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에밀 씨와 놀러가기로 약속한 날이에요. 정확히 오늘은 아니고요. 제가 체육관전을 마치면 같이 샛별시티를 돌자고 약속했어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샛별체육관을 멋지게 이기고 당당하게 에밀 씨와 놀러 가고 싶었어요. 에밀 씨는 그런 저에게 휘말리는 거고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체육관전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어요. 근거도 없이 자신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겠지만 저는 왜 늘 미리부터 포기해버리고 마는 걸까요.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게 두려운 탓일까요.
그야,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그럼 같이 관광을 할 수 있도록 네가 이기면 되는 것이겠군.」
「져도관광하러간다는선택지는없을까요.」
「자신이 없는 것인가.」
스스로의 실력에 확신을 갖춘 에밀 씨에게 이런 제 모습은 나약하고 형편없어 보이지 않을까 몰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기고 오는 게 아니라면 상대해주지 않겠다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에밀 씨는 첫 만남에서부터 약한 트레이너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티를 팍팍 내기도 했고요.
「저도 방금 이겼는데요!」
단순히 배지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죠. 분명 같은 시합에서 이겼는데 그 때의 저는 이상하게 에밀 씨 눈에 안 들던 것 같았거든요. 지금도 실력만 갖고 말하라면 마찬가지일 거예요. 지금의 에밀 씨는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를 사귀는 법을 익혔으니까 저랑 놀아주는 거겠지만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봐요.
「뭐, 흥미로운 곳에 데려가면 딱히 상관없어.」
이렇게 상냥한 말을 해주게 되었잖아요.
「딱… 기다려요, 에밀 씨. 3전 3패를 하고서라도 저 내일 찾아갈 테니까.」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고 저는 3전 3패를 하고 씩씩하게 에밀 씨를 찾아왔어요.
“약속 지키러 왔어요. 자, 샛별시티의 저녁을 즐기러 가요!”
울적한 제 체육관 도전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해요. 무슨 각오로 도전을 하고 어떤 심정으로 졌는지, 그런 걸 모처럼 즐거운 시간에 이야기해선 안 되잖아요. 대신에 저는 에밀 씨의 이야기를 했어요. 곧 도전할 북새 체육관을 힘내라거나 그곳 숙소의 헤이즐 씨가 실은 전 북새 체육관 관장님이라거나 그곳의 삐라슈끼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따위를 가는 내내 이야기 했어요.
“다음엔 챔피언 로드 너머에서 보려나요. 그 때까지 또 잔뜩 연락할게요.”
샛별시티의 시내는 정말 놀라운 번화가였어요. 혜성시티가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라면 샛별시티는 떠들썩하고 격 없는 즐거움이 가득하지 뭐예요. 우린 게임센터에 가서 북 치는 리듬게임도 해보고요. 패널 밟는 리듬게임도 해보고요. 농구공 던지기도 하고 에밀 씨는 생전 처음이라는 것들을 잔뜩 시켜주었어요. 이런 걸 왜 하느냐고 거부하는 건 아닌가 했는데 에밀 씨는 투덜대면서도 전부 어울려주었어요.
「…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법.」
이게 엘리트 트레이너의 긍지라는 걸까요? 애초에 그 약속이란 것부터 제가 멋대로 새끼손가락을 날치기 한 건데. 그래도 제 퉁퉁 불은 포핀 얼굴을 신경 써주기라도 한 건지 오늘따라 에밀 씨는 너무 상냥했고요. 덕분에 저는 잔뜩 어리광을 부렸어요.
“스티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잠옷 입고 오는 건데~”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라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아니면 여기서 잠깐 갈아입어도 좋고요.”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냐는 에밀 씨의 눈빛을 모른 척 하고 저는 그 팔짱을 꼭 낀 채 스티커 사진도 찍었어요. 설마 여기까지? 했던 걸 정말 여기까지 해주다니. 조금 많이 감동이었어요.
에밀 씨의 사진 위에는 요테리를 그려주었어요. 후후.
게임 센터를 나와서는 맞잡은 손을 한들한들 흔들며 해질녘의 샛별시티를 걸었어요. 도시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강물 위로 노을이 떨어지는 풍경은 아주 장관이어서요. 저희는 마카롱만 살 셈이었던 예정을 바꾸어 전망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잠시 그 풍경을 감상했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었어요.
“풍경 예쁘지 않아요, 에밀 씨? 이 풍경을 놓치고 갔으면 아까울 뻔했어요.”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에밀 씨 마음에도 들길 바랐고요. 이미 한 번 왔던 도시이면서 숙소와 체육관밖에 오가지 않았다고 하는 그에게 이번에야말로 도시가 잘 기억되길 바랐어요.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면 퐁퐁 여러 생각들이 들었어요. 에밀 씨의 목표, 선택한 길, 그를 위해 포기한 것, 혹은 제가 걷는 길, 제가 가지 못한 길, 제가 가고 싶은 길, 아주 여러 가지 것들이 말이죠. 하고 싶은 걸 다 하기에는 제 손은 아직 한참 작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기에 에밀 씨의 길은 아직 좁고 위태로운 것 같았어요.
그래도 우리는 아직 챌린저니까. 서툴고 부족해도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그런 희망을 품고 계속해 노력하는 걸까요.
제가 따라가기에는 조금 벅찬 것도 같다는 이야기는… 잠시 묻어두고요.
둘이서 나란히 달콤함을 가득 충전하고 우린 그만 숙소로 돌아왔어요. 여기서 헤어지나 했는데 4번 도로까지는 같이 걸어주는 에밀 씨는 처음 만났을 적이랑 정말 다른 표정을 하고 있어서 저는 또 잔뜩 기뻐지고 말았어요.
“다음에 또 봐요, 에밀 씨~~”
보고 싶을 거예요-! 아주 잘 들리도록 크게 외치고는 창문에서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는 에밀 씨에게 붕붕 손을 흔들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