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먼저 연락이 왔어요. 잠시 보지 않겠냐고요. 제 포켓리스트는 라이지방에 온 뒤로 엄마에게 끝내 한 번도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는데 엄마가 먼저 연락해올 줄이야. 정말 놀랐지 뭐예요.
재밌는 건 라이지방에 오기 전까지의 이력을 보면 전부 제가 먼저 했던 연락이라는 거예요. 새해가 되면, 가족의 생일이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엄마는 답장을 해줄 때도 있었고 해주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대부분이 참 의무적이다 싶은 답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알겠습니다.’ 라니.
그런데 그런 엄마의 답장을 두고 서운하단 티 한 번 못 냈어요. 그랬다가는 엄마가 귀찮아할까 봐요. 더는 이런 답장도 안 해줄까봐.
아마 엄마를 믿을 수 없던 거겠죠. 엄마가 나를 사랑할 거라든지, 반드시 답장을 해줄 거라든지. 그래서 더 욕심내지 못한 거예요. 저는 굉장히 허탈한 기분을 안고 겨루마을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어요. 그러고 보니 엄마와 바깥에서 만나는 일 자체가 처음인 것 같아요.
오늘은요. 테리는 데려오지 않았어요. 테리는 걱정이 많아서요. 분명 옆에 있으면 신경 쓰이게 할 테니까요. 다른 애들도 다 두고 왔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일단 카페에 데리고 들어가기엔 커다래서요.
유일하게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간 건 그새 의젓하게 자란 테이였어요. 테이는 테리에게 무슨 말을 전해들은 건지 ‘오늘은 내가 지켜줄게, 디모넵.’ 같은 눈을 하고 있더라고요.
입구의 종소리와 함께 안을 두리번거리자 조그마한 가게의 창가편에 엄마가 앉아 있었어요. 엄마는 커피를 마시면서 저에게도 메뉴판을 내밀어주었어요.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이 숨 막히는 시간이었어요. 우습지 않아요? 캠프의 누구랑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도 지금처럼 긴장되지 않을 거예요. 헤이거 씨랑 앉아있더라도 말이에요.
“빙커 씨가 걱정을 하더군요. 디모넵 씨가 혼자 라이지방을 여행 중이라고. 만나면 건강한지 봐달라고요. 아픈 곳은 없습니까?”
「아이들이 사랑받는 건 권리이자 의무인걸요.」
사무적인 질문 같았어요. 엄마의 목소리 위로 문득 닉스 씨 목소리가 겹쳤는데요. 닉스 씨 목소리가 훨씬 따뜻하고 다정하다고 느꼈어요. 그게 또 아주 이상한 기분이어서, 속이 울렁거려서 저는 주문한 게 나오기도 전에 컵의 물을 다 마셔버리고 말았어요.
엄마가 재미없어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 저는 캠프 이야기를 떠들었어요. 테비부터 테이까지 새 친구를 사귄 것, 테리가 체리꼬로 진화한 것, 체육관에 도전한 것, 감기에 걸렸던 것, 캠프 사람들이 상냥하고 다정한 것, 캠프가 끝나고 저도 유적을 찾아 여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
엄마는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재미있어하는지 지루해하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엄마의 표정은 늘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신기하죠. 아빠랑은 그냥 눈만 마주쳐도 배가 고프단 걸까. 심부름을 해달란 걸까. 그냥 보고 싶었던 걸까. 웃으면 될까 알겠는데 말이에요. 저는 늘 엄마를 대할 때면 엄마의 눈치를 본 것 같아요.
엄마에게 하늘의 뿔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려고 했는데요. 엄마는 고개를 저으면서 듣지 않겠다고 했어요. 기뻐하거나 좋아해줄 줄 알았는데.
“자칫 타인의 연구를 훔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또, 디모넵 씨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도 그 분들은 많은 것을 알아내고 그 바탕으로 도출해낸 가설일 텐데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채 들어봤자 제가 가진 정보와 혼동만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어차피 곧 누림마을로 이동할 것이니 가서 직접 알아보겠다고 했어요.
언제 끊길지 모르게 조마조마 이어지던 대화는 그것으로 화제가 동난 듯 뚝,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이어졌죠.
제 앞에 놓인 겨루역의 기차를 본딴 케이크는 한 조각도 줄지 않았어요. 엄마는 시계를 한 번 힐끔 보더니 더 할 말이 있느냔 듯 저를 보았어요.
초조한 기분이었어요. 지금 이 자리를 놓치면 안 되는데. 여기서 물어봐야 하는데. 제가 여기 온 이유는, 트레이너 캠프에 참가한 이유는, 엄마를 만나려고 한 이유는 전부, 전부───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고 무서운 걸까요. 이미 답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요? 알고 있는 답을 엄마에게 물어봐봤자, 나만 또 상처 입는 게 아닐까요?
「혹시 만약 정말로 상처받을 일이 된다면…… 그땐,
디모넵 쪽에서 떨쳐버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겠지만, 옆에서 언제나 손을 잡고 있을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떨쳐버릴 수 있을까요, 닉스 씨. 저는 그러지 못할 것만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그곳을 파헤치는 것이니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건 덜 쓸쓸하지 않을까.」
벌써 한참 전의 일인 것만 같은 기억도 떠올랐어요. 엄마는 과거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묻혀 있는 과거, 밝혀지지 않은 역사, 마르지 않는 샘인 동시에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시간. 그 시간 속에 붙들려 살고 있어요.
엄마에게 현재 흐르고 있는 시간이란 의미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럼, 디모넵 씨. 우리 같이 둘 다 붙잡을 방법을 찾아볼까?」
그건 분명 제가 바라던 말이었어요. 하지만 엄마에게선 들을 수 없는 말인 것 같아요.
어쩌죠, 와이. 나는 이렇게 당신을 닮은 어른이 되고 마는 걸까요. 지금 이 시간을 괜찮다고 웃으며 내려놓는. 기대도 바람도 버리고 하염없이 앞을 향해서만 걷는 어른으로.
힘겹게 고개를 들자 엄마가 저를 마주 봐주었어요. 엄마의 눈을 겨우 똑바로 보았어요. 저를 향하는 시선에서 애정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걸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지 않아요.
「눈치는 경험의 축적이겠지. 익숙한 분야에서는 눈치가 빠를 거고, 그렇지 않다면 없는 편이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 모르기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눈을 알거든요.
그렇다고 괜찮은 건 아니에요. 아직 저 눈동자에 담았던 기대를 전부 거두지 못했어요.
그래도 겨우, 물어볼 수 있었어요. 떨리는 목소리를 삼키고 간신히 말이죠.
“아빠랑, 정말 이혼할 거예요?”
저는 이 질문을 하기 위해 라이지방까지 왔어요.
마지막 문장을 정말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좀 예민할 수 있는(현실의 불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사여서 주의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