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17) 01.24. 캠핑은 즐겁지만 위기는 즐겁지 않아!

천가유 2022. 4. 21. 00:21

더보기
자귀마을 의뢰 1:: 캠핑은 즐거워!

17-1)

? 캠핑에 필요한 장비들을 더 구매하고 싶다고? 너 정말 캠핑에 진심인 멋진 트레이너구나!”

파피루스의 신이 난 목소리에 에셸은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그 반대 이유다.

저 정도의 마음으로는 모험과 캠핑을 즐긴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왔답니다. 파피루스 님. 도와주시겠어요?”

자귀마을을 넘으면 곧장 서리산맥으로 들어가게 된다. 혜성시티가 나올 때까지 길게 이어지는 캄캄한 동굴은 무척이나 춥고 위험하며 아무런 방비 없이 다니기엔 무모한 곳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에셸은 이 날, 이 때까지 대비하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은 너무나 큰 짐이 되기 때문에.

둔치시티의 공주님, 달링의 아가씨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와 놓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텐트는 감사하게도 카를라 씨의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이대로 여행을 하다간 일행에게서 점점 뒤처지는 건 물론이고 추운 동굴바닥에서 객사할지도 모른단 말을 들었어요. 저 하나쯤이야 입이 돌아가든 리본이 돌아가든 괜찮지만 포켓몬들은 물론이고, 이제 알까지 맡게 되었으니 안 되겠어요. 저는 제 가족을 건사해야만 해요.”

전에 없이 진지한 에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파피루스는 좋아. 흔쾌히 답하고는 자귀마을의 물류창고로 그를 안내해주었다.

도착한 곳은 미로였다. 한 번 들어가면 간단히는 내보내주지 않을 것만 같은. 에셸은 떨리는 눈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파피루스는 이미 없었다.

이런 신출귀몰한 사람 같으니.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 안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내기 위해 저희의 안목을 시험해볼까요?”

세 포켓몬과 함께 저는 우선 창문부터 활짝 열었어요. 바람아 바람아, 내부의 길을 열어줘.

 

더보기
자귀마을 의뢰 2:: 절벽 위에 등산가 걸려 있네

17-2)

으아악~~ 살려줘~~!!”

무사히 캠핑 도구를 챙겨서 동굴로 돌아오던 길, 에셸은 어디선가 들리는 우렁차고 애타는 외침에 서둘러 진원지로 달려갔다. 도착한 곳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 손엔 두건을 꼭 쥐고 한 손은 절벽에 매달린 등산가가 보였다. 비명을 삼키며 에셸은 냐미링에게 저글링의 몬스터볼을 들려줘 위로 보냈다. 둥실, 둥실. 냐미링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떠올라 등산가가 있는 절벽으로 저글링의 몬스터볼을 굴렸다.

, 하고 버튼이 눌리며 튀어나온 저글링이 등산가를 끌어올린다. 등산가가 안전한 위치로 도착하고 나서야 에셸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몬스터볼이란 이렇게도 이용할 수 있고 정말이지 신기하고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결국 이 도구는 버튼을 눌러야지만 안에 있는 포켓몬을 꺼내줄 수가 있다. 만일 등산가가 손에 쥔 파피루스 두건을 포기했더라면 그는 두 손으로 절벽을 붙잡아 올라올 수도 있었고, 한 손으로 몬스터볼을 꺼내 포켓몬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두건을 포기하지 못해 제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에셸의 눈이 세모꼴로 변한다.

위험해요,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

파피루스 두건이라면 동호회에 몇 장이라도 있다고, 바로 오늘 등산가들의 입을 통해 얻어낸 증언이 똑똑히 있는데.

목숨과 두건을 바꾸실 생각이었나요?”

하지만…… 그곳에 아무리 많은 두건이 있어도 이 한 장과는 바꿀 수가 없어요! 이건 세상에 단 4장뿐인 초회한정 추첨 SSS급 레어 컬렉션이란 말입니다!”

그게 대체 뭐라고. 세상에는 수많은 취향의 사람들이 있다지만, 목숨과 굿즈를 바꾸는 심리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울 것 같다고 에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럴 땐 자신의 감정으로 말해선 안 된다. 상대에게 통할 호소를 해야지.

만일 그 굿즈를 놓지 못해서 당신이 절벽에서 떨어져 큰 일을 당했더라면, 당신의 파피루스 님께서 어떤 감정이 들었겠나요. 굿즈가 중요한가요, 파피루스 님이 중요한가요?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위한다면 그에 걸맞은 성숙한 모습을 보이세요.”

에셸이 불 붙어버렸어. 그 발아래까지 쫑쫑 걸어온 위키링은 등산가에게 설교를 시작한 자신의 트레이너를 두고 아래에서 온기를 퍼트렸다. 경험상 이렇게 시작된 설교는 상대방이 정말 이해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