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학, 하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먹구름을 헤치듯 울려 퍼진다. 카르테는 그저 렌즈를 빙그르르 돌렸다. 그녀의 손은 오렌지를 까고 있었다. 지금이 제철이라고 들었다. 막 봄 비를 집어삼키며 겨우내 언 땅에서 당도를 끌어 모아 주황빛으로 잘 익은 오렌지는 껍질에서부터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카르테가 오렌지를 까고 있는 이유는 별다를 게 없었다.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였지. 마을에서 한 궤짝을 사다가 아카데미 앞에 멋대로 둔 사람이. 오렌지의 단 내음은 꽃이 벌을 부르듯 지나가는 이들을 많이도 현혹시켰다. 그러나 오렌지를 까는 일은 제법 수고스러웠다. 단단한 껍질은 귤보다 벗기기 어렵고 자칫하다가 즙이 튀기도 쉬웠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판단하고 카르테는 궤짝 옆에 앉아 오렌지를 까기 시작했다.
까두면 오렌지는 금세 줄었다. 지나가던 아카데미 학생들이 기웃거리다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선 집어갔다. 에단이, 벤자민이, 체이서가, …… ……학생만이 아니라 교관까지도 지나가다 집어먹고는 맛있다고 하였던가.
그러던 카르테의 앞에 로넨이 나타난 것이었다. 새까만 꼬리를 휘적휘적 흔들며.
카르테는 그녀에게 오렌지 한 조각을 내밀었다. 로넨은 흐릿한 라임색의 눈동자를 몇 번 깜빡이다 냉큼 받아먹었다.
“시고 달아~!”
“시고 단 맛이 나는 과일입니다.”
“왜 까고 있어? 누가 시켰어?”
“자의적 판단입니다.”
“카르테가 자의적으로 움직이기도 해?”
관찰하듯 그녀의 시선이 히죽히죽 반달의 곡선을 그리며 닿아온다. 카르테는 그 시선을 문자 그대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받았다.
“긍정. 자의적 판단입니다.”
“정말일까.”
“올가는 제 말을 신뢰하지 않는군요. 그럼에도 늘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요.”
렌즈가 다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간다. 붉은 시선이 상대를 응시한다. 카르테는 자신이 한 질문의 답을 모르지 않았다.
정말 자의적이야? 라고 그녀가 캐묻는다면 결국은 들통나고 말겠지. 그녀는 안드로이드다. 자의 따위 없다. 있다면 매뉴얼과 매뉴얼에 따른 계산 뿐.
자의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만큼의 고도의 계산된 행동인 것이다. 거기에 그녀 자신의 의지는 개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넨은 그 이상 묻지도, 반대로 답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카르테의 코앞까지 얼굴을 가져갔다. 그녀의 동공은 때때로 볼록렌즈 같이 보였다. 조금 불투명한 볼록렌즈. 그녀의 눈동자를 앞에 두고 카르테는 볼록해진 제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상대의 깜빡임에 맞춰 눈을 깜빡였다.
오렌지, 하나 더 먹겠나요? 그녀의 물음에 로넨은 아니, 하나로 충분해. 하고 답하고는 여전히 숨이 닿을 위치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듯 머물렀다. 카르테는 그녀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고자 그 부담스러운 거리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오렌지를 깠다.
───돌연, 프로토 타입이란 낙인과도 같은 뺨의 접합부에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이 때만큼은 카르테도 조금 놀라고 말았다. 놀라움의 표시라고는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렌즈가 빠르게 한 바퀴 돌았다. 정도였지만.
“방금의 행위는 무슨 의미인가요. 올가.”
“전달하기 게임이야, 카르테~!”
아하학, 하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먹구름을 헤치듯 울려 퍼졌다. 카르테는 그 말을 이해하고자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카르테에게 전달했으니까, 다음은 카르테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줘야 해.”
그런 게임이니까, 알았지?
결코 명령은 아니라는 듯 하지만 게임이니까 너도 참가하면 좋겠다는 듯 은근한 어조가 오렌지의 과즙처럼 달짝지근하게 달라붙는다. 카르테는 잠시 장난기가 감도는 눈앞의 상대와 제 손의 오렌지를 번갈아보다가 한 조각 더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다.
“마땅한 상대가 있다면,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내밀었다.
전 제목을 잘 못 짓고 그럴 때 저렇게 단어 세 개 나열해두면 좋고 이 뒤 누군가 이어줘도 재밌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