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다음날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자고 일어났을 때, 눈을 찌르는 태양빛과 제 머리색마냥 새파랗게 펼쳐진 하늘에 요리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피크닉 준비를 하였다. 다이아의 방에 달려가, 손을 잡고는 함께 식당의 조리실을 빌려서는 피크닉 음식을 만들었다. 주 메뉴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함께 양념된 밥을 주물러 유부의 속을 채우고 샌드위치에 넣을 재료들을 손질하면서 요리는 봄을 만끽할 기분으로 가득 차올랐다.
“기대되네, 나미나미!”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서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싸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조리실의 직원들이 이것저것 도와주거나 챙겨주기도 했다. 덕분에 메인메뉴 외에도 과일이며 간식이 잔뜩 생겨서 이걸 다 먹어치우려면 두 끼는 필요할 것 같았다.
피크닉 가방에 차곡차곡 받은 것들을 챙겨 넣고 얼굴을 마주하고는 똑같이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 가볼까? 요리가 손을 내밀자 다이아는 맞잡아주었다. 그게 또 기뻐져서 요리는 그 손을 꼭 붙잡고 힘차게 꽃이 만개한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아.”
봄이 찾아온 모모노하나는 알록달록한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 학원에 깃든 신들이 각자 좋아하는 색의 붓을 들고 달리기라도 한 듯 온갖 색의 향연이었다.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하던 요리는 아, 하고 한 박자 늦게 손뼉을 치고는 다이아와 함께 앉을 자리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그곳은 정오가 되면 햇빛에 노출될 겁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죠.”
“오케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벚나무가 아닌 산책로의 평범하게 늘어선 벚나무들 한곳에 자리를 편다. 혹시라도 다른 학생들이 와서 멋대로 앉으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의 자리라고 확실히 표시도 해두었다.
피크닉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본론에 들어갈 차례다. 요리는 잠자리채 두 대를 꺼내 하나를 다이아에게 주었다. 이것은? 하고 의아한 얼굴을 하는 다이아를 앞에 두고 소녀가 한껏 양 손을 허리에 둔다.
“지금부터 봄사냥이야!”
“네?”
그러고 보니 그런 걸 한다고 했었죠. 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다이아에게 요리는 잠자리채를 붕붕 휘둘러보였다. 두 사람이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벚꽃잎은 끊임없이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었다. 그 벚꽃잎을 낚아채려는 듯 요리의 손이 잠자리채를 돌렸다.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봄을 사냥하는 거야. 어때? 간단하지☆”
참 쉽죠? 같은 말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과 함께 다이아는 잠시 제 손에 들린 잠자리채를 물끄러미 보았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 행동의 목적이라거나 의미 따위를 냉정하게 따졌을지도 모른다. 쓸데없이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 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건 봄일까? 아니면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일까. 지금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따지기란 어려웠지만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좋습니다. 저도 나나 씨처럼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도시락 먹기 전까지 누가누가 잘 사냥하는지 승부야!”
“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두 사람이서 정말 이리 뛰고 저리 뛰고를 반복했다. 연 날리기를 하는 것처럼 요리는 잠자리채를 높이 든 채 두다다닷 산책로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달렸다.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체력을 가진 그녀는 꼭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보였다.
요리만큼 달리지 못하는 대신 다이아는 침착하게 계산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벚꽃잎이 떨어지는 각도와 속도를 토대로 군더더기 없이 잠자리채를 휘두르자 그녀의 잠자리채 안에도 차곡차곡 꽃잎이, 아니 봄이 채워졌다.
“아하하, 나미나미 굉장해~!”
“나나 씨야말로 대단한 체력입니다.”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벚나무 아래를 달리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폴짝폴짝 발바닥을 떼었다 붙일 때마다 제 발 아래 꽃잎들도 같이 튀었다 가라앉는 것만 같아,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두 팔을 벌리고 춤이라도 추듯 빙글빙글 바람 부는 벚나무 아래를 돌던 요리는 기어코 다이아의 손도 잡아끌고는 같이 벚나무 아래를 뛰듯 걷듯 오갔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야, 봄. 이렇게 있으면 꼭 꿈속에 있는 것만 같지 않아?”
벚꽃잎처럼 새하얀 미소를 보이는 요리에 다이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한참을 뛰어놀고 난 뒤에는 즐거운 도시락 타임이었다. 우선은 조금 지친 몸을 위햇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부터 따랐다.
“와아, 나미나미. 이거 향 좋다.”
“다행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원한 걸 준비하는 건데……”
“아냐, 아냐. 이열치열이라고도 하고. 따뜻한 차가 들어가서 좋은걸.”
차를 홀짝이고는 차곡차곡 쌓은 도시락을 열자 첫 번째 칸에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두 번째 칸에는 샐러드와 문어 소시지 따위가 나타났다. 마지막 칸은 조리실에서 받은 과일이 들어 있었다.
나미나미도 요리 잘하는걸? 그리 대단한 걸 만들진 않았는걸요. 그래도~ 다음에도 또 같이 해보자. 네, 다음엔 새로운 메뉴에 도전을. 그런 자잘한 이야기를 하며 먹는 사이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코우가 멋대로 음식을 집어먹고 가기도 했다.
미나밍 선배는 이럴 때만 레이더라도 있는 것 같지? 비밀 얘기라도 하듯 소곤거리는 요리의 말에 다이아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만 먹기엔 많은 양이었으니까요. 다이아의 뒤이은 말은 코우가 들었다면 아마도 먹어줘서 다행이었지? 라고 으스댈 내용이었다.
배부르게 먹고는 두 사람이서 잠시 기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렇게 느긋하고 평화로운 거 너무너무 좋아. 아마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일어나서 봄사냥이라며 뛰어다니고 돌아와서는 쿠키와 차로 두 번째 티타임을 갖고, 어느새 오후가 무르익고 잠자리채가 빵빵해지고 나서야 다이아는 물어볼 수 있었다.
“벚꽃잎을 모은 다음에는 어떤 걸 하나요?”
“음음음~ 봄을 사냥한 걸 자축하며 연회?”
결국 또 먹고 놀겠단 뜻이었다. 그러나 다이아는 그저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냈고 다이아의 반응에 요리는 안심할 수 있었다.
“굉장하지 않아, 나미나미? 이 잠자리채 안에 우리가 봄을 담아버렸어. 그리고 우리는 이걸로 자연이 준 첫 번째 봄이 아니라, 우리의 두번째 봄을 만들 수도 있게 된 거야!”
“두 번째 봄?”
“에헤헷, 잘 지켜봐줘. 지금부터 나미나미의 품에 봄을 가득 안겨주는 주술을 걸 테니까.”
“? 네.”
잠자리채의 채와 대를 분리하고 입구를 꼭 막은 채를 껴안은 채 요리는 다이아가 앉은 자리의 옆으로 주섬주섬 올라갔다. 주술을 건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눈이 반짝이자 살랑살랑하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ー어쩌면 주술이 아니라 그저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꼭 그녀가 불러온 바람 같았다ー.
하나…, 둘…, 셋…! 소리와 함께 요리가 잠자리채를 펑 터트린다. 하늘에서는 전에 없이 많은 양의 벚꽃이 쏟아져내렸다. 자연스럽게 흩날리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만들어낸 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풍경이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색무취의 꽃잎에 다이아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벚꽃의 파도(桜の波)야, 나미나미!”
파도치듯 쏟아지는 벚꽃잎 위에서, 꽃잎의 파도 속에 있는 친구의 표정을 살피며 요리는 꾀가 성공한 어린아이처럼 득의양양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