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34) 02.03. 곡예하는 풍선

천가유 2022. 4. 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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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로그:: 후와링 (흔들풍손->둥실라이드)

 

체육관전을 앞두고 에셸은 옥상정원에 올라 바람을 쐬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전략을 짜다가 쉬는 시간이라니, 제법 트레이너다운가? 배지를 2개 다는 동안에도 여즉 실감이 나지 않는 그것이다. 그래도, 포켓몬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많으나 수읽기는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상대의 강점과 제가 가진 것을 비교하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예측한다. 상대가 최선으로 선택할 것, 그 안에서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것. 주로 거래처와 협상할 때 하는 일이었으나심지어 그 때는 누구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win-win이 될 수 있도록 하였는데체육관에서 보이는 전략이란 함께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전제였으며, 그보다는 까딱 하나가 어긋나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도미노에 가까웠다.

북새체육관을 떠올려 봐도 그랬다. 이 수가 아니면 이길 수 없어. 다른 수는 없어. 오직 그 일념으로 전진하였지. 그런데 이번 혜성체육관은 그보다 더 강해서심지어 상성도 그다지 좋지 않다지금의 전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만이 여실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배틀에서 물러나고 싶진 않았다.

결과가 어떻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도전해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곤 해도 음~ 이래도 저래도 뾰족하게 승기가 보이지 않기는 하네요.”

상대는 셋, 그에 비해 이쪽은 다섯. 수적으로는 치사할 만큼 이쪽이 우위인데도 영 막막하기만 하다. 에셸은 그 기분을 맑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애써 털어냈다. 어제도 한 번 저글링과 우유를 나눠 마신 뒤 냐미링에게 어때요? 달의 돌 써볼래요? 하고 물어보았지만 냐미링은 외면하고 돌아설 뿐이었다.

아직 눈 감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몽얌나로 진화하고 나면 지금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길어질 테니까. 남의 꿈을 먹는 시간만큼이나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시간을 좋아하는 포켓몬이다. 에셸은 냐미링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그렇다면 후와링은 어떨까. 그에게는 사실 물어보지 않았다. 후와링을 진화시킬 만큼 에셸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옥상정원의 불어오는 바람에 그를 놓치지 않도록 한 손목에 단단히 팔랑거리는 한쪽 팔을 감아놓고 있었다. 부족한 자신의 증거다. 이렇게 하면 위키링이 또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무 말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이것은 틀리지 않은모양이었다. ‘그 때는 에셸이 후와링을 따라가려 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일까 어렴풋이 생각한다.

따라갈 생각은 없었으나 동시에 그를 여기 내려다 둘 자신도 없었다. 지난 날 포켓몬 레인저가 감아주었던 토시도 없는 지금, 만약 이 팔을 풀었을 때 하늘로 솟구쳐 영영 돌아오지 않진 않을까? 천장 없이 자유로운 이 공간에서 과연 그가 다시 제 곁으로 돌아와 줄까.

에셸은 제 팔에 묶인 후와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후와링, 어쩌고 싶어요?”

단추처럼 보이는 까만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다. 그 순간, 거센 돌풍이 불어 닥쳤다. 아차 하는 순간 스르륵하고 감긴 팔이 풀리고 흔들풍손이 두둥실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그 끈을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마치 유령이라도 만지듯 그것은 실체 없이 제 손을 스르륵 통과했다.

, 퍼벙, . 공기총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비슷한 것이 흔들풍손의 사방에서 터졌다. 날카로운 소리에 여자의 몸이 일순 굳었다. 그 틈을 타 흔들풍손은 솟구쳤다. , 퍼벙, .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멀리멀리 날아오르고 말았다.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풍선의 궤적이 눈으로 따라가기엔 너무나 빨랐다.


포트커의 꽃은 포켓몬과 서사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