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엔트리, 제 마지막 빈볼을 채운 건 치릴리라는 귀여운 포켓몬이었어요. 마지막 한 자리인 만큼 조금 욕심을 부려서 나도 누군가에게 포켓몬을 양도 받고 싶다거나 혹은 이번에야말로 제 처음 목적에 맞게 없는 타입의 포켓몬을 잡겠다거나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이 너무나 저다운 것도 같았어요. 풀 타입을 좋아하는 이 마음의 진정성을 증명한 거라고 해도 좋겠네요.
“그래서 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눈속에 파묻혀서 조금 생기를 잃었던 잎은 이틀 동안 열심히 케어해준 것으로 다시 싱그러워졌어요. 치릴리의 머리에 난 잎사귀는 먹으면 기운이 나는 효과가 있대요. 그리고 뽑아도 금세 다시 자라서, 저는 잠시 O빵맨을 생각해버리고 말았어요.
이런 생각 들켰다가는 이 아이에게 혼났으려나요? 처음 만났을 적부터 묘하게 호의적인 아이예요. 그래서 혹시 사람이 익숙한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캠프의 많은 사람들을 보자 조금 낯을 가리기도 해서 그건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러면 어어,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면 또 엄청 쑥스러워지더라고요. 캠프 분들이 저는 풀 타입을 끌어당기는 향이 난다는데 이제까지는 칭찬이나 농담으로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저도 스스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나한테서 좋은 향기 나, 테리?”
테리는 제 말이 답없이 물끄러미 쳐다봤는데요. 저는 지레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어요. 이상한 소리 해서 미안해.
새 친구를 사귀었으니 이름을 지어주어야 할 차례였는데요. 이번엔 제법 난관이더라고요. 테- 돌림의 이름, 슬슬 12번째까지 오고 나니 레퍼토리가 떨어지기도 하고 저는 되도록 그 포켓몬의 종을 따라서 이름을 지어주는 편인데 ‘치릴리’라고 하면 이미 ㄹ발음이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 있죠.
“사실 네게 난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어.”
종이를 펼치고 그 위에 펜으로 이름을 적었다 지우길 반복, 제 옆에서 자기 이야기인가? 기웃거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는 잠시 어느 지방의 북쪽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이런 이야기에는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테스티아를 옆에 앉히고 아직 이름 없는 아이를 토닥이며 척박하구 추운 북쪽 땅, 언제나 땅이 얼어 있고 툭하면 눈이 내리고 녹색 빛을 보기 힘든 그곳에서 은혜로운 빛의 신과 함께 초목을 가꾸는 식물의 신의 이야기를요.
4번 도로는 마침 눈 덮인 척박한 환경이었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이런 작은 풀 타입의 친구가 살고 있던 건지 신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꼭 난나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테난나라는 이름은 묘하게 확 와 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렇지. 난나라고도 부르지만 풀 네임은 ‘Nanna Nepsdóttir’ 이렇게 쓴다고 해. 그러니까……”
테네도르. 이 이름은 어떨까?
제 물음에 아이는 치릴, 릴-♪ 웃으며 끄덕여주었어요. 만족한 걸까? 저는 안심하고 드디어 아이에게 제대로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어요.
“잘 부탁해, 테나도르. 우리 여행에 합류한 걸 환영해.”
테나도르의 이름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요.(테난나도 꽤 끌렸는데 아니면 테디) 지금 보면 역시 테나도르가 제일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