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텐트 바깥의 하늘을 확인한 저는 응, 다행이야! 안심하고 쭈욱 기지개를 켰어요. 오늘은 숲속을 탐색하러 가기 전에 먼저 테토와 개울가로 놀러가기로 했거든요. 어제 약속한 것처럼요.
주섬주섬 잠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준비를 마치자 테리가 밥은 먹고 가라고 저를 쭉쭉 당겼어요. 언제나 변함없이 맛있는 식사가 차려져 있는 캠프의 중앙이에요.
“아, 도시락도 싸갈까?”
제 말에 테토는 리일! 하고 꼬리를 기운차게 흔들었어요. 테토는 잔뜩 먹으니까 잔뜩 챙겨야겠다. 마침 어제 자뭉열매를 7개나 주워 왔으니까 저는 자뭉열매를 얇게 썰어서 위에 소금과 후추를 톡톡 뿌리고 크림치즈를 끼운 샌드위치를 한가득 만들었어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구요. 후후.
우리집 애들은 잘 먹는 아이부터 잘 안 먹는 아이까지 순서대로 줄을 세울 수가 있어요. 테마리랑 테토는 누가 뭐라 해도 대식가. 둘이서 10인분은 족히 먹을 거예요. 테루테루랑 테이는 중간 정도일까요. 둘 다 적당히 골고루 잘 먹는 편이에요. 테갈라와 테이, 테스티아는 소식파예요. 테갈라는 저렇게 커다란 몸으로 쪼끔만 먹어도 되는 걸까 걱정이었는데, 위가 무거우면 날기 불편하다고 필요한 만큼만 야금야금 먹더라고요. 그리고 테오로 말하자면…… 엄청난 편식대장! 늘 여기저기서 포핀이며 스낵이며 자기 좋아하는 맛만 골라서 먹는 탓인지 편식도 심하고 변덕도 심해요. 뭐어, 자기가 잘 먹으니 됐지만요.
테논은 아직 잘 모르겠고 텟샤도 알 수 없지만…… 텟샤는 의외로 대식가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마렝이 생각나게 말이죠.
오늘 개울가로 놀러가는 건 테토와 테스티아 둘이지만요. 아, 그래요. 테오도 함께. 풀 타입 세 친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광합성을 할 거라고 해요. 다른 애들도 제법 독립적인 편이라 오늘은 어리광쟁이 테토와 물을 좋아하는 테스티아와 함께 하기로 했어요.
테오는 보디가드예요. 벌레 포켓몬을 상대하기에 아주 제격이거든요. 저번에 린이 피스에게 귀여운 자뭉열매 가방을 사준 걸 보고 저도 테오에게 사줄까 고민을 했는데, 테오의 날개에 가방은 불편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자연스럽게 모자에 올라온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는 “샛별시티에 가보면 네게도 어울릴 걸 고민해볼게.” 하고 말해주었어요.
그럼, 렛츠 고~!
그 두 번째, 테오의 선물
개울과 늪지대로 오자 한쪽에서는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서 바닥이 질척질척해지도록 깊숙한 늪이 있었어요. 테토는 늪이 처음인가 봐요. 신기한지 다가가서 발을 살짝 넣었다 뺏다 하다가 진흙을 잔뜩 묻혀 왔어요.
“잠깐, 테토. 그대로 오지 마. 오지 마. 오면 안 돼~~~~!”
저는 헐레벌떡 진흙투성이 테토에게서 도망가다가 넘어질 뻔했지 뭐예요. 이 녀석, 내가 도망가니까 재밌어서 따라오기는. 기우뚱하는 제 손을 붙잡아준 테토는 저에게도 진흙을 덕지덕지 묻히고 푸헤헤 웃으며 내뺐어요. 어휴, 이따 같이 씻어야겠다.
테스티아는 개울도 늪도 만족스러운 모양이에요. 바다에서 살던 아이라서 어떠려나 했는데 늪의 끈적하고 깊고 꿉꿉한 느낌도 맑게 흐르는 개울도 기분 좋은 것 같더라고요. 테스티아는 오랫동안 화석에 잠들어 있던 탓인지 살짝 멍하고 느려서 아직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촉수를 휘적휘적 움직이며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뻐졌어요.
이럴 때 보면 포켓몬은 역시 야생의 생활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라이지방에서 지나온 다른 마을들이나, 꽃향기마을 양쪽으로 있던 축복시티와 영원시티의 풍경을 생각하면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서 포켓몬들은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혼자 돌 위에 앉아 있자 테오가 머리 위로 금세 툭 날아왔어요. 그리고 제 앞에 뭔가를 흔들흔들 해보였어요. 뭐지? 하고 보자 반짝반짝하고 예쁜 조약돌이에요. 이제 보니 테오의 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더라고요.
“나 주는 거야, 테오?”
“뺘~”
…… ……우웃. 갑자기 울컥하려는 기분을 꾹 참고 저는 조약돌도 테오도 꼭 끌어안았어요. 옷이 젖어들었지만 어차피 이따 씻고 세탁도 해야 하니까요. 테오와 텟샤는 제가 데려와 놓고도 여전히 고민이 많은 채였어요. 제가 이 아이들을 만족시켜주고 잘 대해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럴 때마다 테오는 반대로 제게 먼저 손을 뻗어주어요. 참 신기하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인데도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는 게. 조약돌은 제 또 하나의 보물이 되었어요.
그 세 번째, 테스티아의 껍데기
몇 번인가 고백한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포켓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요. 어디까지나 캠프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말이죠. 조금 안다고 해도 신오지방에 한정된 경우가 많고 메이저한 친구들만 아는 정도? 그것도 생긴 거나 타입 정도나 알지 기술을 꼼꼼히 알진 않아요.
말해놓고 보니까 이런 알량함으로 트레이너 지망을 해도 됐던 걸까? 문득 배지 다섯 개의 무게가 묵직해지네요.
이 뒤로 갈수록 관장님과 체육관이 더 엄격해질 거라고 해서 허둥지둥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게 또 바닥부터 시작하려니 너무 막막한 거 있죠. 그래도 일단 제 엔트리의 친구들부터 잘 알아두자고 생각해서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됐어요. 테스티아가 나중에 진화할 암스타는 굉장히 빠른 속도를 가진 친구라고 해요.
굉장히 빠른 속도. ……응? 정말로?
아무리 봐도 테스티아는 느린데 말이죠. 암나이트인 지금도 등의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굼뜨게 움직이는데 암스타가 되면 집이 더 커진대요. 그런데 빠른 속도? 너무너무 신기해서 더 알아봤어요. 어떻게 빨라지는 걸까. 그건 특성 덕분이라더라고요. 《쓱쓱》, 비가 오면 속도가 2배 빨라진대요. 어딘가의 빨강은 색만으로 3배 빨라지기도 하는데 이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죠.
아니면 껍질깨기라는 기술을 써서 또 빨라질 수 있다고 들었어요. 지난번에 리브가 그 기술을 쓰는 걸 보기도 했는데.
“……깬 다음에 다시 붙는 걸까?”
테스티아는 ‘우웅?’ 하고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찰방찰방 물놀이를 이어갔어요. 저는 테스티아의 껍데기를 똑똑 두드리며 조금 심각한 얼굴이 되고 말았어요. 곧 있으면 테스티아도 그 기술을 배울 수 있거든요.
이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까요. 순진무구하게 동그란 눈동자를 보며 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테스티아의 껍데기만 잔뜩 쓰다듬어주었어요.
그 네 번째, 테마리가 나타났다
햇빛은 한들한들 따사롭게 내리 떨어지고 한쪽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나른한 음악처럼 졸졸 들려왔어요. 테토는 개울가를 멋대로 찰박찰박 휘젓다가 깨비물거미를 만나서 와앙 한 바탕 투닥질을 하고 오고 테스티아의 등껍질에는 비구술들이 달라붙어 간질간질 같이 놀고 가끔 제가 있는 옆으로 펜드라가 느릿느릿 지나가려고 하면 테오가 전기를 찌릿찌릿 쏘며 위협을 하는 아주 평화롭고 따스한 날이었죠.
그 때였어요. 테마리가 씩씩거리며 나타난 건.
“테마리? 왜 그래?”
글러브의 리본이 아니었더라면 저 야생 포켓몬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 겁먹을 뻔했다니까요. 아, 이 생각은 테마리에게 비밀이에요.
저희 앞에서는 이만큼 머리에 핏대 선 모습을 안 보여주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완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토망열매 뺨치는 색을 하고 분함의 발구르기를─가르친 적도 없는데─하면서 테마리가 손짓으로 설명하는 건 무슨 말인가 하니 어둑한 숲에서 혼자 훈련을 하고 있다가 선빵을 맞았다는 거였어요.
“뭐어~? 네가 선빵? 그래서 상대는? 무사해? 때려눕혔어?”
그랬더니 펄쩍펄쩍 점프를 하며 더 화를 내는 게, 글쎄 자기가 때려눕히고 이겼으면 이러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 뭔 일이야. 이야기를 듣자 하니 미라몽을 만났다지 뭐예요. 아이고. 그래요. 고스트 타입 친구에게 격투 타입도 노말 타입도 공격은 무효. 심지어 벌레 타입은 반감이죠. 테마리가 쓸 줄 아는 공격이라곤 그것뿐인데 말이에요.
씩씩거리고 화를 내는 테마리를 보고 있자니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저도 따라 일어났어요.
“좋아, 네 원수를 갚아줄게!”
그러자 테마리는 다시 또 그게 아니라고 제게 화를 냈어요. 원수는 이 몸이! 복수는 나의 손으로!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 녀석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술을 지금 당장 가르치라고 저를 짤짤 흔들었어요. 으아악, 살려줘. 성원숭이 트레이너 잡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르칠 방법이 없는데. 저는 헥헥거리고 간신히 테마리에게 풀려나서 알았다고, 네게 다른 타입의 공격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