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치부를 드러내는 일은 참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다면 구태여 그것을 恥部라 일컫지도 않겠지. 그러나 인간이란 굉장히 편리한 족속이어서 치부를 드러내고 상처를 긁어내길 반복하다 보면 차츰 무뎌져 갔다. 더는 부끄러움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이라 해도 될까. 아니면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말하던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일까.
“왜 무서운지, 물어도 되냐.”
그 질문 앞에서 아이는 ‘아.’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 있어서 더는 고통도 공포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남은 것은 쓸쓸함과 이제는 부정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현실뿐이다.
그래서 아이는 표현을 달리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지겨우니까 한 겹 더 벗겨내 볼까요? 공포로 딱지 앉아버린 상처를 뜯어내고 그 안에 고인 새까만 피를 내보이는 것이다.
“화강돌은 엄마가 날 버렸다는 증거 같은 거니까.”
사고가 있기 전까지 아이는 어머니의 포켓몬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가 있은 후부터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모호한 사고의 기억 속에서 사실은 정말로 화강돌이 아이를 비웃었는지, 조롱하고 저주하며 악의가 담긴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전부 아이의 착각이나 과대망상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공포를 부풀려 아이가 정말 덮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사고의 마지막까지 나타나지 않은 어머니다. 어머니에게 나는 고작 이 정도였다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진실이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요?”
맨날 말로만 뭐든지 하겠다고 해요, 당신은. 정말 나를 걱정하고는 있는 건지, 위해주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앞에서 치우지 않으면, 그게 해결이 아니라면? 나보고 극복하란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인간 승리의 신화처럼요. 당신이 그렇게 날 도와주고 구해주겠다고요?
“나는 정말 포르티스 씨가, 나한테 바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제게 닿아오는 침침한 시선을 저 또한 무릎 위에 턱을 괸 채 마주 응시했다. 당신은 자꾸만 나를 나쁜 아이로 만들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당신을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전부 털어내고 일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당신을 상처 줄 수는 없으니까 기껏 선을 긋고 모르는 척 하려 하는데. 당신은 그로는 부족하다는 듯 멋대로 내 마음까지 짊어지려 한다.
당신을 할퀴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포르티스 씨는 정말 바보예요. 바보 멍청이.”
너무 그렇게 신경 써주지 않아도 돼요. 나한테 그만 신경 써요. 정말 모르겠어요. 이 정도 했으면 내가 지겨울 만도 한데, 없던 정도 떨어질 것 같은데.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두 무릎을 조심스럽게 팔로 감싸고 한쪽 볼이 움푹 눌려 비져 나오도록 그 위에 기대었다. 제법 길어져 눈을 찌를 듯해진 머리카락을 깜빡, 깜빡, 눈꺼풀로 밀어내고 히죽, 당신에게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