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시간이에요. 테논과의 일을 마무리 지을. 고요해진 밤 저는 드디어 마음을 굳혔어요.
귀여움이 한계를 넘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하던 리브는 그새 테오의 애교가 조금 익숙해졌는지 손을 뻗어주었어요. 테오는 그 손가락을 자기 조막만한 두 손을 꼬옥 붙잡고 뺨을 부볐고요. 쟨 저런 건 정말 어디서 배운 거람.
저는 그런 둘을 앞에 두고 한참, 또 한참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같이 가주세요, 리브.”
제 말에 리브는 그래, 하고 따라 일어나주었는데요. 의지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고 해주었지만 정말 매번 리브에게 기대고 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리브가 같이 가주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어요. 테논이 담긴 몬스터볼을 들고 다른 캠프 사람들을 깨우지 않게 조용히 숲속으로 이동하면서 저는 작게 리브에게 감사 인사를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지는 정했어?”
“일단은 배틀로 테논의 기운이 쏙 빠질 때까지 만들어보려고요.”
리브, 전기 튀지 않게 조심해요. 10만 볼트 엄청 아파요. 걱정을 담은 제 말에 리브는 자긴 튼튼하니까 괜찮다고 당당하게 굴었어요. 정말이지, 평범한 인간이라고 강조하던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요. 아무리 튼튼해도 사람은 10만 볼트를 맞으면 죽는데 말이에요.
저희는 숲속 어느 한편의 공터에 다다랐어요. 그곳은 그루터기나 쓰러진 나무가 걸터앉기 좋게 생긴 둥근 터였는데 마침 땅도 풀 대신 흙바닥이어서 안심이었어요.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땅을 다진 저는 심호흡을 하고 몬스터볼을 꺼냈어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테논, 나와.”
그리고 볼을 오픈하자마자 약 150cm의 거대한 투구뿌논이 튀어나왔어요. 뷔이잉, 위협적인 날개짓을 하면서요. 테논은 튀어나오자마자 저를 노리고 또 10만 볼트의 전기를 쏘았어요. 하지만 이번 공격은 저를 향하는 대신 제 모자 위의 테오가 전부 가져갔어요.
……다시 봐도 신기하고 놀라운 특성이네요. 이 작은 몸의 어디에 10만 볼트의 전력을 흡수하는 건지. 슬쩍 리브 쪽을 곁눈질 하자 옆에 어느 샌가 아이캔이 듬직하게 서있었어요. 아이캔과 함께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리고 테논이, 다른 곳에는 전혀 관심 없이 맹렬하게 저만 쫓아오고 있어서요. 리브를 위험하게 하진 않을 것 같았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리브는 여차하면 저한테 달려올 것 같은 자세라 불안했지만요. 아이캔, 네 트레이너를 잘 붙잡아줘!
제가 한 눈을 파는 사이 테오가 폴짝 뛰어 올라 제 머리를 다시 꾹 눌렀어요. 테오의 발에 눌려 굽히자 머리 위로 부웅, 테논의 집게턱이 스쳐 지났어요. 헉, 놀라라. 테논은 끈질기게 저만 노렸는데 전기를 흡수해 재빨라진 테오가 빛의 장막으로 막아서자 그 투명한 벽에 몇 번이고 자기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무시무시했어요.
저는 그 동안에도 테논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어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마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테오. 테논의 기운을 좀 더 빼줘.”
제 지시에 테오는 힘차게 손을 올리더니 테논을 도발해 자꾸만 자기에게 전기를 쏘도록 유도했어요. 어두운 숲속에서 번쩍, 번쩍하고 몇 번이나 번개가 쳤는지 몰라요. 테논은 처음엔 제게 달려들려고 했는데 테오가 자꾸만 방해하자 이 쪼끄만 에몽가부터 치우고 가려고 한 건지 테오에게로 표적을 바꾸었어요. 하지만 날쌔고 빠른 테오에겐 전혀 먹히지 않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테논 쪽의 힘이 빠져가는 게 명백했어요.
그제야 테논은 저를 봤어요. 어딘지 억울하고 서러운 빛으로요.
리브는 생태 연구소에서 일했다고 했죠. 난폭한 야생 포켓몬도 자주 봤고요. 테논이 왜 저렇게 구는지 알까요? 물어보러 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왜냐면, 저 아이는 제 포켓몬이니까요. 제 포켓몬을 두고 등을 돌릴 순 없잖아요.
“아직도 부족해, 테논?”
지쳐서 바닥에 떨어진 테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요. 힘이 풀린 기색에 손을 뻗고 싶었지만 제 손등엔 아직도 테논이 지져놓은 흔적이 얼룩덜룩해서 선뜻 내밀 수 없었어요. 정말 속상한 일이죠.
턱을 달달 떨며 테논은 여전히 절 찍어 누르고 싶은 빛을 했어요. 기이한 건요. 그런데도 저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 거예요. 저를 좋아해서, 저를 누르고 제 위에 서고 싶은 걸까요?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저는 테오를 앞에 세우고 테논에게 말했어요.
“난 앞으로도 안 질 거야. 알아둬. 그리고 넌 나한테 졌으니까 내 말 들어.”
겨우 이 한 번 갖고는 안 통할 것 같지만 어쩌겠어요. 앞으로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테논이 만족할 때까지 싸우고 이기고 알려줄 수밖에요. 그 말을 끝으로 테논을 볼에 돌려 넣자 테오는 ‘휴~ 내가 아주 고생했지이. 나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디모는.’ 하고 의기양양하게 제 모자 위에서 승리의 포즈를 취했어요.
오늘의 공로자는 테오가 맞으니까 저는 테오를 왕처럼 높이 들고 리브에게 다가갔는데요. 리브와 아이캔 주변으로도 전격이 튀어 지져지고 팬 땅의 흔적이 고스란해서 놀랐지 뭐예요. 하지만 아이캔이 알아서 다 막았다는 모양이에요.
리브는 기껏 따라와 놓고 한 게 없는 것 같다고 머쓱해 보였어요. 하지만 전 옆에 있어준 것만으로 아주 든든해서 리브가 같이 와준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둘 다 다친 데 없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다시 감사 인사를 하고 우리는 무사히 캠프로 돌아왔어요.
테논이랑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지만, 저는 테논의 트레이너니까요. 포기하지 않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