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었다. 어느새 눈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대신 땅이 부드러워지며 그 위로 새순이 올랐다. 곧 목도리도 필요 없는 계절이 되겠지. 또 한 발 늦고 만다. 느린 손을 탓하며 세이라는 부지런히 목도리를 짰다. 진도가 느린 이유는 달리 더 있을지도 몰랐다. 쫓아가지 못하는 건 손만이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그랬다. 초등부 시절부터 늘 앞서 나가는 선명한 붉은 머리, 그에 비해 한참 느린 자신. 완벽해질 거야.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지. 빠른 발보다도 더 높은 곳을 향하는 눈. 그 눈이 닿는 곳을 따라 응시해보기도 했지만 제겐 너무나 눈부시기만 했다. 바로 보지 못할 만큼.
저는 너무 높아서 무서울 것 같아요. 혼자서 외로울 것 같아요. 마요이는 그렇지 않은가요?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 같았지. 찬란한 미소. 그녀에게 손을 잡혀 당겨지기도 여러 번, 그러면 잠시나마 비슷한 속도로 나란히 걷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자기가 너무 느린 탓이었을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녀가 흥미를 두고 가치를 둘 대상에서 탈락해버리고 말았을까. 질린 걸까.
그녀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은 가늘고 뾰족하지. 높고 위태로운 곳. 많은 것을 짊어지고는 갈 수 없다. 그러니 하나씩, 둘씩 놓아버리는 과정에서 떨어진 걸까. 더 이상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걸까.
호칭이 달라지고 눈높이가 달라지고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달라진다.
하나의 변화에서 하나의 차가움을, 다시 하나의 변화에 서글픔을, 그리고 애석함을 느낀다. 자신이 추위에 약하단 것쯤 그녀도 알고 있을 텐데. 부러 주는 그 서늘함에 주춤하고 말았다.
「자유로워지도록 해.」
언젠가, 어째서냐고 물었을 적에 돌아온 답.
내게 더 실망하지 말고.
꼭 실망하길 바란 듯한 말투였다. 세이라 자신은 한 번도, 그녀에게 어떤 실망도 느낀 적이 없는데. 실망할 상대가 있다면 무력하고 남에게 기대려고만 하는 자신뿐이다. 마요이는 그럼에도 차라리 포기하려는 자신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준 상대였다.
그러니 실망하길 바라는 건 저가 아니라 상대였다.
무거운 걸까. 많은 것을 짊어지는 게.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그만 그녀를 둘러싼 것들로부터.
그렇다면 놓아주어야 하는 쪽은 누구일까. 붙잡고 있는 쪽은.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마요이를 바라게 해주세요. 놓고 싶지 않았다. 그 길에 함께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느림보인 자신으론 무리다.
무리인 것이다.
「약속… 뭐였더라.」
마요이와 제 약속은 마요이에게 결정석을 받은 그 날, 마요이의 기억에서 이 결정석으로 옮겨갔는지도 몰라요. 저와의 약속을 지켜주는 건 이 결정석이고, 마요이는 그 어린 날의 약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지요.
약속이란 말로 당신을 붙잡고 있었나 봐요. 어리광을 부리고 있던 거예요.
강해지려고 했지만 결국 강해지지 못했다. 그러니 약한 자신은 여기까지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무게를 덜고 놓아주기로 한다. 그녀가 제 자유를 바라주었던 것처럼, 그녀에게 자유와 행복이 깃들길 바라며.
목도리를 떴다. 앞면은 붉은색, 뒷면은 흰색. 앞뒤로 반대색의 하트가 수놓아진 것.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이걸로 그녀가 조금은 더 따뜻하길, 그리고 조금은 더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랐다.
“곧 졸업이지요. 이제 졸업하고 나면 지금처럼 볼 수 없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졸업 선물인 셈 해주세요.”
첫 이름, 그리운 호칭, 앞으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될까. 한 번 더 듣길 바랐지만…… 더는 욕심내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