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마을 의뢰, 메이든은 휴식이 필요해
캠프의 최장신인 천궁을 볼 때도 에셸은 한참 올려다보곤 했다. 천궁은 태산을 닮은 이미지였다. 나무로 된 산보다는 돌로 된, 잘못 올라가면 바위투성이로 바람에 깎이고 부서진 흔적이 보이지만 그곳을 잘 넘어가면 산은 수많은 자연의 포켓몬들의 터전이다. 천궁에게선 그런 호흡이 느껴지곤 했다. 아주 오래 산. 그래서 때때로 그가 아직 이립(而立)도 되지 않은 청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대단히 실례를 저지른 것만 같았다.
스팀은 그런 천궁과 눈높이가 엇비슷했다. 천궁보다 훨씬 크고 우람한 체구는 그를 한층 위압감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냥 무서운 인상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각진 턱과 두꺼운 눈매를 하고도 늘상 서글서글 웃는 낯인 덕이겠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딸아이와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나?”
스팀은 에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쥴레오 달링. 마침 나이도 그와 엇비슷한 에셸의 아버지는 스팀처럼 힘이 넘치는 외관은 아니었지만 무척 다정하고 딸아이를 향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기차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매일 딸과 하루 한 번은 통화를 하던 그는 기차 사건 이후에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딸과 대화를 나누었다.
「셰리. 그 기억들이 널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서 그게 네가 약하단 뜻은 되지 않는단다.」
「네 엄마는 당장 널 데리러가겠다고 성화지만 나는 네 뜻을 존중하고 싶구나.」
「그래도, 속상하고 힘들면 언제든 우리에게 말하렴. 늘 사랑한단다.」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을 받고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이 되어 누군가 마중 나와 절 데려갈 때까지 꼼짝 않고 싶다고, 불쑥 그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캠프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사건 바로 다음날의 일이다. 다라마을에 살고 있는 에셸의 외삼촌이 소식을 듣고 숙소까지 찾아와서 직접 에셸을 병원까지 데려갔다. 외상은 따로 없다는 이야기와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 복용하라고 준 약봉투를 들고 나와 에셸은 내심 삼촌이 이대로 어머니께 끌고 가는 건 아닐까 걱정하였는데, 삼촌은 한참 찝찝한 눈을 하고 네 바람대로 하란 말을 남겨주었다.
「누나는 나도 어쩌지 못하지만 뭐, 그 트레이너 캠프 사람들 강하다면서.」
16년, 아이가 폭발에 휘말려 다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때와는 달랐다. 그들 가운데 에셸은 보호받았다. 외삼촌은 그것이 대단한 의의였는지 조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다라마을을 떠나기 전에 또 들르라 하였다.
“이 녀석, 너도 에셸을 잘 지켜줘야 한다?”
외삼촌의 말에 위키링은 작은 손으로 가슴을 퐁퐁 두드렸다.
그로부터 며칠, 많은 고민을 하면서도 역시 캠프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는 하나의 결론만이 남았다. 이런 일로 좋아하는 일을 그만 두는 건 너무나 분한 일이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기회,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며 성공하면 그만큼의 보상을 얻을지니. 도전조차 하지 않고 물러나는 건 달링의 정의가 아니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한낮에는 기차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스팀에게 부탁을 받은 어느 휴일, 에셸은 외출복을 차려 입고 메이든을 불러냈다. 오늘은 꼭 사복을 입고 오기예요.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약속장소로 간 에셸은 한껏 밝은 얼굴로 메이든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메이든 씨도 저도 잠시 열차에서 멀어지는 하루가 되기로 할까요?”
자, 에스코트 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에셸은 수리 중인 기차에게서 등을 돌렸다. 스팀의 부탁을 받았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놓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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