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도 로그::저글링
아직 스파를 나가기 전. 에셸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새로 찾아간 곳은 우유빛으로 물든 탕.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우유색 수증기와 액체가 피부를 맨들맨들하게 해줄 것만 같았다. 곁에는 저글링이 함께였다. 스파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다른 포켓몬들과 달리 저글링은 진심으로 스파를 만끽하고 있었다.
밀탱크가 헤엄을 칠 때마다 우유빛 물속에서 까만 발굽과 분홍색 다리가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탕이 맘에 드나요, 저글링?”
대답 대신 치료방울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맑은 음은 포켓몬은 물론이고 에셸의 피로와 감기 기운까지 싹 날려줄 것만 같았다. 탕 안으로 침몰할 것만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에셸은 포켓몬을 불러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밀탱크의 몸은 그 힘과 지구력, 그리고 파괴력이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유연하고 고왔다.
그런데 어떻게 웅크리기 한 번 쓰고 나면 그토록 단단하고 굳건해지는 걸까요. 서리산맥을 지나는 동안 고생이 많았던 손발을 주물러주며 에셸은 여러 트레이너들의 평가를 떠올렸다.
「하하, 역시 팀의 기둥 같은 녀석이 와주는구나? 확실히 이 녀석이 고비지……. 탐랑! 있는 힘껏 날아!」
「밀탱크는 온순하고 귀여운 인상과 달리 듬직하고 힘이 센 친구니까요. 야생에서 인간의 힘으로 이겨내기 힘든 때에 저글링도 분명 큰 도움을 줄 거예요.」
“제가 당신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에셸의 포켓몬들은 진화가 느렸다. 아직도 진화까지 가는 길 중 반밖에 오지 못한 위키링, 진화에 뜻이 없어 보이는 냐미링, 후와링은 성장에 관심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일단 미숙했다. 그런 가운데 따로 진화랄 것 없이 야생에서 충분히 성체로 자란 저글링은 다른 캠프 사람들에게 말한 것처럼 에셸 파티의 기둥이자 대들보였다.
특히 이번 로렐 체육관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전하는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저글링에게 또 의지해야만 했다.
“당신의 용맹한 모습에 반해서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요. 이렇게까지 짐이 무거워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더 잘해주지 못해 속상한 기분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함께 좋은 걸 보고 즐기고 누려도 부족할 텐데. 축 늘어지는 에셸을 보고 저글링은 그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트레이너가 무엇을 심란해하고 미안해하는지, 이 포켓몬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전할 수 있었다. 필드에 올라가 구르고 짓밟고 울부짖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 쏟아 붓는 것은 포켓몬의 본능이라고.
그리고 트레이너는 이런 포켓몬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그에게서 전해지는 투지는 에셸로 하여금 이 이상 우는 소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은 에셸은 스파를 나가기 전 저글링과 함께 시원한 우유 한 잔과 피로슈키를 나눴다. 그것은 어딘지 앞으로 다가올 배틀을 대비하는 전사들의 의식과 닮아 있었다.
우리집 최고의 대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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