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니까 그 동안 제가 조금 잘났던 것도 같네요. 그렇지만 참 오랜만인 이야기로 체육관전에 도전해서 지고 말았어요.
포켓몬 센터에서 모두를 회복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체육관전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다음에야 저는 체육관을 나왔어요. 커다란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각자 떠들썩하게, 자신의 내일의 차례를 준비하거나 오늘의 승리를 축하하거나 혹은 저처럼 재도전을 결심하거나 하는 것 같았어요.
살비마을은 무척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걷는 밤공기는 조금 쌀쌀맞은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제 기분 탓이겠죠.
“그럼 패인을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모두 함께 밤바다 앞 모래사장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첫 번째 패인은 역시 텟샤를 무리시킨 거겠죠. 텟샤는 오히려 자기가 이겨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듯 몸을 낮추고 있었지만 제 잘못이에요. 아무 씨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걸 그랬죠.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드레인저 씨의 갑주무사가 강했던 거야. 긍지를 가져줘, 텟샤.”
두 번째는 껍질깨기의 타이밍을 놓친 거예요. 하지만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더라도 아마 암팰리스의 옹골참 때문에 그 뒤의 결과는 비슷하게 흘러갔을 거예요. 저는 테오가 만전의 상태로 쁘사이저를 상대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어쩌면 테오도 한 번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한 번 버텼다 하더라도 이어지는 쁘사이저의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 테오와 테갈라로는 부족했을 테고요.
“관장님의 포켓몬은 보통 포켓몬보다도 더 빠르고 강하다고 했지만 이렇게나 압도적일 줄은 몰랐어.”
처음에 텟샤가 곧장 쓰러지고 나서는 마음이 곤두박질쳐 아득한 기분이었는데요. 거기서 그대로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건, 스스로 그만큼 성장한 덕이 아니었을까요.
테스티아를 앞에 두고 혼자 읊조리던 말을 떠올리며 저는 모두의 앞에서 웃어버렸어요.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웃었어요.
“역시 너희가 앞에서 싸우고 있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모두를 한 번씩 껴안은 저는 그 다음 말을 이었어요.
“그래서 필요한 일이 있어.”
제 포켓몬은 어느새 11이라는 두 자리 수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동안에도 볼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요.
“테논. 네가 필요해.”
내게 한 번 더 네 가능성을 보여줘.
테논의 몬스터볼을 꾹 누른 건 테오의 손이에요. 나오자마자 흉흉하게 전기를 충전하는 테논을 멋지게 한 대 때리며 테오는 분한 듯 속상한 듯 알 수 없는 뺘뺘 소리로 외쳤어요. 아마도 자기 대신 테논이 나가는 거니까 잘 하라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네가 나를 이기고 싶든, 이겨서 어떻게 하고 싶든 말야. 우리보다 강한 상대를 앞에 두고는 힘을 합쳐야지 않을까? 나는 네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날 도와줘.
저는 테논에게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내밀었어요.
그 두 번째, 내가 믿는 것, 내가 의지하는 것
재도전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어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막 저녁식사를 찾아서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보인 건 악의와 화로 점철된 큰 목소리, 그 뒤를 따르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였어요. ……싸우는 소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야, 이런 소리들에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할 테지만요. 무언가 울분에 찬 것 같기도 하고 몹시 조급한 것도 같고, 궁지에 몰린 듯 그럴수록 더 날이 서서 가시를 토해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듣는 저까지도 따끔거리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서 웅크렸던 것 같아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데,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고. 그런데 제 의지와 다르게 이야기는 너무나 선명히 들려와서 말 하나하나에 부정하고 반박하고 싶어서, 하염없이 테리를 안고 아냐, 그렇지 않아. 중얼거리기만 했어요.
포켓몬은 도구가 아냐. 나는 포켓몬의 주인이 아냐. 우리가 함께 쌓은 시간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고 너와 내가 맺은 유대는 가상이나 허구의 것도 아니야.
그렇지, 텟샤?
상성의 불리함이 무엇인지 알아요. 풀잎인 아이들에게 벌레나 새를 가까이 하는 건 가혹한 일이겠죠. 강한 포켓몬과 약한 포켓몬이 나뉘는 건 단순히 인간이 정한 잣대라기보다 그게 자연의 이치라는 걸 거예요. 시마사리가 코산호를 잡아먹고, 암나이트는 아케오스에게 먹히고. 우리의 생명 또한 누군가의 생명을 취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약하고 강한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우리는 아픔을 느끼고 감정을 가져요. 그것을 이해하고 나서야 보이는 세계가 있어요.
강한 것만이 유대의 전부가 아니라고 드레인저 씨는 말했지만, 저는 강함에도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틀에서 보여주는 강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누가 쓰러지고 누가 남느냐만이 아니잖아요. 텟샤가 벌레 타입의 친구들에게 몸을 갉아 먹히면서도 버텨준 것, 텟샤의 방어벽이 테스티아를 지켜준 것, 테스티아가 껍질을 깨고 자유롭게 달려 나가는 그 모습을 볼 각오가 서지 않아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제가 마침내 테스티아를 믿고 아이를 자유롭게 해준 것.
그 하나하나의 연계가, 유대가 합쳐져서 이루어낸 결과는 강하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그저 승패가 아니라, 제 포켓몬 한 마리, 한 마리의 강함이 아니라 저와 포켓몬의 멋진 팀플레이를, 저희의 유대를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모처럼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포켓몬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걸 또 보고 싶지 않으니까, 텟샤를 돋보이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이번에 그 두 가지를 다 이뤄낸 것 같아서 스스로가 조금 뿌듯했어요. 볼 안에서 쉬고 있는 아이들을 소중히 쥔 채 저는 드레인저 씨에게 겨우 힘껏 웃을 수 있었어요.
“드레인저 씨의 자랑인 아이들과 제 자랑인 아이들이 함께 무대를 꾸민 것만으로 무척 뿌듯하고 기쁜 시간이었어요. 제겐 이게 최고의 수확이에요. 감사합니다.”
테논이랑 저기서 화해를 했어야 했는데 실패함ㅎ
체육관전에서 새로운 걸 느낀 게 이 지점이었네요. 역시 마냥 승리만 해선 깨닫지 못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