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니켈에게 센트의 몬스터 볼을 임시로 받아두기로 했어요. 제 커스텀스킨의 볼 안에 들어 있는 센트를 보는 건 조금 쑥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가 배지를 6개나 받아둔 걸 잘한 일이라고 느꼈고요. 센트는 순한 포켓몬이고 저랑도 친하니까 굳이 그런 걱정 할 것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포켓몬을 받아둘 때 배지가 여러 개일수록 좀 더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하니까요.
휴게실에만 있기엔 조금 답답하고, 센트를 꺼내놓기도 쉽지 않아서 저는 잠시 아이들을 데리고 리그 건물의 바깥으로 나왔어요.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나? 하고 살금살금 바깥으로 나오자 오늘도 날씨가 좋더라고요. 햇살 따뜻한 풀밭에 센트와 다른 아이들을 꺼내놓고 저는 자연스럽게 센트에게 등을 기댔어요. 제 옆에는 테이가 따라 기대고, 테리는 오늘도 햇살을 받아 꽃을 활짝 피우고 센트의 머리 위에 앉더라고요.
토대부기는요. 대륙 포켓몬이라고 불려요. 하나의 대륙을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대지를 상징하는 포켓몬이거든요. 어떤 포켓몬은 토대부기의 등에서 태어나 거기서 일생을 보내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니테오처럼 작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테리만 해도 센트 곁에서 머무는 걸 좋아하고요.
아주아주 먼 옛날에는 우리가 사는 이 지방들도 실은 그 밑에 거대한 토대부기가 있다는 공상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지각변동이라고 하는 일들이 사실은 거대한 토대부기들이 움직일 뿐인 일이라면? 재밌는 상상이죠.
──아, 이런 생각을 하려던 게 아닌데. 센트에게 기댄 채 일기장을 꺼내놓은 저는 또 멍하니 멈춰 있던 손을 깨닫고 제 머리를 따콩 때렸어요.
“금세 딴 생각에 빠지고 마네.”
모오,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센트가 제게 턱을 문질러 부벼 와요. 아프지 않냐고 쓰다듬어주는 기색에 키득키득 웃으며 아이의 턱과 뺨에 작게 뽀뽀를 해주고 저는 다시 집중해서 일기장을 펼쳤어요.
그러니까…… 리그에 출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일에 관한 것이에요. 지고 싶지 않다고,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고 하던 이야기에 저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째서 2번, 3번 지면서도 제가 재도전을 했겠어요. 지고도 아무렇지 않기란 어려운걸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선택해야만 했어요.
포켓몬은 배틀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제 아이들은 꼭 강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를 살아가고 있어요. 그걸로 저는 만족했고요. 하지만 리그에 오르기로 결정한 이상은 배틀을 위한 선별이 필요해요.
엔트리 안에서 데려갈 수 있는 포켓몬을 골라내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훈련을 시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란 생각이 들더라도 선택이 요구되죠. 제가 바란 건 부디 그 선택이 너무 괴롭지 않기를, 이었어요. 꼭 배틀에 함께 나가지 못하더라도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테리가 제 파트너인 건 함께 배틀에 나가기 위해서가 아닌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민하던 사람들을 보고는 조금 웃고 말았지만요. 그런 욕심마저도 좋아서요.
각자의 무게를 등에 지고 복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배웅했어요. 그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왠지 제가 다 울렁거리고 벅차올라서, 이래서 사람들은 늘 도전을 하고 한계를 시험하는구나 실감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신오지방의 챌린저에 도전해보고 싶어지지 뭐예요. 그 때는 신오지방의 포켓몬들을 데리고요. 한번쯤은 이기기 위해 모든 수를 다 해보고 매진하는 뜨거운 경험을 해도 좋을까, 모두의 등을 보면서 꿈을 가진 것 같아요.
나도 저렇게, 하고요.
“누군가를 동경하고 선망해서 같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다시 누군가의 선망이 되었어.”
아주 멋진 일이 아니겠어?
저곳에서도 다시 승패가 갈리고 희비가 교차하겠지만 이미 제 마음에는 제 앞을 걸어간 모두의 발자취가 전설로 남아버렸어요. 그러니까 부디 제 자랑스런 전설들이 후회 없는 시합을 하고 오기만을 바랐죠.
“그래도 신오로 돌아가서도 모부기를 친구로 사귀진 못할 것 같아, 센트. 네가 너무 좋아서 내 포켓몬을 만나더라도 네 생각이 나버릴 것 같거든.”
밀푀유랑 센트가 이미 제겐 최고의 토대부기로 자리잡아버려서 말이죠. 만약 신오의 챌린저가 된다면 그 땐 니켈에게 보러와 달라고 부탁해야겠어요, 센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