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 디 이노센트 제로

45) 02.13. 집

천가유 2022. 4. 27. 23:57

For.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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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이 여실히 남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주저하는 동안 끈기 있게 기다리고 아이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랐다. 그가 먼저 아이를 안아서야 소용없었다. 그저 품에 안아준다는 행동 하나로 아이가 가진 슬픔이나 불안을 덮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선 의미가 없다. 여자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들을 덮어버리기보다 상자를 열어 토해내길 바랐다.

품 안에 퍽 자리가 남았다. 아이는 또래보다도 작고 물러 이러다 밀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처음 캠프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그랬다. 새하얗고, 그 새하얀 몸이 혹시나 눈에 띄지 않을까봐 알록달록한 색채를 휘감은 작은 아이였다. 겉보기도 무게도 한없이 가벼워 아이가 늘 안고 다니는 인형처럼 아이 본인도 사실은 솜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드는 그런 아이였다. 작은 아이의 주변으로 인형이 가득한 풍경을 상상했다. 외로움을 달래줄 그것들은 포근하고 따뜻하지만 아이의 말벗이 되어주진 못했다. 아이가 껴안을 순 있었으나 반대로 안아주지 못했다. 텅 비어버린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기엔 너무 가벼워 아이를 위한 누름돌이 되어줄 줄 몰랐다.

수많은 인형들로 이루어진 왕국은 멀리서 보면 동화에서 볼 법하게 완벽하고 사랑스러웠으나 다가가면 흰 종이에 어설픈 크레파스로 그려둔 것과 닮아 있었다. 아이의 슬픔에 쉽게 젖고 찢어졌다. 가냘픈 세계다. 아이의 세계를 초목에 비유한다면 한 줄기 싹이 튼튼한 줄기를 이루고 잎을 펼치도록 감싸줄 지붕이 필요했고 지지해줄 기둥이 필요했다.

아이에겐 집이 필요했다. 하지만 집이 없었다.

집에 가고 싶은데, ……이제 못 가서.”

없는 것을 바랐다. 바라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누가 이 아이를 이토록 위축되게 만든 걸까. 가슴이 아팠다. 감정은 때론 고통을 실재하게 만든다. 눈물을 그친 아이 대신 제 마음이 더 속상해진 여자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폭 껴안았다. 두 사람이 하나의 덩어리가 된 양 동그랗게 뭉친다. 그 채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이어졌다.

……루미 씨가 운다고, 집을 그리워한다고, 그래서 많이 슬프고 속상하다고, 그런 감정을 갖는 게 잘못된 게 아닌데 참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당연한 감정을 가져선 안 되는 것처럼 느끼지 말아요. 이건 저의 바람이에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겉치레 같은 말이 나오진 않았다. 부모의 상실을 이해한 아이에게 그 대신이라고 해줄 것도 없었다. 둔치시티에 있는 언덕 위의 집을 아무리 꾸미고 단장해도, 그곳의 그네에 너의 이름을 붙인다 한들 네가 돌아가고 싶은 집은 될 수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네가 갖는 죄악감을 안고 달래고 싶었다.

당신은 아직 어린아이예요, 루미 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도, 이대로 크고 싶지 않아도. 지금의 당신이 어리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어린아이는…… 좀 더 솔직하게 떼쓰고 울고 화를 내고 속상해 해도 괜찮아요. 그런다고 우리가 당신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잖아요. 좀 더 어리광 부려주세요. 당신이 바라는 걸 이뤄주는 마법사는 되지 못하지만, 함께 듣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그런 기분이 들 때 당신이 혼자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혼자 아프고 참지 말아요. 방 안을 채우는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에셸은 아이의 머리나 등을 부드럽게 다독이고 안았다. 지금은 많이 힘들어도 자라나면서 아이는 마음의 빈 자리를 채울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겠지. 그리고 분명 안을 튼튼하고 단단한 것으로 채워 웃을 수 있으리라. 에셸은 아이의 미래를 믿었다. 그 때까지 지켜보는 것을 저의 역할 삼았다.

나중에, 캠프가 끝나면…… 루미 씨의 집에 함께 가볼까요?”

삼촌 집이 아니라, 당신이 살던 옛집이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막연한 그리움만 안지 않도록 말을 꺼냈다. 그 뿐일까. 네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한참 너를 보듬고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