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리포트
새로 만난 친구, 흔들풍손을 두고 에셸은 느긋하게 안경을 꺼내 들고 이어서 PC를 켰다. 옆에는 따뜻한 홍차. 이것으로 밤 준비는 충분하다. 오늘은 늘 하던 상회 업무에 더해 흔들풍손의 관찰 일기를 써야 했다. 더 늦게 전에 첫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다.
앞서도 몇 번인가 언급했던 바다. 에셸은 포켓몬을 늘리는 데에 어떠한 계획도 없었다. 나무열매와 관련된 포켓몬을 데려오는 두안 씨, 드래곤 포켓몬이 좋은 것 같은 라하트 씨, 전기 포켓몬과 함께하는 솔라리스 씨, 벌레 포켓몬을 수집하는 말라카이 씨, 비행 포켓몬의 이리나 씨, 외에도 다들 선호 포켓몬이 제법 분명하더랬다─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한 타입의 전문가라는 엑스퍼트란 이름에 마음이 설레던 이도 보였지.
그 때까지도 본인은 느긋하기만 했다.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친구가 늘 것이고 아니라면 지나쳐 간다. 체육관 챌린지가 목표라면 모를까 에셸은 모험을 즐길 마음뿐이었다. 그랬는데 흔들풍손의 존재를 알고서도 며칠이 지나서야 뒤늦게 그를 데려오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위키링에서 비롯된 관심이다.
「고스트 타입의 포켓몬은 위험한가.」
고스트 타입에게 따라 붙는 당연한 명제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동시에 불켜미와 함께 10여년을 보내오는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오던 질문이었다.
「그 불켜미 위험하지 않아?」
처음에는 에셸 또한 겁도 나고 혹은 의심하는 상대에게 반발심도 갖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설득도 해보고 반대로 위키링을 수상하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근 두자리 해를 넘도록 지내오다 보니 어느 순간 당연하게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항상성이라고 할까. 비유하자면 보이지 않는 변함없는 돌을 쥐어준 것처럼 위험하지 않은 이 상태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던 견고한 신뢰에 파문이 일었다. 캠프에 온 덕이다.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하죠.”
흔들풍손에 대한 도감 정보부터 차근차근 기입하며 에셸은 제 잔잔했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켜주던 말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필요한 상황에서 우연하게 만난 고스트 타입 포켓몬은 결코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도 주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야 위험할 수도 있겠지! 고스트 포켓몬은…… 그런 거잖아? 포켓몬들마다 각자의 개성과 본성이 있으니까, 라라몽은 그냥 받아들여주는 거야.」
불켜미. 미아의 손을 잡고 영계로 가는 포켓몬, 생명력을 흡수하는 불꽃. 도감에 나온 설명은 당연한 개성이자 본성인 걸까. 저의 불켜미도 언제든 본능을 따라 제 생명을 흡수하려 들까? 그것을 고스트 타입의 ‘사악한 본성’이라 칭하면 되는 걸까. 끊임없이 위험함을 인지하고 고스트 타입을 다뤄야 할까. 상대의 본성을 안심하지 못하는 채 나누는 교감은 진실된 것일까.
흔들풍손은 불켜미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저세상으로 데려간다든지 영혼을 옮긴다든지. 한쪽은 불, 한쪽은 비행 타입이라는 데서 빚어진 차이를 제외하고는 괴담의 전형과 같았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에셸은 흔들풍손을 만나 시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이 손을 잡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나를 어딘가 먼 곳으로 데려갈 건가요? 그 본성에 따라서. 이것도 목숨을 건 모험에 속할까? 글쎄. 고스트 타입은 어딘가 불과 같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화상을 입히는 것도 결코 불의 의지는 아닐지니.
어느덧 야심한 밤. 포켓몬도 사람도 대부분 잠든 고요한 밤이다. PC를 덮은 에셸은 여전히 제 앞에서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둥둥 떠 있는 흔들풍손을 응시했다. 아주 가느다란 바람에도 흔들리는 그 손은 도감의 설명처럼 끌고가긴커녕 끌려갈 것 같았다. 눈앞의 포켓몬은 겨우 오늘 처음 만난 상대다. 우리에게는 교감이 쌓일만한 시간도 사건도 없었으며, 솔직히 말해 지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에셸은 하나도 짐작가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타이밍이다.
만일 내가 이 손을 뻗는다면, 그 손을 잡는다면.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불꽃이 몸을 부풀렸다.
너무 관심이 필요한 로그 아닌가 완전 조마조마하게 올렸는데 떡밥 주워준 안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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