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의 사건 이후, 위키링이 볼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위키링은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무엇에 화가 난 걸까? 제 행동에 화가 난 것이리라. 제게 화가 났다. 그것을 알면서도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에셸은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오지 않으려는 이를 억지로 꺼내고 싶지 않다. 위키링이 사라진 곁은 몹시 추웠고 홍차를 위해 물을 끓이는 것도 어려워졌지만 에셸은 어쨌든 제 잘못이니 그것들을 감안하고 위키링에게 계속해 사과를 건넸다.
그 사이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후와링으로 말하자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알 수 없는 태도로 동굴 안을 둥실둥실 떠다닐 뿐이었다. 주로 에셸의 곁을 둥둥 떠다니는 냐미링과 다르게 후와링은 늘 동굴 천장까지 떠올라 거기 붙어서 내려오지 않았다. 천장이 없었더라면 더 높은 곳까지 날아갔을까? 영영 떠났을까. 에셸은 저 흔들풍손을 보면서 새삼스럽게도 몬스터볼은 완벽하지 않으며 포켓몬을 제 곁에 묶어두는 힘이란 그럼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다 보니 자연히 몸이 식는다. 작게 재채기를 하는 에셸에게 저글링이 담요를 갖다 주었다.
“우, 고마워요, 저글링. 하지만 이건 러블링의 몫이니까요.”
위키링이 당연히 불을 쬐줄 것이라 생각하는 동안에는 러블링에게 온기를 주는 일에 걱정이 없었지만 불켜미의 협조가 없어지고부터 에셸은 알 부화기를 다시 꺼내 그곳에 러블링을 넣고 그걸로도 부족해 담요를 쌓아놓았다. 알은 겉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안쪽에서부터 점점 약동이 분명하고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지고 싶다. 만져 볼까? 여분의 장갑이 없어 드러난 맨손이 유리를 매만진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 것 같나요? 고스트 타입이라고 적어두긴 했지만, 비비 씨가 말해주기론 다른 타입의 아이일 수도 있고.”
──후와링 이후로 고스트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꺾인 에셸이다. 만약 태어날 아이가 고스트라면 자신이 위키링과 후와링에 이어 잘 보듬어줄 수 있을지 곧장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풀 죽은 에셸의 뺨에 보드라운 몽나의 몸이 닿았다. 위로해주는 저글링과 냐미링을 꼭 안은 에셸은 애써 웃음을 찾았다. 어머니도 그랬지. 언제 어디서 알이 들을지 모르는데 마음 약한 소리를 해선 안 된다.
“그럼 저글링, 냐미링. 우리 함께 어떤 알이 태어날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까요?”
에셸은 천장에 올라간 흔들풍손을 불렀다. 후와링은 에셸이 7번을 끈기 있게 부른 끝에 그의 위치까지 내려와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볼에서 나오지 않는 위키링을 부화기 옆에 볼과 함께 올려둔 채 모두와 함께 도감을 넘기는 시간을 가졌다.
생각해보니 디센 때는 이쯤에서 테리랑 진화하냐 마냐, 내 자리를 뺏기냐 마냐로 갈등을 겪었는데 파트너와 갈등 겪기 좋은 구간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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