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고의 페어리는 바로 너지, 테토. 물과 페어리, 천하장사. 너만큼 멋진 마릴리가 또 어딨어!”
씨근덕거리는 테토를 부랴부랴 달래면서 아무튼 저는 그만 풀 친구를 찾으러 가기로 했어요. 그런 제 뒤에서 순수 풀 타입 세 녀석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도 모르는 채로요.
「저 아이, 저렇게 풀 타입을 좋아하면 솔직히 풀 타입을 품에 안아도 좋을 텐데.」
「디모넵은…… 골고루 키워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한 때 알속에서 멋대로 고스트 타입일 거라 예상 받았던 테이의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텟샤의 긴 꼬리가 그 머리를 토닥토닥 해주면 테이는 분명 엔트리엔 제가 먼저 왔는데, 이제 갓 두 달 된 아가 포켓몬답게 얌전히 쓰다듬 받았다.
「디모넵은 이미 꽃가게에서 많은 풀 타입과 어울렸답니다. 그래서겠죠.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건.」
뭐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는 아이니까. 쑥스러워 하는 테이를 힐끔 본 테리가 저도 동그란 술로 테이를 토닥였다. 양쪽에서 누님들에게 토닥임 받으며 테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갓 태어났을 적만 해도 한참 누나인 테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보살핌을 받던 테이는 훌륭한 나무킹으로 진화한 뒤 누님을 등에 업은 채 다니고는 했는데, 텟샤가 엔트리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누님 하나를 모시기보다는 양쪽에서 귀여움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 같았다.
누님들에게 예쁨 받는 게 싫진 않지만, 나무킹이 되고부터 묘하게 멋진 모습을 신경 쓰던 테이였는데 누님들 앞에선 그런 폼은 무용지물이었다. 양쪽에서 토닥여오는 손길에 한숨을 삼킨 테이는 차라리 디모넵에게 새 풀 타입이 생기길 바랐다.
그 두 번째, 테레지아의 고민
테레지아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잡혀 있었다. 「약점보험」 지난번 샛별전을 앞두고 디모넵이 이름을 적어주었던 것이다.
「아마 이걸 갖고 있으면 에몽가가 네게 아이언테일을 쓰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 보험금 목적이 아니라 정말 네 보험을 위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쥐어주었던 종이다. 그 작은 아이의 아이언테일은 맞으면 많이 아팠을 테니 이걸 쥐어주는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테지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은 분명 꽃밭을 선물 받고자 그 아이의 손을 잡았을 텐데 꽃밭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살비마을의 꽃밭과 과수원은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넓고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그곳의 열매들은 하나같이 잘 익은 향기를 풍겨와 마을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살비마을을 나오고 샛별시티의 사건이 안정될 동안에는 평화롭지 못한 분위기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전투나 배틀에는 큰 흥미가 없던 테레지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해치고 활개를 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용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디모넵의 옆에 꼭 달라붙은 채 그 포켓몬들이 활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모두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아로마테라피를 발산하고 명상을 돕는 등 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던 것 같다.
흥미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한 것은 자신 역시 이 엔트리의 일원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못할 것도 없다. 이 정도의 마음. 게다가, 혼자 나서서 싸우는 게 아니라 더블 배틀이라면 더욱 나쁠 것 없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다.
「점점 추워지고 있지 않니.」
약점보험은 저에게 맡겨 놓은 채 가져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꽃밭은커녕 캠프의 걸음은 점점 바위와 눈 덮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보험금을 탈 때가 아니라 사기계약으로 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닌 종이의 보험 약관을 읽어보며 틈틈이 밑줄도 치던 테레지아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치릴리를 옆구리에 끼운 채 앞서 가는 디모넵의 뒤를 보았다.
저도 디모넵의 말만 믿고 저렇게 옆에 챡 붙어 가던 플라엣테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오랜 옛날 같다. ……저 아이도 어쩌면 저처럼 사기를 당한 건 아닐까? 아니면 납치. 제 트레이너가 어리고 귀여운 아이인 건 알지만 그만큼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도 잘 알기에, 테레지아는 걱정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