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오는 사과에 저는 리브의 손을 살며시 놓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또, 이 지점인 거예요. 몇 번이나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거듭되던 일이에요. 굉장히 맥이 풀리고 서운한 한편으로는 그만 포기해버리는 기분도 든 것 같아요.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다음엔 포기하는 것, 이제는 제법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걸까요?
“저번에 리브가 안대 푼 모습을 보여 줄까? 했을 때 리브에게 말하지 못했던 거 말야.”
목소리를 덤덤하게 가다듬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어리광을 부린다고 말했지만 부담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곤란하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그야 이제까지 저는 몇 번이나 리브를 곤란하게도 만들고 난처하게도 만들고, 가끔은 그보다 더 힘들게도 만들었던 것 같지만 그러니까 더요.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매번 이렇게 방법을 찾지 못하는 걸 보면 제가 아주 요령이 없는 게 틀림없겠죠.
“언젠가 리브가 스스로 말해주길 기다리고 싶었어.”
늘 리브에게 먼저 바라던 건 저였거든요. 리브는 서툴고 잘 표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제가 먼저 말을 꺼냈어요. 의지해주는 걸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의지하고 기대고 어리광도 부리고, 반대로 리브에게도 더 의지해달라고 말하고 손을 내밀었어요.
한참 그러고 있으면요. 가끔 불안하기도 했고요. 리브를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리브는 상냥하니까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주는 건 아닐까.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은 해도요. 저는 리브에 비해 한참 어리고 부족하고, 리브가 의지해줄만한 상대는 되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요. 아직도 리브는 제 옆에서 안대를 풀지 못한 채 자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질투도 좀 했고 서운하기도 했던 거예요. 꼭 나만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죠.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니 정말 토망 열매도 앗 뜨거 도망칠 것처럼 낯이 뜨거워지네요.
다음 이야기를 또 해볼까요. 화끈 달아오른 두 뺨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다 살짝 한 걸음 물러났어요. 얼굴은 쳐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내가 리브랑 있는 게 더 좋다고 해서 실망했어?”
고도팀이 결성되는 게 부러웠다고, 여럿이서 북적거리는 게 좋아 보였다고. 좀 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리브랑 같이 있고 싶다는 그 하나만으로 그만 두고 온다는 건 틀린 것 같다고. 제 말이 리브는 실망스러웠을까요? 어쩌면 지금도 리브는 더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 캠프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목새마을의 관장 자리를 이어 받는 것 중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저는 간단히 어느 한쪽을 선택해버린다니까 이상해 보였을지도 몰라요.
제 입장에 보자면 내가 그만큼 리브를 좋아한다는 건데 리브에겐 그 마음보다 저 위의 고려사항들이 더 크게 느껴졌던 걸까 아주 속상한 일이지만요.
“같이 고민하고 의논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는데 리브는 또 혼자 결정해버려.”
저는 리브 옆에 있고 싶은 거니까요. 당장 목새체육관을 이어받는 대신 같이 여행을 해도 좋아요. 칼로스 지방의 챌린저를 할까, 체육관 관장이 되고도 가끔씩 체육관을 비우고 돌아다닐까 리브도 고민하던 일이잖아요. 함께 머리를 맞대면 방법은 아주 많을 것 같은데 리브의 머릿속에선 그게 아닌가 봐요. 당장 쟈키 씨랑도 같이 2번 도로를 다녀오기로 해놓고, 이쯤 되면 궁금해질 지경이에요. 리브가 생각하는 이건 되고 저건 안 되는 일들.
앗, 불평이 길어져버렸어요. 이야기를 다시 되돌리자면요. 리브를 이해시키기란 어렵지 않을 거예요. 리브가 바라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성적인 이유들을 대는 건요. 하지만 굳이 납득시키지 않기로 했어요. 제 마음은 그런 합리적이거나 그럴듯하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나 계산 끝에 나온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유들로 허락을 받는다고 해도 저도, 리브도 안심할 수 없을 거예요.
그제야 저는 다시 고개를 들었어요. 약한 소리를 해버리고 말겠지만 얼굴을 마주해야 할 순간이었어요.
“리브 옆에 있고 싶다고 해도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어.”
리브가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한다거나 리브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한다거나. 쓸쓸하고 서운하다는 말은 지금의 이 풍경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고작 저 한 명이 리브의 곁에 있겠다고 해서 그걸 다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리브에게는 더 의지하고 필요로 하는,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든든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이참, 정말 약한 소리만 하네요. 그래도, 그래도…… 자신할 수 없으니까.
이번만큼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은 무리예요.
“내가 욕심낼 수는 없어.”
“──그치만 리브가 바라준다면 아주 기쁠 거야.”
가방을 쭉 당겨서 늘 매달고 다니던 배지를 떼어냈어요. 늘 가방 앞에 달고 다닌 탓에 조금 낡고 때가 타기도 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지인데요. 이걸 보면 늘 웃을 수 있을 것만 같거든요. 자전거 배달원에게 스마일은 생명이니까요.
“자, 이게 내가 리브에게 주는 선물. 다른 사람들은 배지 8개로 도전하는데 특별히 리브는 9개로 도전할 수 있게 힘을 주는 거야.”
둔치시티의 도전, 영 웃지 못하던 얼굴이 마음에 걸렸어요. 챔피언로드를 앞에 두고서는 한층 더요. 그야 웃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에요. 리브가 느끼고 있는 중압감이나 불안, 괴로운 마음 같은 걸 제가 다 헤아려줄 순 없어요. 그래도, 기분전환의 스위치라도 되었으면 해요.
“응원하고 있을게.”
아직 리브를 배웅해주려면 멀었는데, 벌써 이런 마음이 되고 말았네요. 조금 쓸쓸해지려는 기분을 꾹 참고 저는 애써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