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가린 가방에서 빼꼼 나와서 살짝 눈웃음을 보인다. 사과할 것까진 아니었는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가방에서 꺼낸 건 나무로 만든 빗이었다. 고향에서 가져온 것 중 하나로 잘 깎아 기름을 먹이고 다듬어 머리카락에 닿는 느낌이 좋은 빗이다. 세이라 자신은 곱슬기가 심해서 이런 빗으로는 쉽게 빗어지지 않았지만 저와 다르게 실타래를 늘어놓은 듯한 그의 머리카락이라면 괜찮겠지.
“자아, 잠시만 돌아 앉아 주세요.”
미용실이 되어주겠다고 자신하였지만 막상 길고 고운 머리카락을 보니 고민이 되었다. 스스로도 단순하게 땋는 것 외에 크게 관심이 없던 분야이고 화려한 건 그가 훨씬 더 잘 하지 않을까. 머리로는 계속 고민을 하면서 리본을 풀어 내린 그 머리카락을 빗으로 길게 길게 빗어내려 주었다.
“미조레 군의 머리카락은 정말 결이 좋아요~ 조금 부러울 정도인데. 늘 생각했지만 이렇게 기르기 힘들지 않은 걸까요.”
자기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시치미를 뚝 떼며 그에게 재잘거림을 이어나갔다. 아오노미야 미조레, 아름다운 아이, 아름답도록 언제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잘 꾸며져 있던 아이.
학원에 막 들어올 당시부터 있었던 세이라가 기억하는 저보다 먼저 있던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 그 당시에는 모두 비슷비슷한 아이들이었기에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고운 머리카락을 하고 늘 값진 전통복을 걸치고 다니고 어른스러우려 노력하던, 일찌감치 어른이 된,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
그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중등부를 가고 고등부로 가는 사이에도 여전히 아이인 채이다. 앨리스가 성장을 방해하였다고 했던가. 그가 꿈꾸는 자유를 매번 발목 잡는 것만 같은 앨리스. 엉킬 일은 없을 것 같은 감촉이 좋은 머리카락을 끝부분까지 섬세하게 빗으며 목에 채워진 제어구에도 시선을 남긴다. 저 역시 비슷한 용도의 것을 하고 있었지만 목적이 달랐다. 단순히 고출력을 억제하는 자신의 것과, 앨리스 그 자체를 억누르는 것, 여전히 앨리스를 자신의 일부라 여기는 세이라는 저것이 미조레의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족쇄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어느 쪽도 자유는 아니라 여겼다.
“이렇게 삼색인 거 신기하네요. 그거 알고 있나요? 세 가지 색의 실을 엮어서 짜는 건 대단한 기원이 담긴다고 해요. 세 가지, 다섯 가지, 이런 식으로 늘려나갈 때마다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지금도 미조레 군의 머리카락엔 기원이 가득할 것 같네요.”
그는 아직도 저택의 호수를 꿈꾸고 있을까. 가문으로 돌아갔다간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질지도 모른다고 했지. 정작 그 바탕에는 앨리스를 향한 욕심만 있을 뿐, 그 자체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닌 것만 같았다. 원망하는 시선, 그 서늘함,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나누어 땋기 시작한다. 그가 행복하길, 자유롭길, 실을 엮어 기원을 만드는 것처럼 섬세하게 손끝을 놀렸다.
“이이제이(以夷伐夷)라는 말을 아나요? 두려운 것이 있을 때에 그보다 더 두려운 걸 상상하면서 눈앞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거예요. 으응, 가령…… 미도리카와 군이 엄청나게 화를 낸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보상을 상상해도 좋고요.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에 돌아와서 아주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두려움은, 상상을 먹고 크는 괴물이에요. 가끔은 그러니까 상상의 껍데기를 벗기고 아주 담담한 사실만을 남겨놓고 보는 것도 좋답니다. 그리고 두려움 대신 다른 것에 상상의 힘을 실어주세요.”
미조레 군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조곤조곤한 말과 함께 가운데를 굵게, 이어 양 옆머리를 삼색으로 땋았다.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 덕분에 아래를 땋을 때는 무릎을 꿇은 채 해야 했다. 으응, 땋을수록 머리카락이 엮여서 무거워지는 느낌인데 괜찮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열심히 땋은 머리카락을 모두 합쳐 하나의 굵은 것으로 완성하였다.
힘든 과정이었다고 혼자 뿌듯해하며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의 끝에 제 귓가를 간질이던 붉은 리본을 풀어 단단히 묶어준다.
“실은 엮는 과정에 기원과 바람이 담긴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미조레 군의 머리카락에 기원을 후 불어넣어 보았답니다. 나중에 머리를 풀어도 제 기원은 계속 남을 테니 부적을 하나 품은 셈 해주세요. 미조레 군을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지켜줄 아주아주 따뜻한 부적으로요.”
이걸로 세이라 미용실은 끝이에요. 조곤조곤 속삭이던 말을 마치고 그의 앞으로 돌아와 방긋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