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마을에 오자마자 노바 단체 사람들과 마주쳤어요. 그들은 무언가 신기하고 커다란 장비를 들고 숲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요. 작은 마을을 둘러싼 아늑한 숲에 그 커다란 장비들은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 사람들이 조심성 없이 지나갈 때마다 가지가 꺾이고 풀이 고개를 숙이는 게 훤히 보였어요.
정말 속상한 일이었어요.
제 고향인 꽃향기마을은요. 어딜 가나 너른 꽃밭이 사시사철 피어 있는 게 자랑인 마을이에요.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아주 먼 과거, 꽃향기마을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였다는 걸.
그 아무것도 없던 땅에 사람들과 포켓몬이 모여서 힘을 합쳐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려 지금의 꽃향기마을을 만들었다고 해요. 덕분에 지금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자연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고 꽃밭을 지키는 일에 열심히지요.
꽃향기마을이 만들어진 데에는 쉐이미의 축복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있어서요. 저는 사실 지금도 쉐이미가 우리 마을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하곤 해요.
저는 그런 곳에서 자랐어요. 포켓몬과 사람이 당연히 어우러 지내고 서로에게 따스한. 그런데 노바의 사람들은 어째서…….
「리스크를 두려워한다면 큰 사업을 할 수 없지요!」
릴리콜 씨의 말이 메아리쳤어요. 그 리스크를 지는 게 당신들만이라면 제가 무어라 상관을 하겠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우, 우웃. 무,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생존 경쟁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건 약하고 작은, 힘없는 포켓몬들이에요. 저는 텟샤를 앞세워서 우리가 지나온 숲길을 되돌아 힘없이 숨은 포켓몬들을 찾았어요. 이런 아이들이 어디 가서 숨는지는 제법 잘 알거든요. 특히 어둑한 숲처럼 나무들이 빽빽하고 오래된 곳이라면요. 고목의 아래, 땅 위로 드러난 뿌리의 틈, 무성한 잎사귀 틈, 그 사이사이의 호바귀들을 찾아내 저는 주먹을 꼭 쥐고 손을 뻗었어요. 괜찮아, 야생 포켓몬일 뿐이야. 똑같은 포켓몬이야.
돌아가면 시나몬에게 가서 인사를 해볼까요. 나도 힘내고 왔다고 판도라에게 자랑해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메시에게 내일은 같이 가보겠냐고 권해도 좋고요.
제 공포를 앞세워 저보다 작은 아이들의 공포를 못 본 척 하지 않을 거라고, 텟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저는 힘을 내보았어요.
그 두 번째, 묘원 청소와 담력시험
오전 중의 구조 활동을 마친 저는 숙소로 돌아와서 냉장고의 프렌치 토스트와 해시브라운을 찾아 렌지에 데웠어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케이 씨!
해시브라운 위에는 녹인 치즈 소스를 끼얹고 뭔가 더 없나 뒤적뒤적하다가 들려온 이야기는 묘지 청소 의뢰였어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죠. 보자마자 전력으로 눈을 돌려서 아직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묘지라…….
포켓몬의 수명은 참 제각각이죠. 인간은 대충 80세에서 100세쯤 산다고 하는데 포켓몬은 모두 합쳐 같지 않아요. 어떤 포켓몬은 수백년을 살고 어떤 포켓몬은 십년을 살다 가기도 하죠. 사람들과 함께 사는 포켓몬은 수명이 평균보다 긴 편이라고 하지만 야생의 포켓몬은 그보다 훨씬 짧고요. 고향 마을에서 지낼 때 어제까지 가게로 놀러오던 포켓몬이 오늘은 나타나지 않는 일도 몇 번인가 있었어요.
테리의 수명은 얼마려나요. 캠프에 와서, 생각보다 어린 다른 사람들의 파트너 포켓몬을 보며 자주 그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길진 않을 거예요. 이 아이는 꽃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네가 조금 더 오래, 욕심낸다면 나와 함께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거 있죠.
의뢰는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묘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엘리자베스 씨랑 이미 청소를 마치고 온 니켈 씨가 동행해주었거든요. 저는 사실 묘지에서 튀어나오는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이 무서운 거지 묘지가 무서운 건 아니라서요. 루를 품에 안은 채 한참 걷다 보니 걱정한 포켓몬들은 나오지 않아 안심할 수 있었어요.
각 지방마다 죽은 포켓몬을 기리는 탑이 있다고 해요. 신오지방은 연고시티를 지나면 로스트타워라는 곳이 있는데요. 그곳에는 조금 정신 나간 트레이너도 있고 안개가 짙어 위험하다고 아빠가 보내준 적이 없지만 대신 연고시티까지는 드물게 꽃배달을 다녔어요. 연고시티는 워낙 커다랗고 신오에서 가장 좋은 동네라서 꽃향기마을까지 꽃을 주문할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 마을 꽃을 좋아해서 찾아주는 분들이 있었거든요.
대체로 어린 아이나 어린 포켓몬을 데리고 있는 가족이거나, 위로를 위한 꽃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묘비에는 무슨 꽃을 주로 두나요? 꽃이 시들어서 바꿔주고 싶은데…….”
묘원은 묘원 지기 할아버지가 늘 성실히 관리해주시는 덕인지, 캠프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오간 덕인지 손댈 곳이 별로 없었어요. 그 대신 엘리자베스 씨가 손에 든 건 버석하게 마른 꽃다발이었어요. 아네모네였을까요.
“……장례에 쓰는 꽃이라면 정해진 편이지만 묘비에 두는 꽃은 특별히 구애받지 않아요. 생전 상대가 좋아했던 꽃, 좋아하던 색을 맞추기도 하고. 아니면 이 계절에 맞는 꽃도 좋겠네요.”
몸은 부서져 흙이 되고 영혼은 강을 따라 흘러가 남은 건 그 자리에 박힌 비석이 전부. 풍파를 맞고도 굳건한 비석 위로 한 철 피었다 지는 꽃을 장식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하죠.
“동산마을은 기후가 온화하니까 여러 꽃들이 있겠네요. 요즘 같은 시기라면 아네모네, 튤립, 카탈리나…….”
나열되는 이름들이 하나같이 싱그럽고 생기 넘치는 종류지 뭐예요. 꽃은 늘 그래요. 아주 짧은 순간 가장 빛나도록 피었다가 툭 져버리죠. 마치 우리의 생도 꽃과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