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위를 잘 덮은 뒤 흠뻑 물을 준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애정과 관심, 주의를 기울여주어야 한다.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햇빛을 충분히 받고 있는지.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는 없는지.
그렇다면 싹이 튼 다음에는? 꽃이 피어난 뒤에는?
자신 있는 건 계속 좋아하는 것. 먼저 떠나지 않는 것. 곁에 머무는 것. 느림보인 그녀도 할 수 있는 꾸준한 일. 그렇게 애정을 쏟는 것은 세이라가 자신 있는 일이었다. 그 다음은 그러나, 알지 못했다.
언젠가의 대화가 재생된다. 내가 나쁜 사람이어도? 악당이어도? 도덕적이지 못해도? 그래도 넌 괜찮을까. 그 때에 세이라는 무어라 답했더라.
괜찮아요.
그렇게 답했겠지.
제가 미야코 씨를 좋아하는 건 미야코 씨가 착하거나 도덕적이거나 의로워서가 아닌걸요. 그러니 괜찮아요. 좋아해요.
이미 몇 달도 전의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같은 답을 할 테니 기억을 더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옳지 못한 일을 한다면 말리고 싶겠지. 비도덕적인 일에 조마조마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비하하듯 표현하는 모습에 슬플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중에 그녀를 미워하거나 화를 내거나 싫어한단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의 행동과 그녀 자신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상할까? 세이라에겐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또 생각한다. 자신의 애정은 쉽고 가볍고 간단하게 쏟아지는 것일까.
저울의 한쪽에 자신의 애정을 올려놓고 다시 다른 한쪽에 금을 올린다 치자. 제 애정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질 것인가.
이제야 문득 세이라는 나카노 미야코가 갖는 불신, 불안, 부정을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미야코와는 아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자신이 주는 애정의 무게를, 가치를, 책임을 조금 돌이켜보게 되었다.
「너는 너무 따뜻한 사람이잖아.」
그럴지도 모른다. 세이라는 추운 게 싫었다. 제 자신까지 데울 만큼 따뜻하게, 포근하게 있고 싶었다.
「나는 그렇지 못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카노 미야코는 적어도 세이라에겐 따뜻한 사람이다. 세이라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이런 나를 정말 떠나지 않아?」 그녀의 물음이 세이라에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째서 저는 미야코 씨를 떠나야 하는 걸까요? 미야코 씨는 제가 떠나길 바라나요?
「우리의 관계에서 나만 얻는 게 있고, 너는 얻는 게 없다는 것쯤도 잘 알고 있고.」 그렇다면 저는 미야코 씨에게 무얼 달라고 하면 되는 걸까요. 미야코 씨가 안심할 만한 것으로.
이름을 불러주세요. 친구가 되어주세요. 겨울이면 또 코코아를 타주세요. 함께 있을 때 즐거운 기분이 든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한데. ──이런 것으로는 미야코 씨는 안심할 수 없나요?
「있잖아, 세탄. 나에게 더 이상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아.」
제게 물어오는 그녀의 표정이 어딘지 서글퍼 보였다. 그래서 저까지 슬퍼지고 말았다.
이 순간에도 세이라는 그녀의 슬픔을 달래고 싶다고 생각했다. 머리 한편으로는 자신의 애정의 가치를, 책임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몸은 한 발 내딛고 만다.
“미야코 씨가 바라는 건 어떤 건가요? 제가 괜찮다고 하면, 좋아서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미야코 씨는요? 괜찮아요? 제가 떠나는 편이, 당신은 안정될까요.”
그렇다기엔 당신의 표정이 홀로 남겨진 듯 쓸쓸하고 속상해보여요. 어째서 그런 표정으로 괜찮단 말을 하는 걸까요.
스스로 매긴 애정의 무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가치는 커다란 것이 아니었다. 세이라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꽃이 피기만을 그저 숙원하던 것.
그래서 더욱 미야코의 반응 앞에서 헤매고 말았다.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애정을 준 다음의 일을.
“제가 어떻게 하면 미야코 씨가 그런 표정을 짓지 않게 될까요. …알려주시겠어요?”
서로 같은 무게를 주고받아야 하는 걸까. 같은 가치만 나눠야 할까. 모르는 것이 많았다. 다른 것이 많았다. 그녀 앞에서 서성이며 세이라는 그저 질문을 던졌다. ……아, 이래서는 그녀를 달래줄 수 없구나. 한 번 더 생각했다. 이래서 저는 아직도 부족하구나.
로그 제목을 캐 이름으로 할 땐 그만큼 신중히 썼단 의미인데 너무 엔딩 직전이라 좀 급했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