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마을 의뢰 1:: 캠핑은 즐거워!
17-1)
“뭐? 캠핑에 필요한 장비들을 더 구매하고 싶다고? 너 정말 캠핑에 진심인 멋진 트레이너구나!”
파피루스의 신이 난 목소리에 에셸은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 이유다.
“저 정도의 마음으로는 모험과 캠핑을 즐긴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왔답니다. 파피루스 님. 도와주시겠어요?”
자귀마을을 넘으면 곧장 서리산맥으로 들어가게 된다. 혜성시티가 나올 때까지 길게 이어지는 캄캄한 동굴은 무척이나 춥고 위험하며 아무런 방비 없이 다니기엔 무모한 곳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에셸은 이 날, 이 때까지 대비하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너무나 큰 짐이 되기 때문에.
둔치시티의 공주님, 달링의 아가씨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와 놓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텐트는 감사하게도 카를라 씨의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이대로 여행을 하다간 일행에게서 점점 뒤처지는 건 물론이고 추운 동굴바닥에서 객사할지도 모른단 말을 들었어요. 저 하나쯤이야 입이 돌아가든 리본이 돌아가든 괜찮지만 포켓몬들은 물론이고, 이제 알까지 맡게 되었으니 안 되겠어요. 저는 제 가족을 건사해야만 해요.”
전에 없이 진지한 에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파피루스는 좋아. 흔쾌히 답하고는 자귀마을의 물류창고로 그를 안내해주었다.
도착한 곳은 미로였다. 한 번 들어가면 간단히는 내보내주지 않을 것만 같은. 에셸은 떨리는 눈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파피루스는 이미 없었다.
이런 신출귀몰한 사람 같으니.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 안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기 위해 저희의 안목을 시험해볼까요?”
세 포켓몬과 함께 저는 우선 창문부터 활짝 열었어요. 바람아 바람아, 내부의 길을 열어줘.
자귀마을 의뢰 2:: 절벽 위에 등산가 걸려 있네
17-2)
“으아악~~ 살려줘~~!!”
무사히 캠핑 도구를 챙겨서 동굴로 돌아오던 길, 에셸은 어디선가 들리는 우렁차고 애타는 외침에 서둘러 진원지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 손엔 두건을 꼭 쥐고 한 손은 절벽에 매달린 등산가가 보였다. 비명을 삼키며 에셸은 냐미링에게 저글링의 몬스터볼을 들려줘 위로 보냈다. 둥실, 둥실. 냐미링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떠올라 등산가가 있는 절벽으로 저글링의 몬스터볼을 굴렸다.
톡, 하고 버튼이 눌리며 튀어나온 저글링이 등산가를 끌어올린다. 등산가가 안전한 위치로 도착하고 나서야 에셸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몬스터볼이란 이렇게도 이용할 수 있고 정말이지 신기하고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결국 이 도구는 버튼을 눌러야지만 안에 있는 포켓몬을 꺼내줄 수가 있다. 만일 등산가가 손에 쥔 파피루스 두건을 포기했더라면 그는 두 손으로 절벽을 붙잡아 올라올 수도 있었고, 한 손으로 몬스터볼을 꺼내 포켓몬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두건을 포기하지 못해 제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에셸의 눈이 세모꼴로 변한다.
“위험해요,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
파피루스 두건이라면 동호회에 몇 장이라도 있다고, 바로 오늘 등산가들의 입을 통해 얻어낸 증언이 똑똑히 있는데.
“목숨과 두건을 바꾸실 생각이었나요?”
“하지만…… 그곳에 아무리 많은 두건이 있어도 이 한 장과는 바꿀 수가 없어요! 이건 세상에 단 4장뿐인 초회한정 추첨 SSS급 레어 컬렉션이란 말입니다!”
그게 대체 뭐라고.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의 사람들이 있다지만, 목숨과 굿즈를 바꾸는 심리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울 것 같다고 에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럴 땐 자신의 감정으로 말해선 안 된다. 상대에게 통할 호소를 해야지.
“만일 그 굿즈를 놓지 못해서 당신이 절벽에서 떨어져 큰 일을 당했더라면, 당신의 파피루스 님께서 어떤 감정이 들었겠나요. 굿즈가 중요한가요, 파피루스 님이 중요한가요?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위한다면 그에 걸맞은 성숙한 모습을 보이세요.”
에셸이 불 붙어버렸어. 그 발아래까지 쫑쫑 걸어온 위키링은 등산가에게 설교를 시작한 자신의 트레이너를 두고 아래에서 온기를 퍼트렸다. 경험상 이렇게 시작된 설교는 상대방이 정말 이해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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