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의 진화는 무엇이라 설명해야 좋을까요. 환경에 맞춰 의태하는 것? 생존을 위해 더 강해지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어떤 포켓몬은 약육강식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진화하지 않기도 하고 어떤 포켓몬은 탐욕스럽게 더 강해지기 위해 힘을 키워요.
또 어떤 포켓몬들은 특별한 힘이 담긴 아이템을 이용해 진화를 하기도 해요. 대표적인 게 바로 돌이겠죠. 태양의 돌, 달의 돌, 불꽃의 돌, 물의 돌, 이런 식으로요. 그렇다면 이러한 도구에 의한 진화는 어째서 벌어지는 것일까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닐 텐데.
최근에야 깨닫게 된 건데요. 저는 달리아 씨가 연구하던 분야랑은 아주 조금 다른 분야의 연구를 좋아하나 봐요. 결론적으로 달리아 씨나 저나 인과관계를 따지고 싶어 하는 건 비슷해 보이지만요.
그래서 이 얘기가 왜 나왔느냐 하면 테나도르가 선물해준 태양의 돌을 들고 와 제게 반짝반짝한 눈을 해보이기 때문이에요. 진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보여서 응, 곧 해줄게. 하고 말하긴 했는데요. 사실 저는 테나도르가 조금 더 치릴리로 머물길 바랐거든요.
아주 단순한 이유는 제게 진화하지 않은 포켓몬은 이제 테나도르뿐이었고, 저와 함께 좀 더 유년기를 보내주었으면 하는 욕심일 거예요.
하지만 테나도르는 제 마음과 달리 진화에 제법 욕심을 보였어요. 그래서 갑자기 진화를 고찰하게 된 거예요. 겉보기는 새싹이지만 테나도르는 치릴리로서 꽤 오랜 시간을 4번 도로에서 보낸 모양이었고, 그래서 진화를 기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제 ‘조만간’이란 말에 이해하고 넘어가준 것 같았는데 오늘 갑자기 진화를 다시 욕심내게 된 건 아마도──
“파켈, 교대!”
“가자! 샛별 때처럼 밀고 나가자! 나비춤!”
그게 아주 예뻤던 모양이지 뭐예요.
파켈이 불꽃에 휘감겨 날개를 살랑이며 움직이던 그 모습이요. 꼭 반해버릴 것처럼 예뻤던 모양이에요. 그 기분은 저도 잘 알지만요. 파켈의 나비춤은 정말 최고니까요.
그래서 자기도 춤을 추고 싶다고, 자기에게 춤 출 수 있는 손과 발을 달라고 제게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모습에 저는 결국 지고 말았어요.
포켓몬의 진화는 어떠한 연유로 이루어지는 걸까요. 어째서 포켓몬은 진화하는 걸까요. 아직 그 이유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포켓몬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실감이었어요. 생존을 위해서, 본능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마음을 갖고 진화하길 택하는 것.
“네 마음을 알겠어, 테나도르. 새 모습을 기대할게.”
저는 테나도르와 함께 태양의 돌을 꼭 쥐었어요.
꽃이 피어나는 순간,
포켓몬이 진화하는 순간은 언제나 신비롭고 또 신기해요. 어떨 땐 경이롭기까지 하고요. 제가 본 최초의 진화는 테토였네요. 아주 쪼끄만 루리리에서 마릴이 되고 마릴리가 되기까지. 테토의 진화는 너무 빨랐던 것도 같아요. 덕분에 저 애, 여전히 몸만 자라고 하는 행동을 보면 어린애 같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테마리와 테루테루와 테리가 한꺼번에 진화를 했었어요. 모두 비슷비슷한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자라서 그랬을 거예요. 이후로도 모두 차례차례 진화를 하고 모습이 바뀌고, 테논이 애벌레에서 단숨에 거대한 날개를 가진 투구뿌논이 되거나 텟샤가 사랑스런 샤비에서 거대하고 긴 샤로다로 진화할 때는 몇 번을 겪고도 놀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테나도르가 진화하는 모습은……,
“와아아.”
태양의 돌에서 아주 뜨겁고 환한 빛이 터져 나오고 돌에 깃들어 있던 강렬한 태양빛이 테나도르의 몸으로 흡수되었어요. 빛을 받은 테나도르는 무럭무럭 쑥쑥, 잎사귀 사이로 꽃대가 나오고 이어서 봉오리가 맺히고 사랑스런 주황색의 꽃봉오리가 피어날 준비를 하는 동안 아래의 꽃대가 다시 치마처럼 길고 풍성해지고, TV에서 보던 마법소녀의 변신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은 변화였어요.
아이가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는 모습이 꼭 이럴까요.
이윽고 빛이 사그라질 즈음에는 동그란 꽃봉오리가 기어코 피어버려서, 누구나가 한 번쯤 돌아보고 주목해버릴 만큼 사랑스러운 화관을 쓴 드레디어가 제 눈앞에 자리하게 되었어요.
“테나도르도 나보다 먼저 커버리고 말았네.”
나는 아직 치릴리인데. 혼자 드레디어가 되어버리다니. 조금 토라진 듯 입술을 내밀자 제 가슴 정도까지 오는 앙증맞은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와서 자기 부푼 잎사귀를 살짝 잡고 인사를 해주었어요. 꼭 ‘만나서 반가워요.’ 하듯이 말이에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모습을 저는 이길 수 없었어요.
드레디어의 꽃은요. 아무리 트레이너가 정성을 들여도 야생에서 피어나는 꽃만 못하다고 해요. 어째서일까요. 하지만 눈앞에서 피어난 테나도르의 꽃은 어느 누구와 비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서, 그 말이 다 거짓말 같아졌어요.
세상에 너보다 예쁜 꽃을 피워낸 드레디어는 없을 거야.
“나도 어서 네게 지지 않을 정도로 자라기로 할게. 그 때까지 기다려줘.”
이 3개월 동안 저도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럼에도 포켓몬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란 한참 부족했어요. 제가 아무리 따라잡고 싶어도 이 아이들은 금세 쑥쑥 자라버려서, 어느새 저를 지키겠다고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테이처럼 말이죠.
그게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근두근거리면서 저도 얼른 자라고 싶어져서, 자꾸만 자꾸만 발돋움을 하게 되고 말아요.
과연 앞으로 저는 이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트레이너로서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요? 그 날이 기다려지게 되었어요.
──한편, 테이는 누님 둘에게 치이는 것이 괴로워 차라리 새로운 풀 타입이 한 마리 더……, 라고 꿈꾸었던 게 누님 셋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고난이 한 층 늘었다고 해요.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