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저는 지금 막 3번째 배지를 딴 초보, 아, 아니. 호프 트레이너입니다. 일단은 그, 채, 챔피언 지망이에요. 하지만 매 체육관 너무너무 힘겨워서 이번에야말로 정말 무리인가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이겨버리고 말았어요.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아 얼떨떨하네요. 눈앞의 관장님은 몇 번이고 저를 두고 혼자 질주해버렸는데, 어떻게 이긴 건지.
[Yeeee~~~!! 멋진 배틀이었어요, 챌린저. 이것으로 3번째 배지도 무사히 GET~!! 이라고? 챔피언으로 향하는 계단을 또 한 번 오릅니다. 축하해요!]
저를 응원해주는 목소리만이 저보다도 더 신이 나고 기뻐하며 축하를 해주었어요.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직도 비틀거리면서 서 있는 파트너를 허둥지둥 볼에 되돌렸어요.
3번째인데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일에 매번 또렷한 실감을 주는 건 저 목소리예요. 체육관의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청량한 저 목소리요.
스피커의 상대는 제가 첫 체육관에 도전할 때부터 저와 함께 해주고 있는데요. 사실 아직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채입니다. 체육관 도전에 무지하던 초반에는 원래 이런 게 있는 걸까? 했는데 두 번째 체육관의 관장님이 그건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나서야 저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오직 절 응원해주기 위해서 함께 해주고 있단 걸 알게 되었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왜 저를? 당신은 누구? 그래서 한 번은 용기를 내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제가 누구냐고요? 음~ 제법 철학적인 질문이 되겠는데요. 지금은 ‘정체불명의 스피커’ 정도로 해둘까요?」
라는 답만 받고 말았어요. 궁금증만 커져버렸죠.
매 체육관마다 나타나서 저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고, 응원을 들을 때면 엄청난 힘이 솟기도 하던데 사실은 요정님인 게 아닐까요? 제게 승리를 안겨주는 요정님이요. 이, 이런 얘기 너무 부끄러울까요?
“아하하. 디디가 요정님 같단 건 저도 동의해요. 가끔은 루키 편만 들지 말고 이쪽도 응원해주면 좋을 텐데.”
혼잣말이었는데 관장님에게 들려버렸나 봐요. 악수와 함께 건네진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잠시, ‘디디’란 호칭에 궁금증을 안고 쳐다보자 파랗게 불타오르는 인상의 관장님은, 배틀 때보다 한결 열이 식은 얼굴로 웃으며 그 답은 해주지 않았어요.
물론 아주 짐작가지 않는 건 아니에요. 첫 체육관전에선 너무 떨려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두 번째 때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거든요. 포켓몬 배틀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한 배틀 중계방송의 주인공이요. 하지만 정말 그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잘 모르겠어요.
“왜 하필 나를 응원해주는 걸까…….”
[또, 또 자기를 낮춰 말하고 있진 않은가요, 챌린저~?]
“흐어억.”
불시에 들려온 목소리에 체육관 문 앞에서 주저앉을 뻔했어요. 대체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제가 놀라거나 말거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쾌활하고 또 흔들림 없이 제 등을 두드려주었어요.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의심하는 건 좋지 못한 습관이랍니다. 당당해져야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함께 노력한 포켓몬에게도, 당신을 인정한 관장님에게도 실례인 걸요.]
“그, 그렇지만……”
[아직도 이렇게 자신이 없어서 큰일이네요. 당신의 손에 들어간 배지야말로 틀림없는 ‘증명’인데. 음~ 그러면……, 좋아요. 만약 다음 체육관에서도 무사히 배지를 손에 넣는다면 이유를 알려줄게요.]
생각지 못한 말에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혼자 심장이 쿵쾅거려서 어쩔 줄 몰랐어요. 저를 설레게 한 건 내내 궁금해 하던 이유를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첫 체육관의 문을 열던 그 날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많은 기운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언제까지 저를 응원해 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죠.
그런데 지금, 당연하게 다음 약속이 나온 거예요. 어쩌면 좋죠. 기대되어버리고 마는데.
“야, 약속이에요.”
[그럼요. 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당신과 만나기를.]
목표는 챔피언, 하지만 저를 응원해주는 저 목소리 덕분에 제게는 비밀스런 목표가 하나 더 생기게 되었어요.
언젠가 저 사람에게 챌린저가 아니라 당당하게 이름을 불릴 수 있기를. 하고.
그런데, 그랬는데…….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떡해요, 정체불명의 스피커님. 아니,
──네 번째 체육관 관장, 플로럴 치어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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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드디어 여기까지 와주었네요. 당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설레고 기쁜 일이었답니다. 자아, 이 고비를 넘기면 드디어 배지도 4개째. 챔피언을 향한 길의 반환점이요. 그럼 그동안의 성과를 보여주시겠어요? 챔피언을 꿈꾸는 우리의 챌린저!]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는 건 언제나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에요. 이 사람은 어떤 꽃을 피워낼지, 궁금하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챌린저들을 지켜보기란 아무리 저라도 무리지만, 새롭게 챌린지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되도록 찾아가서 첫 싹이 움트는 순간을 지켜보곤 했답니다.
그러다 한 번씩 눈을 사로잡는 친구가 생기면 “Rock on!” 해버리기도 하고요. 바로 이 친구처럼 말이죠.
첫 도전 당시의 친구는 볼을 잡는 법도 서툴기 짝이 없고 파트너 포켓몬에게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긴장해서 허둥대고 어디로 보나 어설프고 부족한 햇병아리 트레이너였어요. 그럼에도 눈여겨보았던 건 관장님 앞에 선 친구의 이야기 덕이에요.
「시, 실은…… 저, 어릴 적부터 포켓몬 트레이너가 하고 싶었는데 몸이 약해서, 엄마가 여행은 무리라고 하셨는데요. 언젠가 저처럼 목이 약했는데도 챔피언에 오른 트레이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나도 포기하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겨우 허락을 받아냈어요. ……그, 그러니까 금방 돌아갈 순 없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하, 그래서 검은 비니를 쓰고 있던 거군요. 당사자에게 전해주면 아주아주 좋아하겠어요.
이런 귀여운 말을 들어버리고 나면 또 응원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저도 모르게 메가폰의 스위치를 켜버리자 옆에서 테리가 ‘디모넵, 또 남의 체육관에서.’ 하고 쿡 찔렀지만 아이참, 이해해줄 거야.
[좋은 포부를 밝혀주었어요, 새내기 챌린저. 레토르트 챔피언의 뒤를 이어 차기 챔피언 자리를 노리겠다! 이거이거,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그런 새내기 친구를 위해 전 챔피언님의 전법을 살짝 스포일러하자면 ‘내가 쓰러지기 전에 상대를 쓰러트리겠다. 쭉쭉 밀어붙여, 가랏 힘겨루기!’ 일까요? 따라가기 위해선 어깨를 좀 더 펴야 할 거예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볼을 놓칠 뻔하다 허둥대던 모습이 참 풋풋하고 좋았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리고 말았네요. 아직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을까요? 당신이 얻어낸 배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힘인데.
잠시 추억에 젖어있던 저는 세 번째 볼을 꺼내고 살짝 눈을 맞추었어요. 더는 말이 필요 없는 제 파트너죠.
“테이, 네 차례야. 부탁할게?”
볼을 열리며 나무킹이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무대에 올라섰어요. 그 뒤에서 저는 메가폰을 힘껏 움켜쥐고 소리쳤죠. 꽃봉오리 같은 끝부분의 스톤이 빛나면 드디어 무대는 클라이맥스! 가장 설레는 순간이에요.
[열기가 뜨겁네요, 챌린저! 그럼, 함께 피어날까요?]
가지각색으로 자신만의 꽃을 피워내는 도전자들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아요. 과연 이 친구는 저를 포켓몬 리그의 특별 MC로 불러줄 재목이 될까요? 자아, 챌린저님. 치어링 배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