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카하타 이노리
──꿈속에서 말이죠.
노래하듯 흥얼거리며 흘러나온 목소리는 상대의 답이 돌아오기 전에 선수를 치듯 이어졌다.
“꿈속에서 이노리 군이 어느 대감집 자식이었어요. 아주아주 높은 자리였죠.”
“꿈에 내가 나왔어?”
“나왔어요. 주연이었답니다~”
간장을 발라 구운 떡을 김에 하나씩 싼다. 김에 싸는 속도와 건너편에 앉은 이의 입에 들어가는 속도가 엇비슷했다. 얘는 제법 다네. 우물거리며 나오는 말에 세이라는 그렇죠? 하고 빙그레 웃었다. 단맛 나는 간장을 썼거든요.
“간장이 단맛도 나?”
“설탕이 없던 시절엔 여러 곳에서 단맛을 찾았다고 해요.”
헤에, 하고 감탄하며 그가 그래서? 뒷이야기를 채근한다. 손은 부지런히 떡을 싸며 세이라는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꿈속에서 본 풍경도 설탕이 없던 시대였다. 박물관이나 사진에서, 혹은 시대극에서나 보이던 형식으로 지어진 목조건물들이 줄을 이었고 포장되지 않은 흙길 위를 사람과 말과 마차가 지났다.
아마도 수도였던 것 같다. 중심부로 갈수록 커다란 궁궐과 대감집이 있었다. 지금 현대와는 달리 높은 건물이 없는 덕에 담벼락만 넘으면 안이 아주 잘 보였는데 커다란 기둥이나 휘황찬란한 장식들, 번쩍번쩍 새겨진 금박무늬, 본 적 없는 신비로운 동물 조각, 아름다운 정원과 잘 꾸며진 못, 못가의 정자까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입을 벌릴 만했다.
그 여러 집 중 하나가 그의 집이었던 모양이다. 고명한 장군님의 집.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
장군의 자식이면 나도 칼싸움 같은 걸 했나. 떡을 찌르던 꼬치를 들어서 그가 챙, 챙 부딪치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말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 티가 물씬 느껴져 웃음부터 나왔다. 왜 웃는 거야. 볼멘소리에 네에? 안 웃었는데요? 시치미를 뚝 떼고 이야기를 잇는다.
“장군의 자식이지만 칼싸움은 싫다는 사람이었어요. 한량이라고도 했어요. 아버지에게 반항하면서 집에서 놀고먹기만 한다고요.”
“뭐야, 하나도 멋지지 않잖아.”
세이라, 평소에 날 어떻게 보던 거야. 수상하다는 듯한 시선이 뺨을 쿡쿡 찔러 들었다. 이번에도 세이라는 모르쇠였다.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꿈이 그렇다는데.
“그래도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도련님이 친절하고 상냥한 분이라고 하던걸요. 시대를 잘못 태어났던 걸지도 모르죠.”
시대가 전쟁과 기근으로 혼란했다. 그의 아버지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장군이었고 자식 또한 검을 들고 책무를 다하길 바라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꿈속의 그는 전쟁은 물론이고 정치도 싫다고 했다. 인간들은 속이 다 시꺼매. 그의 눈에 비치는 궁궐은 호화롭고 아름답고 모두가 우러러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반대로 마치 뱃속에 탐욕스러운 구렁이라도 키우듯 거멓고 더럽고 추악한 곳이었다. 그래서 가문의 책임에서 벗어나 한량처럼 살았다.
“세이라는 언제 나와?”
“이제 나올 거예요.”
사건은 다음 등장인물이 나오면서 진행된다. 몇 년째 가뭄이 지속되던 수도로 바닷가 시골에 살던 처자가 해룡을 부르는 무녀로서 불린 것이다.
“무녀였구나, 세이라~”
“으. 부끄러우니까 놀리지 마세요.”
바다를 연상케 하는 굽이치는 푸른 머리카락, 가뭄 든 땅에서 보이지 않게 된 녹음의 눈동자. 모두가 그녀를 통해 비를 기대했다. 바닥을 드러낸 우물, 메마른 샘, 말라붙은 강줄기에 다시금 세찬 물이 흐르리라고.
그러나 사실 불려온 여자는 무녀가 아니었다. 그도 그렇다. 무녀라거나 비를 부르는 힘이라거나, 그런 신비로운 능력이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다. 통곡하는 백성들을 달랠만한 원망의 대상을 세우려 했을 뿐이다.
불려온 여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우울해 보였다. 걱정과 근심이 태산만 같았다. 그 모든 것을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평온을 가장하는 그녀의 속내가 오직 그의 눈에만 보였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에…….”
“그렇게~???”
방금까지 청산유수로 설명하던 입은 어디로 갔는지 세이라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여기까지 와놓고 뒷이야기를 하지 않다니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꼬치로 떡을 쿡쿡 찌르며 이노리는 그녀를 재촉했다. 얼른 더 말해봐. 그의 재촉을 따라 세이라는 말꼬리가 천리는 갈 듯 으으으응, 하고 난감한 신음만 흘렸다.
“왕은 무녀에게 명령을 했어요. 일주일 안에 해룡을 불러내 비를 내리게 하라고. 만일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무녀를 해룡의 제물로 바치리라 엄포를 놓았죠. 무녀에게는 두 가지 길뿐이었어요. 비가 내리거나, 내리지 않아 바다에 빠지거나.”
“그건 너무했다~”
“그렇죠.”
한숨을 폭 내쉬며 세이라는 그 풍경을 떠올렸다. 호화로운 궁궐 안, 모두가 그녀를 비를 불러올 무녀로서 극진히 대한다. 시골 마을에선 생전 먹어본 적 없는 사치스러운 음식들과 아름다운 비단옷,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겐 목숨값만 같아 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맛 좋은 당과를 먹어도 목이 턱 메 넘어가지 않았고 어떤 비단 방석 위에 앉아도 가시방석만 같았다. 도망가고 싶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 소금내 묻어나는 그 한적한 곳으로.
하지만 여기서 도망가면 고향 사람들을 모두 죽일 거라 했다, 왕은. 그래서 무녀는─아니, 아무 능력도 없는 처녀는 도망조차 갈 수 없었다. 궁궐은 그녀의 커다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는 울면서 겉으로는 울지도 못하던 그녀와 그가, 만나게 됐어요.”
구렁이 뱃속 같은 궁궐로 들어간 여자가 걱정되었던 걸까. 시꺼먼 색들에 둘러싸여 혼자 바다 내음 나는 색을 품고 있던 여자가 궁금했던 걸까. 낡은 고무신을 질질 끌고 걷던 그 걸음걸이에, 여자가 간 자리는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수도를 벗어나 본 적 없던 남자에게는 참 낯선 자국이었고 낯선 냄새였다. 궁금할 법도 했다.
아름다운 못 앞에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던 그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거기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만난다.
“그 뒤는 어어…… 많은, 그, 소설들이 보통 그렇잖아요?”
“뭐가 그래?”
“그러니까, 그거예요. 그거. 그으…….”
“그?”
앨리스도 쓰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듯 세이라는 입만 뻐끔거렸다.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듯 궁금한 얼굴인데, 연거푸 손부채질만 하던 세이라는 그러다 겨우겨우 다음 이야기를 이었다.
“사랑에 빠진 거예요. 둘이.”
“헤에~”
기껏 사람이 긴장하고 말한 것에 비해 상대는 맥이 풀릴 만큼 평소 같은 반응이었지만 덕분에 세이라도 이어서 설명할 수 있었다. 애써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옛날이야기를 하듯 조곤조곤한 투가 이어졌다.
일주일이란 한정된 시간, 이 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운명. 동정과 공포와 연민과 절박함 사이에서 애정이 꽃피었다. 그 사이에도 하루 낮, 하루 밤은 쏜살같이 지났다. 비는 오지 않았다. 곧 있으면 그녀가 제물이 될 판이었다.
“그는 도망가자고 말해요. 전쟁뿐인 이 나라를 벗어나자고. 하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었어요. ‘제 고향을 살려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울었죠. 그렇게 결국 두 사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지막 날을 맞아요.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쌓인 제단이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계단을 오르고 나면, 다음은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선명한 예감이 두 사람에게 똑같이 내렸을 거예요.”
꿈 가운데 가장 선명하던 순간이다. 머지않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로 나아가야 할 그녀가 앞에 돌연 나타난 그가 면사포를 걷고 틈으로 밀고 들어 온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그를 끌어내려 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베일 안에서 나눈 시간은 찰나였을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이 눈빛을 나누었다. 영겁과 같은 찰나였다.
“──꿈은 여기서 끝났어요.”
“……엑? 여기서?? 그래서 뒤는 어떻게 됐는데? 세이라 죽었어?”
“꺅, 듣기 무서운 말 하지 마세요.”
여과 없이 나온 말에 괜한 타박을 하듯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아야야,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이노리는 죽었어? 살았어? 비가 왔어? 질문을 해왔다. 긴 이야기를 마쳤으니 물 한 모금 삼키며 세이라는 글쎄요…. 고개를 저었다.
꿈을 꾼 장본인도 궁금하도록 뒷이야기는 알 수가 없었다. 끌려나간 그는 어떻게 되었는지, 제단에 오르는 그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저 그 순간의 이미지가 선명할 뿐이었다. 그의 귀에서 흔들리던 고운 꽃 귀걸이, 귀걸이와 닮은 색의 뚜렷한 눈동자, 장막처럼 내리깔린 면사포를 걷던 커다란 손, 그가 만들어주던 잠시간의 그늘.
“어째서 갑자기 이런 꿈을 꾼 걸까요? 후후, 하지만 즐거웠답니다. 전통복을 입은 이노리 군도 아주 멋졌어요.”
“혼자만 봐놓고선 그런 말을 해도 치……, 나도 보여줘.”
“으음. 남의 꿈을 보여주는 앨리스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보여주고 싶은데.”
“기술반 애들에게 한 번 물어볼까. 메카가 만들어줄지도 몰라.”
“그것도 좋겠어요~ 메카 씨가 꿈의 뒷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기계도 개발해주면 좋을 텐데~”
“세이라가 생각한 결말은 어떤데?”
“제가 생각한 결말이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들며 세이라는 아직도 생생한 그 풍경을 떠올렸다. 만약 거기에 자신이 바라는 결말을 붙인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비가 내리는 거예요.”
누군가는 시시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좀 더 극적인 순간이 있을 거라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맥이 풀릴 만큼 간단한 답이었다. 하지만 세이라는 그런 게 좋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그 순간, 속을 시원하게 할 빗줄기가 쏟아지는 마법 같은 해피 엔딩. 머리 위로 덮인 베일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동안 수많은 회한 또한 씻겨 내려가 그간의 고민이나 어려움 같은 것은 다 내려놓고 마냥 행복해지고 마는 결말.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어떤가요? 자기가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는지 민망함을 감추듯 찻잔 너머로 숨는다. 어느새 다 식어버린 찻잔 뒤에서 세이라는 선뜻 고개를 빼내지 못하였다. 그 사이 간장을 바른 떡은 해룡에게 바칠 제물이라도 되듯 산처럼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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