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카하타 이노리
코이노보리가 펄럭이는 어린이날이었다.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았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뜨개 교실을 열었다. 자신이 만든 걸 뿌듯하게 품에 안고 돌아가던 아이들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세이라도 가게를 조금 일찍 정리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고 있을까? 이제 저녁 시간은 무얼 할까 고민하던 중 전화기가 울렸다.
「세이라, 지금 집에 있어~?」
“네에. 있는데요?”
「그럼 나 5분 뒤에 도착할 거니까.」
“네에. ──에?”
네에에~???
제 목소리가 커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너머의 상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희미하게 들리는 콧노래를 두고 세이라는 허둥지둥 집안을 돌아봤다. 주말에 춥다고 꺼내두었던 두터운 담요는 소파에 널브러진 채였고 베란다에 걸어둔 세탁물도 걷어야 한다. 설거지를 밀리지 않는 것만은 제 자랑이었으나 청소라는 게 설거지가 다가 아니다. 청소기라도 한 번 더 돌려둘까?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맹렬히 계산하다가 곧 맥이 풀린 듯 소파에 풀썩 앉아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겠지.
“그보다 보통 사람은 집 앞 5분 전에 불쑥 통보하지도 않는다구요.”
“응? 무슨 얘기야?”
자기가 한 말은 잘 지킨다고, 정말 5분이 딱 지나자마자 초인종이 눌렸다. 문 건너편에는 평소보다 싱글벙글한 그가 있었다. 실례할게~ 뻔뻔한 목소리로 들어오는 그에게 네에, 실례하세요. 답하며 슬리퍼를 내준다. 손님용 슬리퍼가 몇 켤레인가 구비되어 있는데 단골에게는 단골의 성의가 있는 법이다. 그 전용으로 준비된 노란 강아지 슬리퍼를 내주면 그도 제 걸 잘 알았다.
“세이라가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라고 하니까, 이번엔 미리 연락했잖아.”
“5분도 미리라면 미리긴 하죠…….”
“그보다 이거 봐.”
이거? 갸우뚱하는 그녀에게 짜잔, 내밀어진 건 고기였다. 그냥 고기도 아니고 소고기다. 수입산이긴 했지만 구이용의 제법 질 좋은 갈비살. 이게 웬 거예요? 되묻자 통화 너머에서부터 들리던 어딘지 뿌듯한 목소리가 자랑을 해왔다.
“마트에서 뽑기 했는데 2등상~~.”
너 어차피 이 시간이면 밥 안 먹었을 거잖아. 둔둔한 고기팩을 건네더니 이어서 부스럭거리고 이것저것 꺼내며 냉장고 좀 빌릴게. 뭔가를 봉지째 넣기도 한다. 바리바리 알차게도 들어 있는 과자며 반찬이며 중간중간 고무장갑 같은 것도 보이는데. 설마 그게 다 2등상이에요? 놀라면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어이없어하는 핀잔이 돌아오기도 했다.
이미 그녀의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건 기정사실인 모양이었다. 뭐, 달리 약속이 있던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안 된다고 쫓아낼까. 그만큼 서로가 익숙하다. 어깨 힘을 푼 세이라는 작게 웃었다.
“그럼 창고에서 불판 좀 꺼내주세요. 한 번 닦아야 하니까.”
알았어~ 행주 어디 있더라? 그가 목장갑을 챙겨 창고의 문을 열고 불판을 꺼내는 동안 세이라는 냉장고를 뒤져 채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양송이, 피망,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브로콜리, 대파……. 꼬치에 끼우면 고기만 골라 먹으려나? 에이, 설마요. 하면서도 섣불리 꼬치로 꿰진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채소 꼬치 따로, 고기 꼬치 따로를 만들고 말았다.
이노리가 불을 붙이고 철판을 달구는 동안 꼬치를 한가득, 옆에는 달걀샐러드와 탄산음료도 챙겼다. 두 사람 다 성인식을 치르고도 몇 해나 지났지만 여전히 술은 안 마시는 모양이었으니─어쩌면 이노리는 종종 마실지도 모른다. 세이라 앞에서 보이지 않을 뿐─.
“우와~”
“왜요?”
“세이라 집에 야채 엄청 많구나.”
어떻게 이게 다 냉장고에서 나온 거야? 세이라, 풀만 먹고 사는 거 아냐? 과장된 말에 네에? 푸스스 웃으면서 보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답한다. 아니, 진짜라니까. 말하며 눈썹에 힘을 주는 이노리는 말처럼 진심인 것 같아서 괜시리 자랑하듯 검은콩조림도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에- 콩자반을 누가 먹어. 투덜거리는 그의 접시에 한 스푼 떠주면, 그래도 주는 걸 안 먹는 법은 없는 그이니 다 먹어주려나.
점점 길어지는 낮이었다. 곳곳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는데도 해가 서산으로 건너가는 속도는 무척이나 굼떴다. 덕분에 조명이 따로 필요 없었지만.
불판의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향했다. 꼬치는 소금만 쳐서 먹어도 되고요. 이쪽은 데리야끼 소스고, 이건 바비큐고. 석쇠에 꼬치를 하나하나 올리던 세이라는 문득 또 하나 즐거움을 떠올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언제였더라. 레코드판을 얻어 와서, 그걸 위해 턴테이블까지 사야 했지. 그 뒤로 LP판을 사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최근엔 어쩐지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만이 아니라 턴테이블을 사거나 레코드판 모으는 사람들이 늘었다더라고요.”
그래서 최신 노래가 LP판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말하면서 세이라는 바로 얼마 전 나온 노래를 틀었다.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남자의 목소리가 정원을 채웠다. 잘 구워진 브로콜리와 갈비살에 소금을 살짝 쳐서 냠. 불판의 화력이 좋은 덕에 겉은 바싹 익고 안은 부드럽게 육즙이 남아 있다. 덕분에 저녁 메뉴 걱정을 덜었네요. 이노리가 오지 않았더라면 귀찮아서 있는 채소들을 볶아 그것만 먹고 말았을 텐데. 샐러드와 콩자반, 거기에 따지 않은 음료수까지 마시게 되었다.
“고마워요, 이노리 군.”
“고기 가져온 거?”
“그것도 물론 고맙지만요!”
──좋은 일을 나눠 주었잖아요.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운 일, 나눌수록 두 배가 되는 일들. 그냥 혼자 운이 좋네, 하고 지나쳐도 그만이었을 일이다. 그걸 이렇게 나누러 와주어서, 좋은 일이 있었네요- 함께 떠들 수 있어서……
“누군가와 좋았던 일들을 나눈다는 거, 좋지 않아요? 저는 마음이 따뜻해져요.”
흘러가는 멜로디를 따라 고개를 위로 들면 높다란 하늘이 보였다. 정원이 아무리 좁아도 하늘까지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때도 그랬다. 바깥과 격리된 채 작은 세계에서 하늘만 보던 때가 있었다. 벗어나고 나면 대단치 않은 것이었는데 그 땐 왜 그렇게 꽁꽁 숨겨두고 감추어야만 했는지.
학원을 나온 뒤에는 반대로 세상이 너무 넓었다. 이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마음을 나눌 사람 한 명 찾기가 어려웠다. 외로워도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깨달은 게 언제였더라. 외로워도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려 했을 뿐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던 거다.
어쩐지 근래의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았다. 지나간 영광을 그리워하는 걸까. 어제오늘 일이 아니겠지. 지금이 힘들 때, 나은 미래를 그리기보다 좋았던 과거를 추억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할 사람보다 예라고 답할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당장 그녀만 해도 그랬었으니까. 지금은 어떨까.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돌아가면 물론 좋겠지만, 마음의 정리를 마쳤다. 지금에 충실하고 싶었다. 때때로 외롭지만 늘 외롭진 않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가도 그 자리를 채우려고 스스로 움직인다. 또, 스스로 메우기 전에 채워지기도 했다. 지금처럼.
“저도 오늘 좋은 일이 있었어요.”
좋은 친구를 둔 덕에 배가 아주 든든했다. 조금 많이 먹어버린지도 몰랐다. 그는 또 그것밖에 안 먹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디저트도 준비한걸요. 다 먹고 가주기예요.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
“그게 말이죠~”
날씨가 좋았다. 어린이를 위한 날다웠다. 어린이 덕에 어른도 쉴 수 있는 날이다. 수많은 어린이에게, 또 어린이였던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지나간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지금을 힘내고 있구나 스스로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어느덧 너무 많이 자라버린 우리를 바라보며 서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을 떠들었다.
좋은 일은 많았지만 나눌 수 있는 지금이 무엇보다 좋았다. 좋은 날이었다.
같이 밥 먹어주는 친구가 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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