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는 일이 없었고 그로 인해 반대편의 땅은 어둠이 걷히는 일이 없던, 세상이 둘로 쪼개어져 있던 시대가 있었다.
처음 인간들은 해가 지지 않는 땅을 두고 축복이라 여겼고 어둠이 걷히지 않는 땅을 저주라 손가락질하였다. 밤을 두려워하고 낮을 숭배하려 했다. 그러다 곧 깨닫고 말았다. 어느 쪽이 축복이거나 저주인 것이 아니란 것을, 그저 이 모든 것이 비극이란 것을.
밤이 없는 땅에서 인간들은 쉴 수 없다. 낮이 없는 땅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어떻게든 땅에 정착해보려고 무수히 노력을 하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 땅에 지쳐 점차 하나, 둘 떠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낮과 밤이 고정된 땅 위에 숨 쉬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게 되고 멈추어버린 그 땅이 버려진 채로 다시 무수히 많은 시간이 지나간 어느 날이었다.
인간들이 세우고 인간들이 무너트린 신전의 빈터, 우뚝 서 있던 돌기둥들도 차례로 허물어져 간신히 하나가 쓸쓸히 남은 낮의 땅을 홀로 지키던 여인에게로 밤을 두른 이가 나타났다.
“안녕.”
청년의 주위로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늘이 빚고 별들이 키워낸, 밤의 땅에서 태어나 자란 밤의 주인. 어둔 땅의 왕.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
여인은 해를 지키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태양이 순환할 시기가 도래할 때에 그 첫 바퀴를 밀어줄 터를 매일같이 닦으며 낮과 밤이 손을 맞잡을 날을 기다렸다. 겨우 하나 남았던 돌기둥 위에 앉아 기다리던 날이 찾아오는 게 먼저일지 마지막 남은 기둥마저 무너지는 게 먼저일지를 위태롭게 가늠하던 나날이었다.
다행히 그녀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저의 왕.”
옅은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난다. 바람결에 푸른 가지가 그녀의 손까지 내려앉았다. 가지가 흔들리고 잎사귀에 맺혀 있던 이슬이 빛을 받고 반짝이며 그에게로 떨어진다.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수의 잎이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이가 찾아왔음에도 여인은 표정을 펼 수 없었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갈 위업이 걱정되어서일까. 혹은……,
한 발, 두 발, 밤에서 낮으로, 어둠속에서 빛으로 청년이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뒤를 따라 별들이 길을 내었다. 태양에 굴하지 않는 작은 반짝거림은 밤이 가진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하나 남은 돌기둥 앞까지 도달한 청년이 그녀에게로 손을 뻗었다. 미약한 주저, 주저보다 큰 바람, 또는 갈망. 시선을 마주하고 그가 나직하게 입술을 열었다.
“새벽을 맞이하러 왔어.”
새벽, 그리운 울림. 머뭇거리면서도 뻗어온 손에 여인은 기꺼이 응하였다. 새벽을 맞이하고 새벽을 돌려줄 그녀의 왕의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의 손에 의지하여 땅으로 발을 디디자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풀의 감촉이 간지러워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를 무사히 지상으로 당겨 내리고 청년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혔다.
“세계가 다시 움직이게 되거든 당신의 소리가 제게, 저의 소리가 당신에게 돌고 돌아 닿게 되겠지요. 위대한 일을 행하려는 저의 왕에게, 영광과 축복을.”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겨 매끄러운 이마에 축복을 담은 입맞춤을 남긴다. 이어 검은 머리칼 위로 녹색의 관을 올리고 손을 떼어내자 감겼던 그의 눈이 제게로 다시 향해왔다. 밤의 색을 두른 청년, 그러나 서늘한 색을 두르고도 그의 눈은 따스하기만 하여 곧 다가올 햇살을 미리부터 담는 새벽에 지극히 어울렸다.
그러니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하늘이 순환하고 낮과 밤이 돌고 돌아 이 땅에 다시 활력을 돌려줄 것이다. 모든 것은 존귀한 왕의 의지에 따라. 기다리던 역할을 마친 여인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