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비비안느 마르티나
그의 손이 눈을 덮는 순간 다시금 세상이 캄캄해졌다. 손바닥 아래의 암흑에 안겨 에셸은 문득 제가 한 번도 어둠을 무서워해본 적 없음을 떠올렸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어둠에 공포를 느끼기 쉽다고 한다. 어둠 너머의 미지, 고요, 아이들의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탓일까. 그러나 에셸에게 어둠은 무서울 것이 없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솔라리스와도 나누었던 대화이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아침이 올 줄 알았기에. 어둠속에서 한 번도 혼자 있지 않았기에. 그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어둠은 이 다음 단계를 향한 안식처였다. 반면 섬광은 불시에 그를 놀라게 했으며 또 아프게 했다.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손해를 입혔다. 때문에 시작과 끝을 잡을 수 있는 어둠이 불시의 빛보다 그를 안심시킨다. 바로 지금처럼.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매몰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이가 있었다. 손을 떼어낼 적에 제 앞에 있어줄 상대를 의심하지 않았다. 따뜻한 어둠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짐과 동시에 흐느낌이 그 틈으로 새어나왔다. 눈을 덮은 손 위에 다시 손을 올리고 금 간 미소 너머, 둑이 터지듯 밀려드는 감정을 속수무책으로 쏟아냈다.
때론 순수한 공포였고 때론 제 오랜 노력이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에 대한 갈 곳 없는 원망이기도 했다. 간신히 만들어낸 평범한 일상이 꼭 허상으로 변한 것만 같아 이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혼란이 있었고, 나약한 스스로에게로 보내는 한심함과 염증이 있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한데 뒤섞여 비 오는 날의 찻길처럼 지저분하게 튄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였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또── 그가 상대이기에 그랬다.
「그야 에셸은 투자 대상이 아닌걸요? 친구잖아요.」
캠프가 처음 열리던 날부터 그의 목소리는 어딜 가나 들렸고 그 모습은 어디에서나 보였다. 강인하고 단단하고 언제나 확신에 차 있는 그는,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함께 강해지도록 끌어올리는 힘을 갖추고 있었다. 배울 점이 많았다. 남 몰래 그를 지켜보았었지. 그랬는데 배우긴커녕 그에게 숨겨둔 감정이 끌어올려졌다. 꾹꾹 눌러 담고 참고 삼켜내려 한 그 예쁘지 않은 것을 기어코 쏟는다.
-속상해요, 안네. 너무 속상하고, 또 무서워요. 이대로…… 저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할까 봐요.
뚝, 뚝. 손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이 이불을 적셨다. 그의 손까지도 축축이 젖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꼭 붙인 채 에셸은 둑을 뚫고 터진 감정들을 하염없이 흘려보냈다.
다 쏟아내고 나면 개운해질까. 이 손을 떼어냈을 때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손이 거두어졌을 때 분명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를 의심하지 않으면서 문제는 온전히 저에게 있었다. 잃어버리고 만 평정과 놓쳐버린 용기 사이로 갈팡질팡한 심정이 마음의 추를 흔들었다.
본격 친구에게 부모님 전화까지 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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