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세차게 부는 밤이었다. 태풍일까. 언제나 완만한 기후일 줄로만 알았던 10섹터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들었다.
비는 하염없이 내렸다. 창문을 타고 때리는 빗소리가 아카데미 건물 안을 울렸다. 언제나 낮이든 밤이든 떠들썩한 곳이지만 그 날은 기묘할 정도로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그 대신이라는 듯 빗소리가 모든 소리를 삼키고 시끄러움을 대신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한 번 커다랗게, 번개가 내리쳤을까. 갑작스럽게도 아카데미의 모든 전력이 일순 차단되었다 돌아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전력이 끊긴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그래서 이변을 알아차리는 것이 늦어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마스터.”
“응… 어…?”
“비가 그친 다음날은 공기가 더 맑네요. 햇빛은 싫으신가요?”
로넨 올가는 라임빛깔의 눈동자를 멀거니 깜빡였다. 방금 이상한 호칭을 들은 것 같은데. 그보다 카르테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카르테?”
부름에 원을 그리는 눈동자가 느릿하게 그녀 쪽을 돌아본다. 그 눈동자는 부드럽게 휘어, 그렇지. 꼭 미소라도 그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서는.
“네, 마스터.”
낯선 단어를 입에 담았다.
낯선 시선이 자신을 응시했다. 저 시선. 다정함, 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
그녀의 것이 아닌 것.
──눈앞의 안드로이드는 그녀가 아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다. 로넨의 이해회로에 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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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네, 당신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당신은 로넨 올가입니다. 무언가 문제라도?
이상하네, 난 카르테를 만든 기억이 없는데. 네 마스터가 아냐. 아학, 아하학.
이상한 말씀을 하는군요. 저를 만든, 제 주인은 틀림없이 당신입니다. 로넨 올가.
……좋아, 점검을 하자. 카르테.
───아아, 정말. 싫다.
제 말에 그녀가 순순히 몸을 맡긴다. 손을 움직이면서 로넨은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에 몰두하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응시해오는 시선이 버거웠다.
상대의 시선은 똑바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가 덧그리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었다. 로넨 올가는 언제나 가볍고, 고민할 바에야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주의에,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명쾌함을 추구하였지만 그것이 무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눈앞의 카르테가 보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다. 모르지 않았다.
“부정. 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잖아 카르테. ‘네가 아는 로넨 올가’를 보고 있는 거잖아. 그 사람은 내가 아냐.”
“마스터.”
“나는 너를 만든 사람도 아니고, 제 마스터도 아니고, ……네게 그런 시선을 받는 사람도 아니잖아.”
“마스터. 로넨.”
“카르테는 날 로넨이라고 불러주지 않아. 그야, 내가 불러달라고 한 적도 없지만.”
“올가.”
“그게 아냐. 아냐, 카르테…….”
이쪽의 카르테는 로넨을 보고 웃어주었다. 마스터.
이쪽의 카르테는 로넨을 다정히 대해준다. 마스터.
이쪽의 카르테는 로넨을 좋아해준다. 네, 마스터.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그 때마다 자신이, ──olga가 버려졌다.
마스터. Delete.
로넨. Delete.
그럼 제가 어떤 호칭을 취하면 될까요? 그것도 아냐. Delete.
네가 뭐라 부르든, 그 호칭은 나를 가리키는 게 아냐.
그렇다면 네 안에 나는 어디에도 없어.
그것이 로넨으로 하여금, 눈앞의 안드로이드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마스터가 저를 부정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혼선이 생겼다는 점은 이해하였습니다. 당신이, 제게 기록된 제 마스터와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제 눈앞에는 지금 당신밖에 없습니다. 마, ……올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웃어주길 바랐다. 울어주길 바랐다. 좀 더 자신이 지닌 감정에 솔직해지길 바란 것도 같다. 나를 싫어해도 좋아. 그게 네 진심이라면.
하지만 이런 형태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카르테라면 자신이 바라는 무엇이든 해주겠지만, 달랐다.
틀렸다.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을 응시해오는 사뭇 맹목적이기도 한 눈동자가 낯설었다. 차라리 아무 감정도 담지 않던 무기질의 눈동자가 그리웠다. 나는 더 이상, 그 눈동자를 볼 수 없는 걸까?
“카르테. ……너에게 난, 누구야?”
절대 내가 아는 나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