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이리나
친밀도 로그:: 후와링
“헬륨이라면 영혼의 1/4 정도는 괜찮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
풍덩, 묵직한 무게를 따라 물보라가 인다.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온천수가 넘실넘실 타일 바깥까지 흘러넘쳤다. 아르키메데스는 어떻게 이런 기분 좋은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을까. 천장에는 수증기로 인한 물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옥, 하고 떨어지면 아래 있던 포켓몬이 난데없이 물방울을 맞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포켓몬 친화적인 호텔의 장점이다.
“후아아.”
“하아아.”
이리나와 에셸은 동시에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나른한 숨을 토해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짐만 풀고 스파를 향한 보람이 있었다. 새로 산 수영복은 몸에 아주 잘 맞았고 스파에는 저희 외에도 캠프 사람들이 많아서 굳이 남을 의식할 것도 없었다. 좋네요. 좋다아. 노곤노곤함을 느끼며 에셸은 두 팔을 타일 위에 겹치고 그 위에 턱을 올렸다. 이대로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랬다간 감기에 걸리고 말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번 로렐 씨의 체육관도 도전하죠, 이리나. 헤이즐 관장님과의 배틀 이후로 제법 자신감이 붙은 것 같아요.”
웨인이라면 역시 그 웨인에서 따온 거겠지? 무시무시한 엄니를 가지고 대활약 하는 모습이라면 에셸도 관중석에서 잘 지켜보았다. 존느와 헬륨도 무척 애써주었다. 상성을 이겨내고 버텨내는 모습은 늘 감동적이기 마련이다.
상성이라, 에셸의 시선이 문득 푹 젖어서 날개가 1/3만 남기고 사라진 듯한 캐럿에게로 향했다. 얼음 타입의 기술을 앞두고 이리나가 몹시 걱정하는 것 같았지. 남 이야기 할 때가 아니었다. 이어서 제 작은 불켜미를 본다. 위키링은 튜브를 끼고 머리 위에는 촛불 보호용의 보닛 같은 모자가 씌워져 둥둥 떠 있었다. 굳이 데리고 들어오지 않아도 됐지만 모처럼 화해했으니 함께하고 싶었다. 사랑스럽기도 하지 팔불출 같은 얼굴을 하려다 고개를 휘휘 젓는다. 문제는 위키링도 물 타입 앞에서 속수무책이란 것이다. 그야 촛불이고…….
그래도 체육관 돌파가 목표인 것도 아니니 조금 더 느긋한 마음을 가져 볼까. 파워젬과 얼음엄니를 중얼거리는 이리나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에셸은 헬륨을 잠시 눈으로 찾았다. 데이터가 필요했다. 다른 흔들풍손들은 어떤지.
“이리나는 헬륨이 정말 데리고 가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한 적은 없나요?”
에셸의 흔들풍손을 말하자면 오늘도 스파 내부의 천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다행히 유폭 특성도 아니고, 이렇게 내부가 습하니 터지진 않겠지. 에셸의 질문에 이리나는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또한 도감 설명을 읽었으니 에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의 내가 헬륨을 만나는 꿈을 꾼 것도 같은데……”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제는. 그래서 데려가지 않았나? 가볍게 웃는 이리나의 표정에는 포켓몬을 향한 애정과 신뢰가 엿보였다. 그렇다면 에셸은 어떨까. 자신의 흔들풍손을 신뢰하고 있을까? 이리나는 말했다. 헬륨이라면 정말 영혼의 1/4 정도는 가져가도 괜찮다고. 에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포켓몬에게 주저할 것 없었다. 다만 그것이 신뢰의 영역인지 아닌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 불켜미가 허락하지 않겠지. 참 쉽지 않은 문제였다.
몸이 익을 정도로 스파를 즐기고 나온 두 사람은 축축하게 젖어 공기가 빠진 흔들풍손들과 함께 피로슈키를 나눠먹었다. 그것은 온천달걀 맛이 나는 포근포근 팬케이크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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