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에슬리는 내리 쬐는 햇살에 흠뻑 젖어 눈을 떴다. 새벽이슬이 마르며 드는 촉촉하고 서늘한 공기가 창틈으로 새어들었다. 베일의 아침이라고 이트바테르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걸. 대신 에슬리의 방 아침이 루의 방과 달랐다.
벽으로 난 창이 크고 커튼은 얇았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실효성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따스하고 온화한 빛이 부드럽게 스미기보다 넓은 창을 통해 욕심껏 쏟아졌다. 그러면 에슬리는 원기를 회복하듯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고 옆자리의 연인은──
“으윽…….”
마치 태양을 피하는 뱀파이어라도 된 것처럼 꾸물꾸물 이불을 위로 끌어 올려 빛을 가려들었다. 그의 손을 따라 오트밀 색의 이불이 죽 당겨졌다. 보들보들하면서 따뜻하고 가벼운 그건 이사 오면서 산 것 중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무슨 털로 짠 거랬지? 아직 낯설던 베일의 시장에서 심혈을 기울여 골랐지. 봄가을용으로 딱 좋은 두께였는데 두께는 그렇다 치더라도 제가 덮을 땐 한참 넉넉하던 게 연인이 덮으려니 발끝이 아슬아슬하진 않나 싶었다. 새삼 에슬리는 그의 길이를 손 뼘으로 재보았다.
그래도 모자랄 만큼은 아닐 텐데 얼마나 돌돌 말아 올렸는지 여백이 거의 남지 않은 이불 틈새로 창백한 발이 보였다. 손뼘 만큼 다 헤아린 기념으로 장난스럽게 그 발을 덥석 쥐자 2차로 앓는 소리가 나며 긴 다리가 접혔다. 일어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이 자는 날은 주로 그의 방으로 가곤 했지. 커튼이 두꺼운 그 방은 시간의 흐름을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평소라면 느슨하게 떨어질 눈썹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다. 그가 찡그린 낯을 하는 건 드물다. 아니, 아침해 앞에선 곧잘 이랬던가? 발을 쥐던 손을 두고 꼼지락 꼼지락 올라타 앉아 에슬리는 모처럼 잘생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아무렇게나 엉킨 잿빛 머리카락과 그 틈으로 보이는 찡그린 눈썹, 파란 핏줄이 다 보이는 눈꺼풀은 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쁘다. 생각하며-몇 년이 지나도 제 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에게로 엎드려 애교섞인 목소리를 내보았다.
“더 잘 거야?”
“으응…….”
돌아오는 발음은 웅얼거림이 섞여 부정확했다. 뭐라고 했어? 귀를 가져가니 소리 대신 입술이 닿았다. 반사적으로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이어 갈고리처럼 뻗어오는 팔이 그대로 그녀를 이불 안으로 끌어들였다. 매트리스의 한쪽이 움푹 패고 들썩이길 한참, 어느새 고른 숨소리 두 개가 둥글게 부푼 틈으로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