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심랑
캠프에서 만난 동갑의 친구는 이제까지 에셸이 만나온 또래 친구와 많이 다른 편이었다. 라이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독특한 호연의 전통복.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닮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하고 몸에선 늘 온기가 느껴졌다. 단순히 체온이 높은 것과는 조금 다른, 마치 돌을 달군 것과 같은 따뜻한 열기는 그가 용암마을 출신이란 걸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온천의 열기였을까.
이름은 심랑. 마침 눈높이도 저와 비슷하다. 귀여운 이름에 처음엔 랑랑이라고 부를까 고민하다가 처음부터 지나치게 살갑게 구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서 랑랑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내심 부러워하는 중이다. 참, 이건 비밀이었는데.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가 움직일 때면 폭이 넓은 하카마가 바람을 따라 크게 펄럭였고 하얀 머리카락도 바람에 흔들려서── 고헤이라고 하던가? 그 전통도구를 연상시켰다. 어딘지 신성하고 신비로운 느낌도 드는 것 같았다. 똑같은 22년을 살아놓고 정말이지 달랐다. 굴뚝산의 중턱에 위치한 그 마을은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오갈 수 있다고 하던가. 그곳에서 나고 자란 그와 도시에서 자란 자신을 비교하기란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래서 더 그의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고 흥미로워 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은 심랑은 알면 알수록 양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속을 보였다. 어째서 주리비얀을 자신의 포켓몬 삼지 않고 방생하려는 건지. 에셸이 볼 때 주리비얀은 이미 심랑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방생이 오히려 포켓몬을 슬프게 하진 않을지. 그야, 한 포켓몬의 생을 책임지는 일은 가벼이 말할 수 없으니 더 캐묻진 못했지만 에셸은 심랑이라면 주리비얀의 무서운 기억을 극복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다정했으므로.
또 하나 그에게서 보인 어쩌면 에셸 멋대로일지 모르는 특징이라면 심랑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을 그리워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러 보이기도 했다. 용암마을은 관광객이 오갈 때를 제외하고 바깥과 교류하기가 힘든 곳이라 들었다. 그의 세계는 내내 그 아늑하고 따뜻한, 작은 마을이 전부였을까.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던 모습,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반기며 듣던 이야기. 이토록 사람을 좋아하고 바깥세상을 좋아하던 이가 주리비얀을 계기로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마지막이다. 방금 전의 심랑의 표정이다.
“달링은 바쁜 사람이지? 내가 제안은 했다만, 괜히 시간만 뺏는 거 아냐?”
머뭇거림과 울적함, 자신 없는 듯 비니로 얼굴을 감추며 물러나는 걸음. 이상하지. 이렇게 어떤 경험이 그를 이렇게 조심스럽고 소극적으로 만들었을까. 널 거절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
침울하다고 해도 좋을 그의 그늘진 표정에 에셸은 조금 놀랐고, 얼른 멀어지는 그에게 다가가 잡았다.
“제가 부탁하고 싶어요.”
그를 붙잡고는 또렷한 목소리로 한 자, 한 자 전했다.
“제가 심랑 씨와 같이 호연지방을 구경하고 싶어요. 저랑 같이…… 여행해주지 않을래요?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라면 언제든 낼 수 있으니까요.”
동갑친구 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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