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주노
혜성시티에 올 때마다 에셸이 방문하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 그러니까, 업무상의 방문이 아니라 사적으로. 그 중 오늘 선택한 곳은 베이커리 겸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다. 주노의 팔을 가볍게 잡고는 가게에 들어서자 경쾌한 차임과 함께 에셸을 알아본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와, 에셸 씨. 오랜만이에요.”
“요즘 왜 안 오셨어요. 달에 한 번씩은 꼭 들러주시더니.”
“옆엔 친구 분?”
“네~ 누림마을의 주노 씨라고 해요.”
진한 버터 향과 빵 굽는 냄새가 진득하게 밴 곳이었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직원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퍽 익숙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제 옆의 동행인이 생각났다. 사람이 많은 곳은 조금 꺼리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주목 받는 것도 어려워하진 않을까. 괜찮아요? 소곤거리면서 에셸은 어쩐지 돌아올 답을 알 것 같았다.
주노는 언제나 괜찮다고 답했다. 정말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은데도 그렇다고 답하는지 그 속내까지 다 알 순 없었지만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도, 입을 뻐끔거리다가도 마지막에는 늘 괜찮아요…! 그렇게 답했다. 그럴 때마다 에셸은 주노가 강한 사람인 것만 같았다.
한 그루 나무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인내해야 할까. 그 맺힌 열매가 무르익어 결실이 수확되기까지 비바람을 견뎌내는 일이 누구나 가능하진 않았다. 그야 어떤 이는 나무 대신 모다피가 되길 선택해 저벅저벅 걸어 나갈 수도 있고 뚜벅초처럼 뚜벅뚜벅 걸을 수도 있지만, 그런 타인을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못났다 하지는 않는다. 괜찮지 않은 일에 괜찮다고 답하고 그것을 정말 괜찮은 것처럼 견뎌내고 넘기는 그의 답은 그가 이제껏 살아온 길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돌아오는 답에 에셸은 빙그레 웃었다. 요즘의 그는 말뿐만 아니라 훨씬 더 괜찮아 보였다. 알을 돌보고 포켓몬을 진화시키고 이름을 붙이고,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고 고향 마을을 벗어나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그에 대해 아직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이름 붙이게 된 이의 변화를 에셸은 한껏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은, 레몬 마들렌이랑, 초코랑, 홍차랑, 코코넛이랑. 여기가 마들렌이 맛있거든요. 제가 레시피를 배워간 곳도 이곳이에요. 크로와상도 참 맛있는데~ 맞다, 주노 씨, 갈레트는 좋아해요?”
계산은 그가 한다고 했는데 잊은 건지, 아니면 빵이란 늘 담아도 담아도 부족한 탓인지 쟁반이 점점 무거워져 간다. 그 무게가 호수 데이트를 기대하는 만큼의 무게에 비견될 만 했다. 빵을 고르고 음료도 주문한다. 한 손엔 컵의 온기를 담고 한 손을 그를 잡고 어느덧 캄캄해진 밤의 호수를 향하였다.
주말 밤의 호수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모두들 야경이 화려한 혜성시티의 도심으로 향한 걸까. 드문드문 보이는 이들은 저희처럼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러 온 모양이었다. 저, 밤의 호수를 좋아해요. 그 말은 호숫가를 걸으며 한 많은 대화 중 하나였다. 처음 혜성시티에 도착한 날 밤에도 포켓몬들이랑 다녀왔었어요. 그 땐 바나링이 아직 알이었는데. 어둠대신은 알 시절의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 까만 하늘과 분별이 가지 않는 까만 천을 팔랑거리며 꽁꽁 언 호수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에게 손을 흔들며 에셸은 나지막하게 재잘거렸다.
“꼭 호수가 다 우리 것 같지 않나요? 적막한 가운데 우리 목소리만 들려서.”
지금도 그랬다. 별이 쏟아질 듯 새까만 밤하늘. 아래로 오렌지빛 도는 따뜻한 가로등이 호수를 에워싸고 점점이 이어진다. 불과 불의 틈으로 한기 드는 서리산맥의 바람이 불 때마다 호수는 더욱 꽁꽁 얼어가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면 고요함 속에서 눈꽃이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아주 드물지만 때때로 운이 좋으면 들리는 물이 얼어붙는 자연의 소리였다.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이번이 꼭 두 번째거든요. 그래도 혜성시티를 떠나기 전에 주노 씨와 같이 올 수 있어서 좋았어요.”
뚜껑을 열자 흰 김이 피었다. 모처럼의 차가 식기 전에 컵을 들고 에셸은 온기를 나눴다.
이때만 해도 부화로그에서 나왔던 로맨틱~ 에 대한 복선 같다고 꺄아꺄아 즐거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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