‘청소’를 거쳐 없앤다. 음식의 낭비, 에너지의 낭비, 알면서도 샀다.
먹어본 도넛은 그 때와 다른 맛이었다. 회사의 직원들에게 그 가게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모양이 미세하게 다른 만큼 맛도 미세하게 다르다.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데이터.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 뒤로 ST-C-2908LZ는 종종 출장 지역의 도넛을 사게 되었다. 도넛을 좋아해? 라고 묻는다면 maybe yes. 하지만 그의 기호란 무의미하고 또한 무가치하다. 때문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붉은 프로토 안드로이드》는 이제 ST-C-2908LZ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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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마칩니다. 갱신된 기록을 제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