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빠. 건강하신가요? 저는 라이지방에서 새 직업을 찾았어요. 그건 바로…… 여관 종업원! 사실 이게 제 천직인 게 아닐까요? 우리 플라워샵에서도 느꼈지만 저는 판매직이 맞나 봐요, 아빠. 아이 참, 테리. 옆에서 그렇게 흰눈으로 보지 말고 동의 좀 해줘. 뭐? 시합을 앞두고 현실 도피 하지 말라고? 으으으.
하지만 진지하게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캠프에 와서 다른 분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건데요. 다들 장래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이미 정해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 온 사람도 있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예요. 트레이너 캠프에 온 것도 딱히 훌륭한 트레이너가 되려던 ㄱ…… 헛, 아니. 물론 멋진 트레이너가 되려는 것도 목적의 하나지만요.
“헤이즐 씨는 예전에는 북새 체육관 관장님이셨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관장 일은 그만 두셔서 섭섭하진 않으세요?”
한 차례 손님들이 빠져 나가고 설거지를 마친 접시들을 마른 행주로 뽀득뽀득 닦아주며 저는 헤이즐 씨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물론 지금 이렇게 여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맞아주는 일도 즐거워 보이지만 헤이즐 씨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저는 무슨 일이 하고 싶은 걸까요?
그 두 번째, 포켓몬 센터
어제의 스위티 씨는 무척 상냥했어요. 스위티 씨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은 달콤해서 저는 그대로 사르륵 녹아버리는 줄로만 알았지 뭐예요. 물론 손길만큼이나 말도 다정했고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 이건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았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 그러니까…… 이를 테면 마주 볼 각오 말이죠.
저는 제 세계가 꽤 넓은 편이라고 혼자 뿌듯하게 생각했었는데요. 그야, 신오지방의 여러 마을들을 자전거 하나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우리 마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옆 마을이나 옆옆 마을에도 친구가 있고 이 정도면 꽤 풍성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캠프에 와서 아니었단 걸 깨달았어요. 제 세계는 사실 좁았던 거예요. 아니면 제가 마주하지 않았던 걸까요. 포켓몬의 의미, 배틀의 의미, 그 가치, 그런 것들을 말이죠.
이제까지 모두가 한다, 당연한 것이다, 같은 말로 포장하면서요. 어제는 포르티스 씨에게 잘난 척 당신이 하기로 한 거잖아요. 같은 말을 해놓고 저는 “응 그래, 내가 하기로 결정한 거고 난 포켓몬들에게 내 마음을 밀어붙이며 어리광부리고 있어!” 라며 ‘알고 있는 척’만 한 거예요. 허울만 볼 게 아니라 그 안쪽까지도 제대로 봐주어야 했는데 말이죠.
접시에 이어서 몬스터볼을 마른 타올로 뽀드득뽀드득 닦다 말고 저는 힐끔 스위티 씨의 눈치를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