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아요.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포근하고.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따뜻한 것도 같던데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려는 걸까요. 벚꽃이 다 져버린 건 아쉽지만 꽃잎이 진 자리로 푸르른 새 잎사귀가 돋아나는 풍경 또한 무척 곱네요. 나무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계절이 달라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요. 집 앞에 커다란 감나무도 있는데 말이죠. 가을에 감이 열리면 무척 맛있단 이야기도 들었답니다. 벌써부터 가을이 기대되겠어요.
새 집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이제야 겨우 저희 집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막 이사 왔을 당시엔 새 집 냄새도 적응이 안 되고 물건들의 위치도 정신이 없고…… 남의 집이란 느낌이라 발소리 하나까지 조심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편안히 쉴 수 있답니다. 직접 앉아보고 고른 소파가 아주 좋은 것 같아요.
한쪽 벽의 진열장은 정말 인형과 친구들에게 받은 다른 선물들로 꽉꽉 차서,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가만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구경해요. 보고 있으면 금방 교실 풍경이 그려져서 쓸쓸함이 덜해져 아주 다행이지요. 그 때 욕심내서 토끼 인형을 모은 보람이 있나 봐요.
그렇지. 오늘은 시장에서 고등어를 사왔어요. 카레 가루를 위에 솔솔 뿌려서 지글지글 구울 예정이랍니다. 토란을 넣을 된장국을 끓이고 다른 밑반찬은 시장에서 함께 사왔어요. 시장의 반찬가게, 이제 거의 단골이 되어서 아주머니가 종종 덤으로 이것저것 챙겨주고 하세요. 요리는 학원에 있을 때도 조금 배워두었지만 자기가 먹을 밥을 매번 직접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요.
아, 전기세랑 수도세 내는 것도 쓰레기를 분리해 버리는 것도 겨우 적응했어요. 학원을 졸업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저희처럼 곧장 혼자 살아야 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학원에서 이런 쪽의 교육도 시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교문 밖을 나가자마자 하나부터 열까지 헤매기만 했을 거예요.
……정말, 학원 안과 밖은 서로 다른 세계인 듯 외국인 듯 싶을 만큼 달랐어요. 분명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도 생소한 이야기투성이여서, 앨리스라는 사실은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지내다 왔기에 이런 것도 처음 들어? 하는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하나 처음엔 당황하기 일쑤였답니다. 고향이 시골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막 상경해왔다고 하니 다들 어떻게 이해하고 잘 넘어가주셨지만요.
공부는 잘 되어가고 있답니다. 학원에서 배우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 다른 환경이어서 낯설기도 하고 따라가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어요.
아직 무얼 하면 좋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특별히 무언가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곤란하네요. 스폰서 쪽에서는 지금은 대학에 다니면서 종종 필요할 때 부르는 정도로 괜찮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러다 제 앨리스 능력이 사라지면 그 때엔, 하고 종종 생각하고 있어요.
으응, 그 때엔…… 그 때에서야 겨우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여름이 다가올수록 바다가 그리워지고 있어요. 그래도 저, 제법 잘 지내고 있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