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백을 통해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나무열매를 쥐어주고 영양분 듬뿍인 요리를 해주고 깨끗하게 씻겨주고 사랑한다 안아주고 꼬옥 끌어안고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해도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모두가 하니까 따라 도전하는 체육관, 배틀은 특별히 싫지도 좋지도 않지만 어느 쪽이냐 하면 즐거운 것도 같아. 나는 트레이너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너희가 다치는 걸 이제껏 보고도 못 본 척 하던 게 아닐까.
포켓몬 센터에만 가면 뚝딱 낫는다고 말이에요. 그런다고 너희가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닌데. 그 때 문득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배틀은 즐거워요. 내 포켓몬 모두와 의논하고 전략을 짜고 경기장에 서서 상대방을 마주 보죠. 우리의 눈과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서로의 전력을 다하는 거예요. 포켓몬과 교감하고 상대와도 교감하고, 난관을 뛰어넘어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한 기분도 들고. ……라고 장점을 잔뜩 늘어놓다가도 자꾸만 문득 그래도, 싶어지는 것 있죠.
“큐웃.”
“테리……. ……있잖아, 다시는…… 다시는 너를.”
───과 싸우게 하지 않을게.
프로키온 씨와 배틀을 할 때 말이죠. 저는 프로키온 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어요. 꼭 이기고 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나 배틀을 하는 즐거움이나 우리가 마주 보고 서는 의미 같은 거 있잖아요. 프로키온 씨는 테리를 아껴주니까 테리가 힘내는 모습을 봐주길 바랐어요. 테리는 정말 괜찮다고요.
그런데 정작 괜찮지 않은 건 저였나 봐요. 테리가 애쓰는 모습을 봐놓고 느낀 거라고는 이런, ‘무섭다’ 같은 감정이라니. 테리는 바보 같은 트레이너를 툭 치고 혼자 앞서 가버렸어요. 자기는 괜찮은데 왜 제가 더 유난인지, 하고 투덜대는 것 같았어요. 정말이야. 난 바보 트레이너인가 봐.
“앗, 그렇다고 정말 혼자 가지 마. 테리!”
일기에 너무 울적한 이야기만 쓴 것 같으니까 기합을 넣는 이야기도 써볼게요. 저는 생각보다 제 포켓몬이 다쳐서 쓰러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라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그렇다고 역시 배틀은 싫어! 라거나 어떻게 포켓몬을 싸우게 하지? 라는 생각까지 간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제 포켓몬들은 저보다도 강하거든요.
테비는 전투보다 댄스를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전투까지도 댄스로 승화할 수 있는 멋진 친구예요. 테비의 갈지자걸음의 스텝을 보고 있으면 우리 모두 들썩들썩하게 된다니까요. 이것도 대단한 기술 아닌가요?
테마리는 오기로 똘똘 뭉친 친구인데요. 그래서 제가 말리려고 해도 혼자 앞서 나가고 무시무시한 주먹을 쉭쉭 휘두를 때가 있어요. 제가 빨리 테마리를 강하게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곧 너의 시대가 올 거야, 테마리!
테루테루는 맨날 도망만 가던 버릇을 최근 조금 고쳤어요. 겁나는 얼굴을 쓰는 건 예전에는 그러고 3초 뒤에 도망갈 거란 예고 같은 거였는데 요즘은 그러고 3초 뒤에 상대를 물어버리더라고요. 어라, 이거 괜찮은 건가? 테루테루의 입단속을 해야 할지도.
테토는 우리 중에 제일 어린 친구인데 제일 활기가 넘쳐요. 그 빵빵하고 두꺼운 지방으로 다른 친구들을 다 뻥뻥 쳐버리는 게 문제지만요. 테리랑은 여전히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지만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 으앙, 테리. 뭘 너는 애가 아니라고 하려는 거야!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휴우우……. 저는 금세 또 싸우려는 테토와 테리를 양쪽으로 떼어놓았어요. 너희 자꾸 그러면 각방, 아니 이럴 땐 친해지라고 한 방을 쓰게 해줘야 하나? 제 생각을 알아차린 듯 테토는 어리광쟁이처럼 제게 매달려 왔어요. 우리 테토……. 최근 애교부리기를 배우고 나서부터 한층 더 위협적이 되었단 말이지. 아앗, 테토의 애교에 테루테루까지 제게 달라붙어 와요. 아아, 행복하게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