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마을을 나와서 자귀마을까지 가는 길, 몰랑 씨가 귀엽게 꾸며진 설문지를 한 장 한 장 나눠주셨어요. 어쩌다 보니 저는 미리 아무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와 드디어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어요. 초행 트레이너를 위해서 원하는 포켓몬을 줄 수도 있다고 했거든요.
다른 지방에서도 가끔 박사님들이 어린 트레이너들에게 도감 수집을 부탁하면서 여행의 보조가 될 포켓몬을 주기도 한다는데 그런 일환인 걸까 생각하면서 저는 포켓몬 종을 적을 생각이 만만이었는데요. 막상 설문지를 받아 보니 타입을 적는 식이었어요. 그야 어떤 포켓몬 종을 적어버리는 건 조금 지양해야 했을지도 몰라요. 선호 받고 선호 받지 못하고가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서, 설문지를 받은 저는 첫 번째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적었어요. 모든 타입을 골고루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풀타입인 거예아아아앗! 가장 좋아하는 거랑 선호하는 거랑 조금 다른 걸까? 배틀에 내보내기 위해 선호하는 거라면 조금 다른데. 이미 늦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필요하다고 느끼는 타입이었어요. 처음엔 많은 타입이 지나갔어요. 북쪽으로 갈수록 추워질 텐데 불 타입이 필요할까? 혹은 추운 지역에서도 강하게 버틸 수 있는 얼음 타입, 지금 나에게 없는 벌레나 에스퍼, 드래곤 타입도 좋을지 몰라요.
고민이 길었어요. 어디에 어떻게 필요로 할 것이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정말 모든 타입이 다 나올 것 같았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무의식중에 절대 피하는 타입이 하나 있었어요. ……고스트 타입이에요.
예전에 샬룬을 보고 겁을 먹어서 울 뻔한 적이 있어요. 그건 막 캠프를 시작할 즈음의 일이었는데, 콘스탄틴 씨가 겁에 질린 저를 달래주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무척 상냥한 말을 해주었어요. 두려움의 시발점이 어딘지 원인을 찾아보자는 말도요.
생각해보니 말이죠. 처음부터 이렇게 고스트 타입만 보면 얼어붙어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아니에요. 그럴 ‘일’이 있었어요. 아마도, 그러니까 분명 그 때…….
정확히 기억해내기엔 아직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두루뭉술하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해두고 묻어둔 옛날 일이에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피해 다닐 수만은 없는 거겠죠. 샬룬도 메시도 상냥하고 착한 친구들인 걸요.
그래서 저는 적었어요. 저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타입에, 고스트라고요.
──그 아래로 키워보고 싶은 타입에는 다시 욕망에 충실하게 드래곤이랑 전기 타입도 적었는데요. 꽃향기마을에서는 도통 볼 일이 없는 타입이었거든요. 여기 라이지방에 와서도 아직 만나본 적 없고. 이 설문지를 받아본 박사님이랑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했을지는 모르겠어요.
“호구마야, 호구마야. 넌 어떤 타입이야? 어떤 포켓몬이 지금 알속에서 자고 있을까?”
정말 고스트 타입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안 되겠죠. 이 아이는 제 포켓몬이니까, 담뿍 사랑해주고 정면으로 받아들일 각오를요. 고스트가 아니라면, 앗 안 돼요. 지금 또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